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내는 사람에게도 예의가 필요하다
신혼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우리는 대형 항공사가 아닌 저가 항공사를 선택하는 대신 조금의 비용을 더 내고 비상구 좌석에 앉았고 우리의 옆에는 중년의 남성분이 혼자 앉으셨다. 비상구 좌석에 앉게 되었기에 스튜어디스가 우리 좌석으로 다가와 위험한 상황에서 다른 승객들의 안전을 함께 책임지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차분히 설명하는 동안 옆 좌석에 앉아있는 남성 분은 설명하는 그녀를 한번도 쳐다보지 않고 모르는 척으로 일관했다. 나는 아마도 그 중년의 남성분이 한국말을 못 알아 듣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무례함은 본인의 필요에 의해 입 밖으로 터져나왔다. 그가 갑자기 승객들의 탑승을 돕고 있는 스튜어디스를 불러 세웠다.
"아가씨, 여기 바람이 너무 쎈데 담요 하나 가져와봐요"
"저 죄송하지만 기내에서 담요는 판매되고 있습니다. 담요 15,000원인데 구매하시겠습니까 손님?"
"아니, 올 때는 공짜로 줬는데 왜 안준다는 거야? 머리 위에서 바람이 자꾸 나와서 불편한데"
"담요가 무료로 제공되는 것은 몸이 불편한 환자분들에 한해서 입니다. 혹시 몸이 불편하신가요 손님?"
"감기야 나"
"죄송합니다만 감기는 저희가 담요를 제공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그에게는 담요를 제공할만큼 아픈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비스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태도가 그의 첫인상을 깍아 먹고 있었다. 그 모든 언행을 곁에서 고스란히 들으면서 신혼여행으로 즐거웠던 시간들이 언짢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4시간동안 무례한 그 분의 곁에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곁에 앉아 배려라고는 하나없이 내 좌석의 팔걸이에 당당히 팔 전체를 올려 두고는 넓게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 나의 모든 시간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팔걸이에서 간이 테이블을 꺼내야했을 때에도 그는 내가 잠시 테이블을 꺼내는 동안 팔을 치워주었을 뿐 이내 팔걸이에 팔을 대고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마치 그 모든 비행이 본인을 위한 것인양 굴었다.
그 모든 서비스를 당연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비용을 내고 대형 항공사를 이용하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돈을 낸다고 해서 당연히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 손님은 왕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수준일 것이다. 과거에 호텔 프론트 데스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무례할만큼 얼굴이 붉어지는 언행을 통해 무료 호텔 객실 업그레이드를 요구하는 사람, 그는 종종 호텔을 이용하던 사람이었고 어떤 컴플레인이 본인이 낸 비용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받도록 해주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손님들을 단지 경고 표시만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서비스업계 종사자의 입지는 언제쯤 나아지는 건지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타벅스에서 일을 할 때도, 음식점에서 서빙을 할 때에도 언제나 기분을 언짢게 만드는 것은 본인이 지불한 값보다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사람이었고 그들은 언제나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보다는 본인이 받아야 되는 것들만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친절을 강요해 왔지만 그 것을 제공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아직 한참이나 뒷전에 머물러 있다. 그 온도차가 만들어내는 불편함을 가끔 견디지 못해 종종 한숨을 쉬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 곳에서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 나를 지탱해주던 것은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내주는 고마운 분들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나는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 라는 짧은 인사 건내는 일을 잊지 않는다. 예의는 거창하고 큰 것이 아니라 제공받은 친절에 대한 인사를 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조금 더 따뜻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