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를 알아가는 시간
꿈을 쫓아서 열심히 나아가는 내 곁의 사람은 나에게 무거운 말 한 마디 할 줄 몰랐다. 그가 나에게 너는 언제나 잘 될 사람이야 라고 말하던 것도 어느 새 2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사실 몇 번이나 무기력증을 앓는 사람에게 그 말을 흔들리지 않은 채 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매일, 한 시간 혹은 일 분도 허투루 써본 적이 없다며 매일 침대에 머리만 대면 잠드는 그에게는 너무나 미안했지만 나는 무기력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방황이나 무기력이 이렇게나 오래 갈 것이라고는 나도 그리고 또 그도 생각하지 못한 바였을 것이다. 전혀 그러하지도 않으면서 잘난 척, 잘 지내는 척, 괜찮은 척 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삶만으로 나는 이미 꽤나 버거운 상태였다. 누군가는 그런 척 해야 비로소 벗어나게 될 수 있는거라고 했지만 그 기분의 끝에 닿아있는 사람은 척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회사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의미나 뜻을 알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의미나 뜻 없이 돈만 쫓아 들어온 곳에서 보람을 찾는 행위가 어리석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돈'만 쫓는 삶은 나와는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는 '보람'이 필요했다. 일을 함으로써 얻는 보람말이다. 새벽 잠까지 설치며 회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부장님께 나처럼 무기력하고 발전을 생각하지 않는 직원이 들어온 것은 엄청난 함정임에 분명했다.
내 곁에 있는 그는 매일 앓고 있는 나에게 그만두라고 몇 번이나 권했지만 2년 전, 갑작스러운 회사의 부도에 빈 주머니로 백수 생활을 하며 마주한 현실의 참담함을 잊을 수 없어 나는 꾸역꾸역 수저를 들어 입 안으로 주어진 것들을 밀어넣고 있었다. 그가 혼자 감당해야 할 가정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것일테니까. 대신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다음을 위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한 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SNS도 하지 않았다.
'잘 지내냐'거나 '요즘 무슨 일 있냐'고 묻는 메세지를 읽지 않아 빨간 1이 사라질 겨를이 없었다.
누군가를 용서하려고 애를 쓰거나, 나를 이용하려는 것이 뻔히 보이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혼자만의 동굴에서 더 오래 생각을 가다듬어야 다시 걸어갈 힘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호주에서도 겪어던 삶의 권태였고 그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던 것은 매일 같은 시간에 습관처럼 하던 달리기와 사색을 통해 얻은 생각들로 써내려간 글쓰기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냈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써내려가기로 했다.
하고 싶었던 일들도 하나씩 써내려가기로 했다.
그러다보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될 거라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