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헛헛한 계절에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여행병이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를 잊어가는 느낌이 들 때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는, 그야말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곤 하는 것이 오랜 습관이었는데 31살의 겨울도 그 습관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북스테이를 할 수 있는 숙소들을 여럿 둘러보다가 파주의 지지향은 예약이 이미 가득찬 상태여서 아쉬운 마음에 속초에 있는 '완벽한 날들'을 대안으로 발견했다. 한파경보가 내린 주말에 미열과 감기 기운이 어슬렁거리는 몸을 안고 과연 버스여행을 떠나는 것이 옳은 짓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때론 '그래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나라는 사람은 떠나지 않으면 결국 병이 나는 종류의 사람이니까 말이다. 모두가 나에게 유난하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유난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에 대한 관심이 많을 뿐이라고, 내가 하고 있는 생각,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본질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남들보다 더 많이 떠나는 것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물질을 가진 후의 행복이 내 마음을 채워주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들이 물건을 사는 일에 의미를 두는 것처럼 나도 떠나는 일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무튼, 6인실의 작은 게스트하우스는 한파경보라는 이름만큼 추웠지만 그 공간에서 후다닥 읽어내려간 책 한권은 따뜻한 느낌표를 찍기에 충분했다. 임경선 작가의 '자유로울 것'이라는 에세이. 임경선 작가 특유의 시니컬하고 덤덤한 문체를 좋아해서 기존에도 몇 권의 책을 읽었지만 이번 책 역시도 작가 특유의 시크함으로 본인의 시선을 담아냈다.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 너무 오랫동안 나를 더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온 몸을 웅크리며 살아왔던 것 같다. 이젠 나도 조금 자유로워져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나일테니 말이다.
p 17
행복과 욕망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기에 둘을 혼동하거나 섞지 말고, 갈라놓은 뒤 저마다의 방식으로 충족하면 된다.
p 18
인간의 본성인 욕망을 위해 주위 사람들과 환경에 폐를 끼치면서까지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하는 것은 탐욕이지만, 정당한 노력을 실천하고 위험 요소를 감수하고서라도 발전해나가려는 것은 꿈을 향해 걸어 나가는 것이다. 왜 꿈을 포기하는 것이 욕망의 이름으로 부정당하고 행복의 이름으로 납득되는 것일까.
▶ 아무리 생각해봐도 '행복하지는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은 단지 돈을 가져와 주는 것일뿐 그 것이 나의 만족을 가져와주는 일은 아니었다. 이런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일이 재미있으면 그것은 일이 아니다 라는 말로 나를 철부지 취급했지만 사실 나는 그런 말들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되려 그런 말을 들으며 나는 조금씩 위축되어 가고 있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점차 그런 속내를 드러내지 못해 곪아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실은 멀리 떠나오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떠나와서 내가 하는 생각들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영영 낫지 않을 것만 같았다.
p 19
욕망과 행복은 둘 다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욕망은 욕망대로 최대한 노력해서 추구하는 근력도 필요하고 행복은 행복대로 너그럽게 감지하는 촉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욕망을 위해 행복을 포기할 필요도, 행복해지기 위해 욕망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p95
아무튼 일은 실제로 경험해보는 것 말고는 결코 그 적성도를 알 방법이 없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무리를 해야 기회가 열린다. 추진 동력을 가지려면 그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간절함 이상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것밖에 없다는 절박감을 느껴야 한다. 기회와 타이밍도 제한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해야 겨우 일 B(하고싶은 일)를 꿈꿔볼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냉혹한 현실의 모습이다.
▶ 다들 왜 그렇게 바쁘게 사냐고 물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 위치에 만족할 수가 없어서 무언가를 하나씩 시도해가는 중이다. 스스로를 이렇게 채찍질 하지 않으면 본디 자리에 영원히 머물게 된다는 사실이 가끔 소스라치게 두려워지곤 하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박차고 나온 수 많은 기회들에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또 내 이름 세 글자가 새겨진 책 한권을 위해 매일 밤 꿈을 꾸곤 한다. 냉혹한 현실과 작은 타협을 매일해나가고 이"ㅆ다.
p175
그러고 보면 한 언어의 가장 매력적인 단어들이란 '쉽게 다른 언어로 번역되기 힘든' 단어들인 것 같다. 그 언어만이 가진 개성과 고유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는 단어들이다. 나는 그러한 단어들을 몹시 편애한다.
vulnerable : 취약한, 연약한(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상처받기 쉬움을 나타냄)
나는 인간이 내면에 저마다 가지고 살아야만 하는 취약성(vulnerability)을 몹시 애틋하게 생각한다.
