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온도를 위한 레시피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의 책은 꽤나 시니컬하고 덤덤하게 쓰여있지만 그 객관적으로 쓰여진 글 속에 담겨진 섬세함은 읽을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어진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글은 나의 지난한 연애를 떠오르게 만들었고 앞으로 내가 해나갈 연애 (어쩌면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머리가 문득 무거워질 때 혹은 다른 생각을 하고 싶어질 때면 그의 책이 생각나곤 하는데, 그는 종종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어디서부터 귀결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던져줄 때가 많았다.
P27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 하다.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 많은 이야기들, 어쩌면 동화 속이나 소설 혹은 영화 속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까지를 그려낸다. 사랑이 지속되는 순간부터는 우리가 흔히 '현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많은 것들을 기대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이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온도 차에 대해 나름의 준비를 해나가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P31 한편, 사랑은 약점에 관한 것,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그 약점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시기에(즉, 주로 초기에) 그렇다. 연인이 위기에 빠져 낙담하거나 어찌할 줄 모르고 우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격원할 만큼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게 된다.
P35 사랑은 우리의 혼란스럽고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부분을 우리의 연인이 다른 누구보다,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드러난 순간 최고조에 달한다. 이들은 우리를 간파해내고, 신뢰하고 나눌 줄 아는 우리의 능력 총량 아래에 있는 무언가를 알아보고 공감해주고 용서해준다. 사랑은 우리의 당황스럽고 난처한 영혼에 대한 연인의 통찰력에 바치는 감사의 배당금이다.
▶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나의 모습은 꽤나 생경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혹은 자각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듣는 것은 내가 조금 더 나아지는 방법이자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동력이 된다. 좋은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된다면 나의 조금 부족한 부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며, 조금 더 나아가서는 개선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게 된다.
P37 사랑의 초기 단계에는 반드시 감추는 게 적절해 보였던 많은 비밀을 마침내 드러낼 수 있다는 순전한 안도감이 어느 정도 생긴다. 우리는 우리가 존경할 만하거나 정신이 온전하거나 안정적이지 않으며, ‘정상’이거나 사회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게 된다. 유치하고, 공상적이고, 거칠고, 희망에 들뜨고, 냉소적이고, 허약하고, 다중적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연인은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눈감아줄 수 있다.
▶ 나는 꽤나 반전이 있는 영역의 사람이기에 외부에서 비추어 지는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은 꽤나 온도차가 있는 편이었다. 연애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다투게 될 때면 언제나 강인한 듯 보였던 나의 모습과 실제 나의 모습의 괴리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곤 했는데 나는 연인에게 보여지는 나의 면들을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이라면 보여지지 않는 모습에 대해서는 사랑할 용의가 없는지를 묻곤 했다. 이 과정은 조금은 고통스럽지만 이 위기를 잘 넘기고 나면 조금 더 보여줄 수 있는,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P116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P123 우리가 불만 목록을 노출할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불의와 결함에 대해 누적된 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사람 탓을 하는 건 당연히 부조리 중에서도 부조리다. 하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사랑의 작동 법칙을 잘못 이해한 셈이다. 우리는 정말로 책임이 있는 권력자에게 소리를 내지를 수가 없기에 우리가 비난을 해도 가장 너그럽게 보아주리라 확신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주변에 있는 가장 다정하고, 가장 동정 어리고,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 즉 우리를 해칠 가능성이 가장 적으면서도 우리가 마구 소리를 치는 동안에도 우리 곁에 머물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에게 불만을 쏟아놓는 것이다.
▶ 반 년의 방황 끝에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를 감정적으로 대하는 상사에게 꺼낼 수 없는 화를 나도 모르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도 본능적으로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사랑에도 권력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자주, 사랑의 권력관계를 남용하지 말아야 함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것은 건강한 관계를 위한 방법이자 불변론이다.
P181 이 문제는 미숙하거나 약한 사람들에게만 내려지는 저주가 아니다. 불안은 안녕을 뜻하는 별난 징후일 수도 있다. 불안은 우리가 상대방을 당연시하지 않는다는 것, 일이 정말로 나쁘게 돌아갈 수 있음을 잘 알 정도로 우리가 여전히 현실적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신경을 쓸 만큼 충분히 애정을 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나는 적당한 수준의 불안은 되려 우리의 삶을 탄력있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물론 그 것은 관계에서도 비슷한 영향을 미치기에 언제든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떠날 수 있다는 조금의 불안을 가지고 있다면 하루, 그리고 매 순간 조금의 최선을 더할 수 있다고 믿는다.적어도 매일 밤 잠들 기 전, 곁에 있어주는 사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건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고마운 변화였다.
