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여행 다녀올게

결혼을 하고 비로소 ‘방황’의 목적을 찾았습니다.

by Jessie
Great Central Dessert, Western Australia



'여행'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 주변에서 그런 부류의 사람을 떠올릴 때 나는 언제나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호주에서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내 '방황'이 끝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사실 나의 방황은 끝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방랑’을 끝낸 것이었을 뿐인지도 몰랐다.


호주에서 만난 그가 한국에 돌아가자며 나를 설득했을 때 나는 혼자 표류하는 나 자신에 대한 진절머리와 실증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중이었다.

"헤어지거나 호주에서 돌아오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라며 단호하게 말한 그의 뒷이야기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결국 다시 얻게 되어있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가 나에게 던진 말이 2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야 다시금 떠오른 까닭은 정말 그의 말처럼 나는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어느덧 오랜 시간을 보낸 퍼스라는 도시의 좋아하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주변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너는 금방 돌아올 거야", "한국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하는 소리지, 다들 다시 돌아오려고 안달이야" 그런 말들은 언제나 내 오기를 자극시키곤 했는데 나는 사람들의 말이나 편견에 지고 싶지 않았다. 배경이 어디든 내가 서있는 곳에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매일 꾸역꾸역 밥을 삼키듯 물 만 밥을 입 안으로 밀어 넣는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는 종종 잠자는 나를 쓰다듬으며 “내가 그때 너를 데리고 온 것은 잘못한 선택이었던 걸까?”라며 씁쓸해하곤 했다. 하지만 그를 따라 한국에 돌아온 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그 모든 선택의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었기에 그에게 그 책임의 무게를 전가한 적은 또 그러고 싶은 적은 없었다. 그냥 또렷하게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오랫동안 하면서 더 행복해질 일이 무엇인지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이유 있는 방황이라면 여전히 늦지 않았노라고 스스로에게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 내가 무리를 해서라도 퍼스라는 도시에 다시 돌아온 이유였다. 한때 너무나 미워했던 사람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시간이 아마도 지금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나는 무리를 해서 지금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다행스럽게도 부장님의 깊은 배려와 이해로 나는 사표 대신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2주 간의 오랜 휴가를 마치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회사에 들어간 지 1년도 안된 햇병아리 같은 나를 마음으로 품어주신 부장님의 배려에 나는 감사한 마음뿐이다)









매일 피로와 책임의 무게가 축적되어 무거운 얼굴이 되어가는 남편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일상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지금이야말로 그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을 놓는다고 하더라도 결코 당신의 삶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고 우리는 지금 청춘을 대가로 미래의 시간을 조금씩 축척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인생의 전부였던 호주를 내려두고 한국에 돌아와 3년의 시간을 방랑하며 나는 이제서야 다시 돌아올 용기를 냈다. 3년 동안 꾸역꾸역 다닌 일터에서 벌어놓은 시간이라는 재화를 이제야 마음껏(?) 소비하며 내 마음의 실체를 바라보겠다고 에어아시아를 13시간 타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말이다. 다시 돌아온 나는 ‘여행자’의 이름으로 백패커스의 철제 2층 침대에서 한국과는 정반대의 계절을 보내는 중이다. 결혼을 했다는 사실은 이따금 나에게 안부를 묻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확인하곤 한다. 그럴 때면 돌아갈 곳이 그리고 또 반겨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방황에 언제든 마침표나 쉼표를 찍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결혼 전 부모님의 모든 반대를 무릅쓰며 탔던 호주행 비행기, 그리고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나는 캐리어와 함께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을 언제나 함께 붙이곤 했다.


“당신의 짐은 당신이 직접 싼 것인가요?”


체크인 카운터에서 이따금 물어오는 질문에 매번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직접 밀어 넣은 방황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에 대해 마음 깊이 느끼며 말이다. 죄책감의 대가로 지불한 값을 떠올리면 커피 한잔, 컵라면 하나도 나에게 사치로운 것이었지만 이번에 떠나온 여행에서는 그의 배려와 이해로 인해 나에게 지나칠 만큼의 면죄부가 생겼다. 어쩌면 그 시절의 그가 나를 한국에 데리고 돌아온 것은 부모님의 짓이겨진 가슴에 대한 면죄부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서야 비로소 방황을 이해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방황에는 이제 ‘함께’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말이다.



곁에 있는 사람의 방황을 응원해줄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당신에게도 찾아오길.





Thanks to James,

나는 오랜 방황을 곁에서 지켜봐 주고 그 방황이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건네준 남편에게 언제나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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