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한 달차, 그 짧지 않은 시간의 깨달음
결혼을 한다는 나의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했다. 스무살 이후 나의 연애를 기억하는 건 나를 제외하고도 모두에게 무척이나 흐릿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4년의 공백이었던 연애 후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2년이 넘는 연애를 했다. 그리고 그 연애는 결혼으로 우리를 이끌었는데 나 하나만 생각하고 살아오던 내게 이 것은 무척이나 생경하고도 감사한 경험이었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 미세스의 라이프지만 이따금 이십대로 돌아가 그 시절에 결혼을 한 선배들의 이야기들을 떠올리다보면 그들의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곤 했다. 결혼할 사람은 어딘가에 있다는 그 말은 사실이었고 어쩌면 결혼할 시기에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는 말도 사실이었다.
1. 없이도 할 수 있는 결혼
정말 우린 가진게 없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나온 돈이 겨우 월세를 내고 살던 집의 보증금 뿐이었으니 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우리는 부모님의 도움없이 둘만의 살림으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현실을 듣고 고개를 저었지만 사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내일을 생각한다면 나는 당장의 현실을 인내할 수 있었다. 그가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주었으니 말이다. 물론 가진 것 없이 결혼이라는 큰 행사를 생각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남들처럼' 이라는 단어 하나만 제외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의외로 많았다.
제일 큰 걱정은 집이었다. 원룸에서 처음을 시작했던 우리가 조금이나마 나은 삶으로 이사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발품을 팔아야했고 원래 살고 있던 신림에서 먼 거리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한 칸의 삶이 지겨워진 우리에게 발품을 파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리에겐 그 공간을 벗어나는 일이 그 무엇보다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10평 남짓의 집이지만 한 칸의 방에서 유지되던 삶이 두 칸의 방에서 시작됨으로 인해 우리는 많이 행복해졌다. 서울시와 은행이 함께 지원하는 (집 값의 90%를 빌려주는) 신혼부부 대출을 통해 우리는 신혼집을 얻었다. 처음의 고비를 잘 넘겼고 회사에서 여유 자금을 빌려 결혼 준비를 했다. 주변에서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혹은 여유가 없어서 결혼을 하지 못한다고 흔히 이야기 하곤 했지만 정말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면 드레스도 30만원의 비용으로 대여할 수가 있다. 웨딩플래너를 꼭 끼지 않아도 스스로가 준비하는 결혼이라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곁에 있는 사람이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면 우리는 결혼을 이야기할 수 있다.
2. '내가 해준만큼' 혹은 '남과 같지 않으면'
처음 결혼을 생각하고 준비하게 된다면 생소하고 어려운 말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스드메라던지 예단, 폐백, 혼수.. 여기서 끝나면 아주 심플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결혼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 단어들에서 비로소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앞에 두고 남들이 한 것들을 하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듯 이야기하는 업체 혹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남들도 다 하는' 이라는 단어에 속아 허례허식에 많은 돈을 쓰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부모님만 혹은 우리 둘만 괜찮다면 줄일 수 있는 비용이 꽤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는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만큼, 둘을 위한 결혼을 하라고 배려해주신 부모님들 덕분에 양가를 오가는 예단이나 혼수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무 것도 받지 않아야 무언가를 해드려야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부모님들을 설득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부모님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분리시키는 연습을 우리는 여기서부터 한 것일지도 몰랐다. 결혼을 하면서 어떤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지는 결혼 생활에 있어 마음을 다스리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데 '내가 키운 자식을 보내는데 이 정도쯤은 받아야지'라고 생각하는 부모님이 한쪽이라도 있으시다면 결혼이 주는 부담이 더해지고 만다. (그리고 의외로 이것 때문에 결혼하기 전부터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부모에게든 자식은 소중하기에 한 쪽이라도 무언가를 받으려는 욕심이 짙어지면 서로의 마음에 상처 주는 일이 생기고 만다. 마음이 가는만큼, 무엇이든 받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만 챙겨주신다면 결혼을 준비하는 이의 부담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고 결혼 준비에 대한 무게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이다. 부모이든, 결혼을 준비하는 입장이든 언제나 '남과 같으려는 마음'과 함께 '해준만큼 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 놓아야 결혼 준비가 쉬워질 수 있다.
3. 많은 것들을 기대하지 말 것
결혼을 하기 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해하려 하지말고 받아들일 것'와 함께 '많은 것을 바라지 말것' 이었다. 신혼 한 달차인 우리에게 벌써? 라는 리액션이 종종 돌아오곤 하지만 그와 나의 신혼은 정말 심심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결혼 직전에도 새벽 3시 반에 집에 들어오던 그는 결혼 후에도 주말을 반납하고 평일 저녁도 모두 회사에 반납해 버렸다. 직장 동료들이 웃으며 '이혼 당하지 않게 조심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했지만 사실 몇 번이나 투닥거리고 서러움을 토로하고 싸우면서 우리는 결혼 후 한 달을 보내는 중이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음을 토로하는 그에게 섭섭함을 이야기하는 것도 서로에게는 슬픈 일이었다. 일에 치여 매일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그 덕분에 기념일이라던지, 벚꽃을 보러갈 타이밍이라던지, 함께 산책을 가고 싶은 마음은 누르며 살아가고 있지만 섭섭한 마음은 어쩌면 조금이라도 기대를 하는데서 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체력이 유난히 약한 그에게 운동을 권유했던 지난 2년. 사실 그는 34년간 운동이라고는 제대로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함께 산책을 가자는 부탁에도 바닥에 누워 쉬고 싶다고 말하던 그가 결혼을 한다고 달라지길 바랬다면 그 것은 내 욕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요즘이었다. "결혼하고부터는..." 으로 시작되는 말에 기대하지 말 것. 이 것은 나 역시도 여전히 노력해가는 부분임에는 분명하다.
"신혼생활 어때요?" 라는 질문을 자주 들었던 요즘이었다.
어쩌면 해보지 않은 것을 경험하는데서 오는 설레임과 달달함을 대리만족으로나마 기대하는 질문이겠지만 생각보다 이 것은 달콤하지만은 않다. 시행착오를 통해 서로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 나는 딱 그 정도로 결혼과 신혼 생활을 정의내리고 싶다. 대한민국 30대는 인생 중 가장 바쁘기에 바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람들의 조언은 언제나 조금 슬프기만 하다. 결혼에 닿기 위한 수많은 장애물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일, 그리고 그 것을 살아가기 위한데 쓰는 일이야 말로 조금이나마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일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나의 결혼준비였고 또 신혼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