P251 조사 결과 서유럽과 북미 인구 3분의 1이 생애 초기에 부모에 대한 실망을 경험하고, 그 결과 견딜 수 없는 불안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원초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신뢰와 친밀함의 능력은 결여되어 있다. 위대한 저작인 <분리불안>에서 볼비는 최초의 가정환경에서 실망을 겪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 관계의 어려움이나 모호함에 직면할 때 두 종류의 반응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볼비가 ‘불안정 애착’이라 명명한, 방어 및 후퇴 작전이다. 불안정한 사람은 파트너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질투심을 분출하고, 그들의 관계가 ‘더 가깝지’ 않은 것을 슬퍼하며 일생의 많은 시간을 보내기 쉽다. 한편 회피적인 사람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식의 말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때때로 성적 친밀함에 대한 요구를 힘겹게 느낄 수 있다.
▶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부모로부터 불완전함을 부여받았고 또 앞으로도 우리가 꾸려가는 가정이 그럴 것이다. 나 역시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아빠에게서 받은 어렸을 때의 감정들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오랫동안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깨닫고 뫼비우스의 띠를 어떻게든 잘라내려는 용기를 낸 경험이 있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받은 감정들을 나의 파트너에게 혹은 나의 새로운 가족들에게 물려줄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내가 겪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것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곧 지금의 내가 맺고 있는 관계가 더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P266 그래, 실패란 이런 것이다. 주요 특징이라면 침묵이다. 전화기는 울리지 않고, 불러내는 사람도 없고, 새로운 일도 전혀 없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실패를 엄청난 재난 같은 모습으로 상상해왔으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실패는 사실 겁먹은 무위를 통해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찾아왔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모든 것, 심지어 굴욕에도 익숙해진다. 정말 견디기 힘든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그리 나쁘지 않게 보이는 습성이 있다.
P274 성공의 전형들에 맞설 때 그의 삶은 깊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결국 실패에 연연하는 것은 위대한 성취가 아님을 알게 된다. 씩씩한 태도로 자신의 인생을 관대하고 희망적으로 보는 관점을 찾고 스스로에게 친구가 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겐 타인들 앞에서 의연함을 보여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 삶의 맷집을 키우기 위해 단단해지는 시간들을 견디는 중이었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성공의 스토리 혹은 행복해보이는 삶에 의연해지기 위해서는 내 삶을 부정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했다. 주변의 이야기들을 보며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고 묵묵하게 해나가야하는 일들을 완성해가는 것,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긍정을 이야기할 수 있어지는 것. 어쩌면 나는 그런 묵묵함을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써내려가는 중이었다. 삶에 초연해지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묵묵히 달리고 글을 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P279 따라서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고 믿는 일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아니면 우리는 모두 당연히 악몽의 전형인 ‘엉뚱한 사람’을 곁에 두게 된다.
P293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거의 정상인이라는 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결혼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이 계획들이 어느 영웅담 못지 않게 영웅적인 면모를 보일 기회를 제공한다. 조국에 봉사하거나 적과 싸우라고 부름을 받을 리는 없지만, 그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P296 삶의 추함을 인정하고 낭만주의를 뛰어넘어 짧고 뜨거운 사랑을 일생으로 확장하는 일에는 철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략)
영원한 사랑처럼 완전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한 순간은 있어도 완전한 인생은 없다.
P298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완벽해진다’
▶ 이제는 조금 알 것만 같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모두가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며 결국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만의 기준을 단단히 세우고 지켜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불과 서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해내야 성공하는 삶이자 행복한 사람이라 믿고 지내던 때가 있었다.
일상을 살아내면서 이따금 드는 생각은 오늘도 지각하지 않고, 지난 밤 회식자리의 숙취를 이겨내며 지옥철을 타고 출근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그 것이었고, 저마다의 작은 하루의 목표를 성취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 어떤 삶의 영웅보다 대단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따금 부조리와 불합리함에 분노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상황들을 마주하면 입으로 욕을 뱉어내는 상황이 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술 한잔으로 털어내고 다시 묵묵히 걸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싶었다. 적어도 파트너에게 그런 위로를 건낼 수 있는 정도의 내가 된다면 낭만적 연애도 그 후의 일상도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낭만이 넘쳐흐르던 때처럼 뜨거울 수는 없지만 불완전함을 조금씩 채워가려는 당신의 모습을 응원하고 지켜봐주는 것만으로도 일상은 따뜻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연애가 언제까지고 뜨거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가 있다면 우리의 모든 관계들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