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서 아빠를 읽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은 비슷하게 닮아있었다

by Jessie
신혼여행에서도 그는 회사 메신저를 보고 있었다 (feat 보홀)


결혼한 지 약 4개월차, 남편은 결혼하기 전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한가한 날이 없었다. 일을 쉬는 날이면 언제나 핸드폰을 붙잡고 회사 일을 살피고 있었고 그 것은 밥을 먹거나 잠자리에 누웠을 때도 예외는 없었다. 함께하는 약 3년의 시간 중 그가 일을 시작하게 된 2년 반 전부터 그 모든 '바쁨'이 시작된 것이다. 스타트업에 들어가면 수평적 구조에 대한 자유로움은 있지만 일에 있어서는 조금 더 무거운 책임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내가 만나온 그의 동료들 또한 그러했다. 2년 하고도 조금의 시간동안 그의 곁에 있던 많은 이들이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났다. 쉴 타이밍도 없이 물 밀듯이 밀려오는 회사 메신저의 어마어마한 메세지.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글타자연습의 수 많은 단어들을 하나도 빠트리는 법 없이 엔터를 누르며 완수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 처럼 그 역시도 매일 아슬아슬한 게임을 해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는 화장실을 참으면서까지 일을 하는 이른바 '독종'의 아이콘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런 것이 사기라면 사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을 겪은 벌거숭이가 된 나에 대한 책임감과 홀로 계시는 어머니, 본인에게 의지하는 여동생의 무게까지 떠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까지 모두 껴안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그리고 그 돈은 언제나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과 등가교환을 해야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따금 그가 젊음과 청춘을 모두 포기하고 벌어오는 돈을 바라보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를 몇 번이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고민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한 채였지만 말이다.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그가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에 있었다.



"나는 얘가 자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더라. 원치 않는 술자리가 끝나고 너덜너덜해져 집으로 돌아왔는데 삶에 지친 얼굴로 잠들어있는 모습이 왠지 서글퍼서 말이야"



나 역시도 원치 않는 술을 억지로 받아 마시며 술자리의 대표들과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을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미워하거나 책망하는 일이 잦았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언제나 입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은 가시 돋힌 것들이었으니까.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옷을 가만히 바라보며 문득, 그 언젠가 술에 취한 아빠가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오버랩 되었다. 회사에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술을 먹고서야, 털어놓는 그 마음과 얼굴이 그리고 다시 다음 날이면 아무렇지 않은 듯 회사로 나가는 아빠의 일상과 그의 하루가 무척이나 닮아서 나는 왈칵하고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너는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둘 수 있지만 사실 진짜 아침이 오는게 지옥같은 건 나야.

너에게는 그만둬도 된다고 말하는 내가 있지만 나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잖아"



건드리기만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를 바라보면서 나는 요즘 내내 입에 달고 살던 퇴사라는 말을 깊은 곳에 접어 넣었다. 술에 취해 한숨과 이따금 욕을 뱉어내곤 하던 아빠가 잠들고 나면 엄마는 언제나 아무렇게나 쓰러져 자고 있던 아빠의 양말을 벗겨 바로 눕히는 일을 하곤 했다. 이젠 내가 아빠를 닮은 그를 베개 위에 눕히고 담요를 덮어주며 조금씩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술 취한 아빠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던 엄마의 눈속에 담겨있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를 나는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뼈 마디가 아파 물리치료를 받으면서도 단 하루도 쉬지 않았던 엄마가 해오던 생각, 아빠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었던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을 엄마는 해오던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싶어 죽으려고 마음 먹었던 순간까지도 결국 울면서 돌아내려와야 했다던 아빠는 올해로 32년째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곧 회사와의 마지막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지난 시간동안 아빠는 자주 지옥같은 시간들을 술과 함께 넘기며 꾸역꾸역 소화를 시키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따금 게워내거나 욕으로 뱉어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어젠 삶에 찌들어 작아진 그를 바라보며 오래 전 내가 채 위로하지 못했던 아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그리고 또 내 곁에 있는 그에게 힘들면 언제든 내려와도 된다는 말을 건냈다. 그 시절의 아빠는 선택한 길 위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겠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더 많은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그는 결국 어디서든 빛나게 될 사람이니까. 어차피 0에서 시작했던 우리가 다시 돌아갈 곳도 0이기에 지금의 이 가치관과 성실함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오늘도 그는 지난 밤의 서러움을 닦아내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또 아무렇지 않게 하루가 지나면 나는 언젠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무심하게 밥상을 차리며 무언의 위로를 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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