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불평러 대신 프로 도전러
삶의 방향이나 철학 따위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길이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물 중 하나가 돈이라는 것에 고개를 저을 사람은 그 누구도 없겠지만 돈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것이라면 대기업을 뿌리치고 나오거나 안정적인 꿈의 직장에서 사표를 쓰고 나오는 사람들은 조금 다른 비교 조건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난하게도 살아봤고 한국에 돌아와 '돈'을 쫓는 일도 해봤지만(많지는 않지만 먹고사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 사고 싶은 것 하나쯤은 살 수 있는 사치를 부리리는 일이 가능한) 그 무엇도 정답이라 부를 수 없는 보기의 것들이었기에 나는 자주 풀 죽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인간관계라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던 나였기에 뒤늦게 돌아온 한국에서 사회생활이 가장 큰 어려움이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돈이 최고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브랜드가 아닌 옷을 입고 같은 모양의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은 꽤나 초라해지는 일이었다. 세상을 너무 순수하게만 바라본 까닭에 남들의 시선마저도 나에게는 상처가 되곤 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점심을 먹고 누군가의 험담을 듣고 앉아 있었지만 그런 나의 발버둥은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그대로 불평으로 쏟아지곤 했다.
"못하겠어 정말"
"돈을 벌어보고 싶다고 네가 선택했던 일이잖아. 나는 처음부터 네가 이렇게 그만두겠다는 말을 할지 예상하고 있었어. 네가 추구하는 방향과 전혀 맞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무엇을 하든 네 자유이지만 어느 회사를 가든 조직은 다 비슷하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 나라고 회사가 행복한 건 아니야. 그래도 내일이 있으니까 가까스로 견디는 것이지. 매일 이렇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다음을 준비하는 게 어떨까?"
그는 말 그대로 '뼈 때리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잘하는 것도 모자라 냉정하게 하는 사람 말이다. 내가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았던 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사실은 모두 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현실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기만 했지 내가 있는 곳에서 빠져나가려는 처절한 노력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게 분명했다. 어쩌면 아침 일찍 출근을 하고 이따금 글을 쓰는 것만으로 자기 위안이나 합리화 따위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가 먹먹한 표정으로 꺼낸 이야기들은 나를 무척이나 숙연해지게 만들었다.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불평의 주범이 되어 온 억지로 하는 행동들을 그만 두기로 했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어려운 시간을 견디는 일을 대신해 사무실에 남아 혼자 밥을 먹으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혼자의 시간은 생각보다 나를 더욱 풍부해지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험담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사용하는 에너지보다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며 영글어져 가는 시간은 나에게 작은 행복으로 다가왔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었다. 사색의 여유조차 없던 직장인이 되어버렸지만 홀로 남아 사무실 밖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은 삶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여유를 선물해 주었다.
포트폴리오를 다듬기 시작했으며 지난 1년 간 내가 해온 직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생각보다 나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취업의 문턱에서는 조금씩 말문이 줄어들겠지만 말이다..) 직장을 구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나의 행동은 점차 나의 목표나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책을 내겠다는 작은 목표를 떠올리며 그동안 써두었던 글들을 서랍 깊숙한 곳에서 꺼내고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울 기획이나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클래스에 등록했다. 그야말로 달력이 점차 빼곡해지는 일상을 살아가는 중이었지만 현재에 불평을 할 시간이나 생각은 이미 하얗게 증발해 버린 뒤였다. 하루 24시간,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들은 바로 코 앞의 일보다 더 먼 미래의 일을 고민하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내가 가진 삶의 방향을 들여다보며 잘할 수 있는 일이나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바로 변화가 시작되고 가장 먼저 해낸 일 중 하나였다. 나쁘지 않은 변화들이었다. 오랫동안 해내지 못했던 스스로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일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물론 목표로 했던 일들이 이뤄지고 더 나은 직장으로의 이직이 (혹은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도전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불평을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지금이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분명 좋은 변화의 길에 들어선 것이 분명했다. 내일이 조금 더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