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는 사람과 사는 일

지금의 설레임을 훗날을 위해 아껴두는 일

by Jessie


KakaoTalk_20190513_084522882.jpg


신혼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나 부담은 생각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인사처럼 건내는 "신혼이라서 좋지?"라던지, "신혼 생활을 어때?"같은 안부 같은 물음들 말이다. 그런 질문들을 들을 때면 신혼은 꼭 설레여야만 하고 왠지 즐겁고 풋풋해야할 것만 같은 부담을 나도 몰래 느끼게 되고 말았다. 때론 말이 건내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우리는 종종 말들에 잠식 당하고 만다.



그는 꽤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주일에 주 6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그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했다. 어쩌면 외국의 자유로운 근무환경을 닮아 있기에 부러울 수는 있지만 월급 루팡으로서의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유형의 그런 회사말이다. 처음 그가 회사에 입사했을 때부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한 번도 게으르게 일을 한 적이 없었다. 회사가 그에게 안겨주는 책임도 대단했지만 그가 회사에 가지고 있는 애사심이라던지 성실함 또한 일반인의 범주에 있는 것과는 달랐다. 그는 이따금 술잔을 앞에 두고 나에게 말했다.



"난 한번도 나에게 부끄러운 하루를 보낸 적이 없어. 오히려 나를 120% 쓰고 돌아온 기분이야"



그런 말을 하는 그는 많이 지쳐 보였지만 그의 눈은 언제나 삶에 대한 만족으로 가득했다. 반면에 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볼 때면 나는 언제나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자괴감에 빠지곤 했는데 그 것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같은 선상에 나란히 서있는 것이 아니라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 나도 나를 잘 알지 못하면서 결혼이라는 선택을 한 것이 잘한 일인지를 몇 번이고 고민하곤 했다. 견뎌내는 삶 그리고 현실이 막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위해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남자와 살아가면서 나는 자주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 감정들을 결국 곪고 곪아 나도 모르는 새 그에게 애정을 구걸하는, 신혼이라는 이름의 중압감에 사로잡혀 그의 시간을 탐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게 된 것 이었다. 결혼을 하고 더 바빠진 그와 집에 혼자 남겨진 나 사이에는 한동안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다. 2년 10개월의 연애 기간동안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도 이렇게 수동적인 삶을 사는 내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더 안타깝고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따금은 회사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 온 그가 밉기도 했고 때로는 구걸하면서까지 받는 그의 시간과 애정이 가치가 있는 것일지를 생각했으며 때론 회사와 집 모두에서 시달리는 그가 안타깝기도 했다. 그는 간만의 저녁을 먹으며 나에게 말했다.



"회사에서 온갖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일이 하나 있는 것만 같아서 회사나 집 그 어디도 편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어"


물기없이 건낸 그의 말 뒤에는 2년 전 가진 것 하나 없이 서울에 올라와 생활하던 30만원 사글세의 비탈진 고시원이라던지 그 하나 믿고 맨 몸으로 한국에 돌아와 삶에 조금씩 지쳐가던 내 모습이 묻어 있었다. 그가 그렇게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싶어서였다고, 피곤에 지쳐 잠든 얼굴을 쓰다 듬으며 새벽이 올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는 그의 덤덤한 고백을 들으며 나는 바쁘게 살아가는 그의 삶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는 바쁘게 살아갈 수 있는 지금, 모두가 그를 찾아주는 현재는 모두 치열하게 살아온 2년의 시간 덕분이었으며 우리가 가진 것은 없었지만 결혼을 결심하게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시간들 덕분이었다고 나에게 이해를 구했다. 그런 그의 진심을 들으며 나는 같은 침대에 누워 매일 잠이 들지만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그와 나의 거리를 좁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보면 나에게도 아직 숙제가 남아 있었다. 내 삶의 방향과 함께 갈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래서 그가 나에게 그러했듯이 나 역시도 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는 일 말이다. 신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나는 조금 더 싱글 라이프를 즐기기로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흥미로워하는 일들을 해나가며 그와 다른 반짝이는 시간을 살기로 말이다. 부부라는 이름은 어쩌면 한 몸이라는 의미보다는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게 해주는 친구의 의미일지도 모른다고 부쩍 생각하게 된 요즘이다.






KakaoTalk_20190513_084522685.jpg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얼마나 잘 맞는가보다

다른 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이다


/ 톨스토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도 나를 잘 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