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하기에 더 보여줄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을 팽팽하게 양쪽으로 잡아당기면 실의 미세한 떨림이 감지되곤 한다. 아마 우리는 그런 순간을 서로에게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닥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만한 여유조차도 없었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입 안에서 쓴 맛이 나는 것만 같았으니까. 맨발로 걸어온 돌 길이 아프게만 기억된 것은 아니었지만 몇 년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고개를 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에게 어쩌면 우리에게 그 시간은 아픈 것이었다. 신혼의 풋풋함보다는 삶에 조금 시들어진 모습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밤은 자주 피곤했고 삶에 지친 냄새가 났다. 아마 이 모든 것들은 이제 더 이상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어떤 아픔이라던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날들에 대한 고민 그리고 서로에 대한 책임이나 짊어지고 있는 마음의 짐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가 잠든 밤에야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기다리다 지쳐 잠든 밤들이 숱하게 지났고 이제는 스스로의 삶에 지쳐 잠드는 밤이 되어버렸다. 뱃머리가 향해야 할 곳을 알고 있는 그와는 달리 나는 방향을 잃고 심지어 부러진 놋대를 쥔 채 가야할 곳을 몰랐다. 해결되지 못한 마음이 고양이의 털처럼 뭉쳐져 동그란 공이 되어 점점 부풀어가는 중이었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야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그 것은 서로에게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따금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이 아프고 무거운 것만큼 그 역시도 그러했을테니 말이다.
내가 스무살이 되고 아빠와 둘이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날을 기억한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나에게 또 다른 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 날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빠의 낡고 빛바랜 지갑 귀퉁이에서 삐져나온 실밥들이 당신이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온 눈물 같아서이기도 했다. 나에게 두 살 어린 동생이 있었다고 했다. 나에게는 없는 기억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무엇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빠는 그 아이를 본인만 아는 곳에 묻으며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아빠가 스무해가 넘도록 심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품고 다니는 것이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 나는 차마 어떤 표정을 지어야 될지 몰라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이 있었다. 꾸깃꾸깃 접어놓은, 이미 빛 바랜 노란 편지 속에는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얼룩들과 함께 미안하고도 고맙다는 말이 쓰여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그 글을 읽는동안 알지 못하는 얼룩들이 결국 눈물일 것이라는 결론을 짓는데 더 신경을 쏟고 있었기에 그 많은 마음들을 채 기억도 하지 못하는 지 몰랐다. 아빠가 내 앞에서 울음을 토해냈다. 그 것은 엄마에게 차마 보여줄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서로가 살아가는 동안 암암리에 꺼내지 않기로 다짐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엄마조차도 아빠가 없는 시간을 틈타 나에게 그 아이의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하얗게 울었다. 자식의 앞에서 울 수 있는 부모는,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기에 울음을 울 수 있는 것이었을까. 10개월을 품었다가 태어난 아이가 얼마나 곁에 머물렀는지는 차마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이었다. 몇 번이고 찾아가고 싶었지만 아빠가 알려주지 않아 결국 마음에 그 아이를 묻고만 엄마는 스무살이 된 우리를 볼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났던 모양이었다. 가끔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아빠의 삶이 아파서, 나는 이유없이 아빠의 어깨를 두드리곤 한다. 나에게는 동생이었고 그들에게는 아들이었을 그 아이의 이름을 우연히 알게 된 이후로 나는 훈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면 유독 눈길을 한번 더 주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어쩌면 산티아고 길 위에서 만나게 된 또 다른 훈이에게 다른 이들보다 더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근거없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기도 하면서.
그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벌써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약이라 모두가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이 잊혀지지 않는 아픔도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더더욱 꺼내보일 수 없는 그런 마음 말이다. 아마 그 것은 나와 그 사이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기에 나는 지쳐있는 삶에 더 무거운 짐을 올려두지 않기로 하며 마음을 다독인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더 꺼내놓을 수 없는 마음도 있는 것이다.
스무살이 되는 해,
나는 그 것을 부모님에게서 배웠고 서른이 되는 해에야 비로소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