이 단어는 강자의 억압에 의해 약자가 수동적으로 약해진다기보다, 본인이 스스로의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자발적 태도가 느껴진다. 그래서 속수무책이라 하여도 어쩐지 행복해하는 느낌이 스며 있다. 인간의 '약함'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져서, 다가가서 꼬옥 안아주고 싶게끔 만드는 단어다. 또한 무언가에 취약하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나 복잡한 마음이 들어가 있음을 의미하기에, 마음속에 겹겹이 쌓인 진심을 찾아가는 과정을 유도하기도 한다.
▶ 쉽게 얻어지는 모든 것들을 의심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들처럼 평이하게 살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길'이라고 부르던 그 곳을 떠나 사람들의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걷는 일은 무척이나 외로운 일이지만 '쉽게 보이지 않아서' 더 매력적인 길이기도 했다. 약해빠진 마음으로 거친 숲을 걷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나'이기에 여전히 사람들은 그 연약한 걸음으로 꿋꿋하게 걸어내는 나를 응원해주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연약한 존재는 믿음으로 인해 때론 강해진다고 생각해오고 있다.
p240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일을 통해 성장한다. 일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든,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어쨌든 움직이고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안하고 멈춰 있는 상태다. 그렇게 멈춰 서서 남의 인생을 구경하고 품평하면서 나이 들어가는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도 일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른 은퇴를 꿈꾸지만 나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가급적 오래오래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중략)
한 뼘 더 저 멀리 도약하느냐 혹은 지금 서 있는 그곳에 남느냐로 갈리는데 여기서 나는다는 것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자연도태를 의미한다.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머무는 게 아니라, 퇴보한다. 여러 가지 것들과 싸우지 않으면 현상 유지조차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 아빠는 비록 삶의 빠른 속도에 퇴보해가는 사람이 되었지만 나는 그 시절의 아빠가 자연스러운 흐름에 이끌려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는 그런 환경속에서 자라왔지만 한 자리에서 자랄 수 없는 형태의 사람이었을 뿐이다. 스무살이 되기 전부터 나는 그런 환경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지내왔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렇게 지내왔지만 여전히 머물고 싶은 욕망과 나아가고 싶은 마음의 싸움을 매일 같이 해나가는 중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꾸준하게.
p241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불평하거나 투덜대거나 까탈스럽게 굴지 않고
무의미한 말을 시끄럽게 하지 않고
떼 지어 몰려다니지 않고 나대지 않으면서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가능한 한 계속하는 것.
현재로선 이것이 내가 나이 듦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다
p 259
그러고 보면 인생의 다른 일도 마찬가지 아닌가.
편하고 익숙한 것들을 넘어 조금씩이라도 새로 도전하거나 무리하지 않는다면 현상 유지는 될지 몰라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치와 같다.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라고 단정 짓던 그 수준을 스스로의 힘으로 뛰어넘어야 한다.
p281
"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다."
▶ 도태되고 싶지 않다면서 나는 평온한 삶을 오랫동안 꿈꿔왔다. 그 두가지가 함께 상충하여 지낼 수 없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해를 거듭하고, 많은 이들을 경험하며 나는 이제서야 내가 살아온 방식과 또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정의내리고 있다. 오랫동안, 호주를 떠나오면서도 나는 그 곳이 나의 영원한 대안책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 곳에 대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은 채로, 지난 시간들이 영원한 보상인 것처럼 말이다. 그 것이 얼마나 교만하고 어린 생각이었는지를 생각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냉정하고 차갑다.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는 어린 세대들의 생각과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요구 사이에서 사실 나는 도망친 것이었다. 더 늦지 않게 내가 두고 온 것들을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싶어서 먼 길을 왔다. 속초까지 글을 쓰러 왔다는 핑계로 말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나를 기다리는 것이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