모든 것들에 지친 순간이 왔을 때
그녀의 덤덤하면서도 담백한 글에 대한 평론은 이미 익히 들어온 터였지만 서점에서 아무런 기대없이 집어 들어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가기에 책의 내용이 짧아 너무나도 아쉬운 마음이 컸다. 조금씩 아껴보려 했지만 그런 결심은 이내 이틀을 가지 않았다. 그녀의 책은 덤덤하고도 분명하면서도 내릴 수 없는 결정이나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예민하지 않았다. 모든 것들에 예민한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나에게 그녀의 글은 "힘내"라는 때론 폭력적이던 말보다 훨씬 더 깊이 와닿았다. 곁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섣부른 위로보단 이 책 한 권을 조심스레 내밀겠다고 자그맣게 생각했던 날이었다.
p64 인간은 본디 강하다.
그래서 견뎌내는 것이다. 그런 견뎌냄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 세상 어떤 위로보다 덤덤하게 써내려간 글 한 줄이 더욱 깊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나에 대한 어떤 기대보다, 본질에 기대어 스스로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과연 나라는 사람이...'라는 물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 올라올 때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몇 번이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결국 인간은 강하기에, 나 역시도 이 순간들을 이겨내는 거라고 몇 번이고 생각하고 또 스스로를 증명했다.
p67 매력적인 사람의 특징은 그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수용했다는 너그러움이다. 그들은 현실로부터 도망치지도, 몸을 숨기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 무거운 짐의 차이가 개성으로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개성에 의해 키워진 성격과 재능이 아니라면 참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게 진실이다.
p 77 우리는 인간의 위대함보다는 나약함에서 인생의 진리를 배운다. 인생의 슬픔으로부터 인생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약한 본성에 굴복하고 아파하는 우리의 모습이야말로 세상에서 더없이 귀중한 진실이 아니겠느냐고 큰소리로 말해주고 싶다.
▶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정말 절박한 순간이 왔을 때 내가 결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순간조차도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어둠은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 어둠은 빛을 위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p106 세상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솔직히 관심없다. 어차피 인간은 타인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니까. 그런 부조리한 평가에 시달리지 않겠다고 작정하는 마음이야말로 성숙한 인격의 증명이다. 자기 속에 인간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식이 명확하게 확립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자는 무조건 넓은 집에 살아야 된다거나, 직함이 높아야만 성공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받게 된다. 여기에는 이해도, 소통도 없다.
▶ 나도 모르게 타인을 보여지는 것에 의해 평가하는 스스로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몇 번이고 부끄러워지곤 했다. 타인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오롯이 내 스스로가 나의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온전히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조금은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p113 다른 사람의 살아가는 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이 나만의 방식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 타인에 대한 이해는 나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자아가 온전히 서지 않았기에 곁에 있는 사람의 단단한 삶의 의지와 철학이 부러워지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나였으니 말이다.
p121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 함께 있으면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야 말로 나에게는 비로소 '친한 사이'라고 불리는 범주에 들어간다. 어색함이 감돌 때마다 분위기를 띄워야한다는 압박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마찬가지 였던지라 누구를 만나든 부담을 가지곤 했는데 이제야 발견한 나는 편안한 사람일 수록 공백을 가지는 사람이었다
p130 기본적으로 우리는 순조롭게 살아가야 될 책임이 있다. 행복은 병이 아니지만 파급되어 전염되는 것이기에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사소한 실패 정도라면 주위에 공유해서 함께 위로의 수단으로 삼을 수는 있다. 그렇게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 행복해지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일상에서 작은 기쁨들에 조금은 집착한다. 기분이 도저히 나아지지 않을때는 혼자 있기를 청한다. 나의 우울이 누군가에게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니 말이다. 서른이라는 나이를 기점으로 조금의 기준들이 생겨났다. 그래도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이 조금은 다행스럽다.
p136 지식과 기준이 넘쳐나는 세월을 살아간다고는 하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은 행복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힘은 각자에게 달리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 고독한 길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p143 염려와 공포는 불필요한 것들을 소유함으로써 생겨난다.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발견한 사실들 가운데 가장 멋진 발견이었다고 자부한다.
> 호주라는 아름다운 나라에서 4년을 지내며 경제적으로 한번도 풍요로워 보진 못했지만 나는 가질 수 없는 것들로 채워지는 시간들을 보냈기에 주머니의 가벼움은 이겨낼 수 있었다. 사실 한국에 돌아와 가장 힘들었던 점은 주변의 시선과 남과의 끝없는 비교 그리고 나의 현재에 대한 비난이었다. 과연 내일 우리가 마지막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도 우린 가지지 못한 것들을 후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몇 번이나 생각하게 했다. 나에게도 이런 깨달음이 있었다. 호주의 사막 한 가운데, 비 한방울조차 내리지 않아 오렌지빛 석양이 무척이나 선명하던 땅 위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