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예찬론자

나를 일으켜 세우는 습관들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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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하는 습관은 서호주에서 만났던 손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뜨거운 아웃백을 달리고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여행을 하던 우리의 다이나믹한 여정 속에서도 그 분은 하루에 한번 혹은 두번씩 달리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것은 끼니를 챙기는 일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습관인 듯 보였는데, 땀이 가득 맺힌 얼굴로 해맑게 캠핑장으로 뛰어 들어오던 그 분과의 두번째 여행을 기점으로 아마 나는 달리게 되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드넓은 서호주 아웃백을 여행하고 지구의 역사를 찾아가는 탐사 코디네이터라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는지 혹은 타인의 욕망을 마치 내 꿈처럼 가지고 있게 된 것인지를 알지 못해 오래 방황하던 중이었다. 더욱이 그것은 채 알려지지 않은 부류의 것이라 주머니가 따뜻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며 더 나아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었다. 가난한 회사 사정으로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던 시간들 속에는 하루 한끼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던 날들이 꽤 오래 이어졌는데 허기지고 고독한 마음을 애써 다독거리던 중 떠올랐던 그 분의 모습은 운동화 끈을 고쳐 묶고 내 두 발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해질 녘이면 아름답게 내리던 호주의 석양은 내 인생에 최고의 장면으로 손꼽히는 것이었는데 석양 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 풍경의 일원이 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무엇이었다. 그렇게 호주에 있는 3년의 시간동안 나는 아낌없이 달렸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그 곳의 해지는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 질만큼 달리는 일은 내 심장이 뜨겁게 뛰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자,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일 그리고 호주를 더욱 아끼게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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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만큼 외롭고 고독했던 4년의 시간을 남겨둔 채 한국에 돌아왔다. 호주에서 만난 운명에서부터 시작된 고민이 결국 나를 한국에 오게 만들었다. 갑작스레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어렵고 차가웠으며 이따금 가슴이 먹먹해져 불현듯 눈물이 나는 일이었다. 이렇다 할 마음 하나 붙이지 못하고 지내던 나는 호주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저녁이 되면 가장 가까운 도림천을 따라 걷곤 했는데 이는 호주의 그것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어서 종종 내가 달리는 길 뒤로는 비행운이 그려 지기도 했다. 도림천 산책로를 따라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미세 먼지로 인해 삼 일을 연이어 앓아 누워야 하는 현실이 내가 존재하는 장소가 다홍빛 호주가 아닌 회색의 서울임을 처절하게 깨닫게 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데친 시금치처럼 시들 해져 가던 내가 마른 기침을 하며 앓아 누워있던 시간들 동안 끊임없이 떠오른 그리움의 장면은 오랫동안 마음을 흔들었다. 감기에서 시작되어 대상포진까지 지독하게 앓고 나서야 비로소 여름이 지났다. 그리워하던 풍경과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오래 고민했던 나는 다시 운동화 끈을 묶고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현실을 책망하며 방 안에만 있기엔 아직은 내가 너무 반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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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달린다는 것은 스스로와의 타협점을 단련시키는 일이자, 습관처럼 살아가는 하루를 심장이 뛰는 시간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발 끝으로 전해지는 모든 감각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동안 나는 종종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달리기를 해 온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고 나는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도림천을 따라 매일 정해진 거리를 달리는 일, 매일 같은 시간에 길 위에 서는 이들에 친근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일은 낯선 도시에서도 조금의 마음을 나눌 만한 것이 있다는 위로 같은 것이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단련시키며 내가 가야하는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달리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릿 속을 깨끗하게 비워주는 일이었고 모순적이게도 그 시간 후에는 다시 ‘살아가는 일’에 대한 다짐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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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어서도 나는 자주 길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달리는 까닭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함이며 외로워지기 위한 것이었고 또 선명해지기 위한 것이었다. 정직하게 닦여 있는 길 위로 걸음을 만들어가는 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 걸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은 나에게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기에 나는 내가 그려낼 수 있는 모든 삶을 사랑했다. 걸음을 옮기다 문득 외로워질 때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가 걸어온 길을 그리고 또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바라보며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달리게 될 거라고 일기장 위로 작은 다짐을 눌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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