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하더라구요

서울에서 날 위로하는 것들 _ 신대방역 포장마차

by Jessie


서른이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호기롭게 떠난 호주에서 결국 나는 놋대를 놓친 선원처럼 4년을 표류하던 중이었다. 나에게 찾아온 그의 손을 잡았던 것은 운명이었을까 혹은 실수였을까를 고민하던 순간이 있었다.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면 나는 고래 뱃속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삶을 살았을거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1. 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하더라구요 _ 신대방역 포장마차

서울의 첫 보금자리가 된 곳은 바로 신대방역이었다. 관악구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위치한 동네, 내가 그 곳을 선택한 건 부동산 아저씨가 같은 값이면 신림이나 봉천보다는 신대방역이 조금 더 넓은 편이라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함박눈을 머리 위로 가득 맞으며 몇 날 몇 일 집을 알아보던 중 해질 녘에 가까스로 만난 집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푼돈으로 살림을 꾸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자그마한 살림살이와 이불 한 채가 삶의 큰 기쁨이라는 것을 서른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삶의 깨달음은 그 절박함을 마주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각자 다른 속도로 다가오곤 했으니 말이다.



하루종일 피곤에 절은 몸과 마음을 지하철 한 칸에 구겨 넣고 집으로 향하던 사람들은 신림을 기점으로 비로소 옅어졌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지친 사람들을 하나 둘 토해내고 마침내 지상으로 흘러 나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세상 밖 풍경을 내비췄다. 이 것은 마치 어둠에 침잠해 있는 내 삶에 대한 그린 라이트와도 닮아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루 중 마지막 일과였다. 세상 밖으로의 전환점이 되는 또 마침내 피곤의 농도가 옅어지는 신대방역을 나는 꽤 좋아했다.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집 한 켠에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밖의 세상은 호기심을 풀어 놓기에는 더할 나위없는 장소였고 또 나만큼이나 지쳐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몰래 훔쳐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신대방역에 살고 있다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조선족이나 중국인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종종 건내곤 했지만 늦은 밤 비척거리며 찾아간 포장마차에서 어설프게 채우던 허기와 그 것이 건낸 위로는 더할 나위 없이 푸근했다.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포장마차는 그 삶의 열기로 얼마나 뜨거웠던가. 추운 겨울마다 삶의 녹록함을 위로하던 뽀얀 오뎅국물은 내가 포장마차를 찾는 이유였고 또 엄마의 위로 같은 것이기도 했다. 포장마차에 갈 때면 한 켠에서 홀로 TV를 보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중년의 아저씨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곤 했는데 삶에 치이고 또 치여 작게 깎인 뒷모습은 아빠의 삶을 조심스레 떠올리게 했다. 그들의 등을 볼 때면 나만의 답을 찾겠다며 60리터의 배낭을 메고 훌쩍 호주로 떠나간 내 뒤를 따라다니던 아빠의 눈물이 생경하게 그려졌다. 가족의 부름을 뒤로 하고 3년의 시간동안 호주로 떠나가 가난한 삶을 선택한 내가 서른이 되어 돌아온 한국에서 새파랗게 날이 선 삶의 치열함을 마주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뒤늦게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아빠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조차 건내지도 못한 채 포장마차 한 켠에 담긴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삶의 회한이 담긴 소주잔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나는 술 한잔, 한잔에 삶의 서러움과 두고 온 사람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책망을 담아 함께 마셨다. 미안하다는 말이나 슬프다는 말을 꺼낼 용기도 없지만 그 감정들이 삶을 집어삼키는 때가 오면 언제나처럼 드르륵 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내가 채 묻어 버리지도 못한 미련한 감정들을 술 잔에 담아 마시는 동안에도 끊이지 않는 손님을 받으며 적절한 타이밍에 타지 않게 닭갈비를 뒤집고 따뜻한 오뎅 국물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일을 하는 포장마차 주인들의 모습을 보며 술에 취하더라도 결코 무너지지는 않겠다고 끝없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내곤 했다. 서러움이 옅어지는 나이가 되어서도 문득 사는게 어려워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신대방역 포장마차를 떠올리게 될 거라고 자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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