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일상에서 로그아웃

가끔은 조금 다른 삶을 살러 갑니다

by Jessie
IMG_9741.JPG 에어비앤비_평창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지난 해 연말을 떠올렸다. 한국에 돌아오고 보낸 크리스마스들은 언제나 춥고 시려운 기억들이었다. 지난 해 연말엔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아 살고 있던 집을 급하게 빼며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돌아다녔고 그 전전해에는 회사가 망해버리는 바람에 백수인 채로 단칸방에서 겨울을 났다. 그와 내가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라는 것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렇다 할 기억도 없을만큼 작고 보잘 것없는 기억이었다. 연말이 오면 마음이 시려오는 것은 그런 이유들이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번 겨울은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다른 해보다는 조금 더 따뜻한 기억이 남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일상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있는 여정을 그에게 제안했다. 크리스마스엔 엄청난 인파로 어디든 혼잡할 터이니 조금 일찍 휴가를 먼 곳에서 보내고 돌아오는게 어떻겠냐고 말이다. 이따금 에어비앤비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길 좋아하는 나였기에 이번 여행도 에어비앤비로 강원도 어딘가를 검색하다가 불멍을 때리기 아주 적합한 통나무집을 찾고선 2박을 예약했다.









IMG_9753.JPG 에어비앤비 _ 주인부부의 배려가 돋보이는 풍경


이번 여행의 테마는 휴식.


2019년 2월까지 쉼없이 달려야만 했고 2월 말에 정신없이 결혼을 감행했으며 오늘이 오기까지 너무나도 바빴던 남편으로 인해 우리는 함께 휴식을 취할만한 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했다. 주변을 챙기느라, 가족을 챙기느라 정작 본인은 돌보지 못하고 지내온 남편이 갑작스러운 일들을 겪고 방황하는 모습을 내색하지 않고 지켜보면서 나는 나보다는 그에게 더 필요한 것이 바로 일상에서 떠나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가 바쁜 시간들동안 내 마음 속에도 남편에 대한 섭섭함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대한 원망들이 계속 쌓여만 갔고 나는 그가 이야기를 건낼 때마다 감출 수 없는 마음의 앙금을 자꾸만 꺼내 보이며 그에게 칼날을 들이대기도 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의 오해와 섭섭함을 나눌만한 마음의 여유와 시간들이었다.




평창에서도 깊숙한 산 속 꼬불길을 따라와야 도착할 수 있는 통나무집은 주인 아저씨의 배려로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고 있었다. 핀란드의 산타 마을을 연상케하는 통나무 집과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따스함이라니. 최소한의 것들만 구비되어 있는 미니멀한 통나무집은 그야말로 마음을 비우기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해가 뉘엇뉘엇 져가는 길게 뻗은 소나무 사이로 딱따구리 소리가 들리고 있었고 주인 내외의 집 앞에는 오밀조밀한 고양이 여러마리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자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는 서울에서 경험하던 것과는 꽤 다른 질감의 것이라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서울의 가장 중심이라 불리는 테헤란로 어딘가에서 직장인으로 1년의 시간이 지났다. 어릴 때부터 부유하게 살았다던 팀원들 사이에서 가벼운 주머니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부터 사회생활 시작부터 깨달아야 했으니 바쁜 그가 그의 팀과 회사를 챙기는동안 내가 점차 주눅들어 가는 것을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역시도 스스로도 챙기지 못할만큼 많이 지쳐 있었다. 회사는 그런 그가 너덜너덜해져서야 비로소 '시간을 준다'는 명분으로 그의 역할을 마음대로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고 그가 했던 일들은 모두 다른 이의 공으로 돌아갔다. 수고했다는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회사의 대표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엘리트들의 논리적이고 정량적인 수치에 대한 맹신은 그가 처음 입사했을 때의 건강하고 밝은 회사와는 선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믿고 키워주는 스타트업의 특징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 짐을 싸게 되는 풍경은 아마도 스타트업이라는 경계를 뛰어넘어 중소기업이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몰랐다. 회사라는 것이 저렇게나 차갑고 냉정한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기도 했지만 열심히 살아도 결국 돌아오는 결과가 저런 모습인가에 대한 아이러니에 나는 그 뒤에서 몰래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던 시간들이었다. 이제서야 곁에 돌아온 그에게 쌓여있던 섭섭함은 음지에 놓여진 눈처럼 쉽게 녹지 않았고 나는 그런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그 행동과 생각들을 쉽게 내려놓지를 못했다. 그런 마음을 안고 꾸역꾸역 살아가던 우리였기에 두 시간 반 거리의 강원도로 오는 일이 망설여지지 않았다.



우리는 방 안에 설치된 아궁이에 장작을 집어 넣으며 말없이 밤을 맞이했다. 오랫동안 이렇다 할 대화없이 화로 곁에 앉아 지난 시간들을 곰곰히 떠올리면서. 섭섭했고 서러웠고 어려웠던 시간들이 장작과 함께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쉬어도 쉬지 않은 것만 같고 잠들어도 개운하지 않았던 서울에서 벗어나 걸을 때마다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숲 속에서 시간을 보내자 잊고 있던 감각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마음의 여유는 일상을 조금 벗어나서야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썩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우리의 조금 이른 크리스마스가 깊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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