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호선 어딘가의 삶

by Jessie


오랫동안 관악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것은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그 곳을 벗어나 어딘가로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울렁거렸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정착한 곳이었지만 한 켠으로는 언제나 떠남을 갈망하던 중이었다. 집을 나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이 언제나 비렸다. 길가에 가득 쌓여있는 색색의 쓰레기봉투들을 보는 것보다 마구잡이로 흐트러진, 더 이상 주인을 알 수 없는 쓰레기의 잔해를 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을 어렵게 만들었다. 집에서 7분을 걸어 왕복 4차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면 신림역으로 향하는 버스가 어김없이 정류장에 멈춰섰다. 7시 25분을 기점으로 버스는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으로 변하고 마는 까닭에 나는 언제나 7시 20분이 되기 전 버스를 타러가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3분여를 걸어 2호선 열차를 탈 수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것은 의식이 없는 모습이라 나는 가끔 습관처럼 발걸음을 옮기는 내가 무서울 때도 있었다. 생각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 어쩔 수 없이 견뎌내는 삶이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모두가 간 밤의 잠을 떨쳐내고 말끔한 모습을 한채 저마다의 걸음으로 일터에 향하는 동안, 길 위에는 밤새 청춘을 불사르거나 가게의 네온사인을 밝히던 주인들의 때놓친 졸음이 묻어 있었다. 그들이 가진 삶의 시계를 보면서 나는, 더 이상 손가락 하나를 접어서는 돌아갈 수도 없는 그 시기의 젊은 나를 떠올리곤 했다. 과연 그때의 나 역시도 길 위에 시간을 아무렇게나 흩뿌리고 있었던 것일까 하고. 삶의 시계가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삶을 바라보며 그들의 젊음을 얻어다 나의 시간을 늘리고 싶다는 생각을, 그 길을 걸으며 몇 번이고 했었다.







내가 쉬이 함부로 살 수 없었던 것은 언제나 습관처럼 6시 30분에 빨간 잠옷을 입은 돼지 알람 시계를 기점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아픈 날도, 밤새 잠을 못이룬 날도 매일처럼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엄마의 모습은 매일 달랐지만 집을 나서는 엄마의 모습은 20년이 넘도록 한결 같았다. 엄마를 통해 자신을 희생해 다른 이의 삶을 지탱하는 책임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자라왔다. 이른 아침, 식탁에서 작은 등을 보이며 혼자 수저를 드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아파서 나는 밥공기를 스치는 수저 소리가 들리면 졸린 눈을 비비고 엄마 앞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그 습관이 오래도록 남아 나는 서른이 될 때까지 동이 트면 눈을 뜨고 아침을 먹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내 삶의 시계는 다른 이들보다는 언제나 조금 빨랐다.








서울에서의 삶이 2년을 넘어가는 때에야 비로소 중랑구로 이사를 했다. 생전 생각지도 못했던 동네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리고 그 곳이 언제나 쳇바퀴처럼 맴돌곤 하던 2호선이 아니라 짙은 푸른색을 띄고 있는 7호선 언저리라는 것. 그의 이끌림에 나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동네에 떨어지게 되었지만 신림을 떠나면서 가장 행복했던 것은 지옥 같았던 2호선을 벗어나 비로소 다른 곳에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야만 겨우 도착할 수 있는 집이 아니라 조금은 비루하고 낡았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동네에서 살아가게 될 거라는 기대가 들었다. 2호선을 떠나며 들었던 기대보다 7호선의 아침은, 그리고 7호선을 타고 출근을 하는 이들의 삶의 시계는 나의 그것보다 훨씬 빠르고 빼곡했지만 연령대가 확연히 달라진 짙은 녹색의 지하철 노선도에 오르며 나는 내 자신을 몇 번이고 추스리게 되곤 했다. 나보다 더 뜨겁고 빼곡한 삶의 시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과 함께 아침을 시작하며, 엄마와 함께 아침을 먹는 것처럼 조금 이른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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