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를 이뤄가는 일
어쩌면 의식이라는 것이 생겨난 후, 가족과 처음 떠나는 여행이었다. 누구에게는 쉽게 갈 수 있는 한 시간 거리의 나라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다섯식구에게는 어쩌면 가장 특별한 여정이라 말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엄마는 얼마 전 나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여행이 가고 싶다고 말했다. 언제나 '아무거나' 혹은 '괜찮아'라고 말하던 엄마의 여느 대답과는 다르게 엄마의 톤은 일정했고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있었다. 일과 집이라는 쳇바퀴같은 일상에서 벗어날 줄 몰랐던 엄마에게서 '여행'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밀려오던 충격은 꽤나 묵직한 것이어서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6월의 징검다리 연휴로 또 코 앞에 있는 일정으로 비행기 티켓 은 평소보다 두 배에 육박하는 가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라는 핑계는 꽤나 그럴싸했다. 신혼여행으로 떠났던 '보홀'에 언젠가 다시 가족들과 오고 싶다는 바람을 빠르게 실현하고 싶어 비행기를 검색했지만 왕복 80만원에 호가하는 가격을 보고 우린 빠르게 마음을 접었다. 우리의 예산, '첫 해외여행'이라는 여러 조건에 부합하는, 그렇게 결정된 곳이 부산과도 가깝고 비행기 삯도 그 중에 가장 저렴한 후쿠오카 였다.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이 생긴 나였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나의 선택을 응원했고 더 나아가서는 함께 떠나고 싶다는 대답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망설임없이 비행기 티켓을 또 다섯식구가 모두 묵을 수 있는 숙소를 빠르게 검색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자주 연락을 하지 않던 100% 리얼 경상도식 아빠는 여행이 가까워올수록 자주 전화를 걸어왔다.
"숙소는 예약했어? 뭐 들고 가면돼? 명수(동생)한테 전화해서 다 알려줘.."
난생 처음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경험이 아빠에게는 조금 무섭고도 설레는 감정을 가져다 주었으리라. 여행을 꽤 오래 해왔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일본이라는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이었는데 패키지 여행이 그리 내키지 않았던 터라 나는 하나하나 자유여행으로 일정을 계획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가장 걱정이 앞서는 것은 해외여행이 처음인 28살의 남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김해공항에서 후쿠오카까지 오는 일이었다. 하루 앞서 서울에서 후쿠오카로 떠난 우리가 입국장의 분위기와 필요한 사항들을 먼저 챙기기로 했다. 입국장의 분위기와 들어오는 방법, 버스 정류장까지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기는 나를 보며 짝꿍은 나에게 말했다.
"넌 여전히 동생이 어린 줄만 아는 것 같아. 이제 어른이야,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걸?"
그의 말처럼 동생은 28년만에 첫 해외여행이었지만 처음이 아닌 것처럼 아주 능숙하게 부모님을 모시고 후쿠오카의 중심지인 하카타 역에 도착했다. 익숙한 도시가 아닌 타국에서 만나는 부모님은, 또 타국에서 익숙한듯 길을 안내하는 우리는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은 꽤나 뭉클한 것이어서 각자의 짐을 끌고 새로운 숙소로 향하는 내내 우리는 조금은 설레고도 특별한 마음으로 걸음을 맞춰 걸었다.
먼저 다섯식구가 모두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살펴보는 일부터가 난항이었다. 남들이 모두 쉬는 시기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기에 여행을 결정하고 준비를 시작한 시점에는 이미 많은 숙소의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내가 결정내린 것은 바로 '에어비앤비'였다. 해외 여행을 하며 어렵지 않게 경험했던 에어비앤비의 시간들이 꽤 인상깊었던 나는 부모님께도 여행을 하는 동안 짧게나마 현지인의 삶을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에어비앤비가 과거 몇 건의 불미스러운 사고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고 체크인을 해야하는 방식으로 변경되긴 했지만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엄마는 숙소가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실 정도로 에어비앤비의 시스템에 만족하셨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머물던 3박 4일의 일정동안 같은 숙소에 내내 머무를 수가 없어 마지막 1박은 무거운 짐을 이끌고 숙소를 옮겨야만 했지만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들여다본 사진첩 속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이 그 모든 고생스러움보다 다음 여행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지도 상에서 확인되는 거리와 직접 발로 느끼는 거리의 온도차는 꽤나 큰 무엇이어서 하루에 적어도 18,000보를 걸어야했고 여행 도중에 숙소를 이동하느라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생전 처음 보는 간판의 거리를 지나야했고 아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식사로 인해 많은 끼니를 편의점에서 사온 신라면으로 대체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의 첫 여행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서른 해가 조금 넘는 동안 나는 가장 행복한 아빠와 엄마의 얼굴을 봤다. 그 것은 모르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었고,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와 가장 가까이서 시간을 보내는 데서 오는 만족이었으며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셨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간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기 너머로 온종일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던 엄마의 행복이 묻어났다. 그 언젠가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일'이라고 거창한 듯 버킷리스트에 적었던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그 것은 조금의 용기와 시간이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