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아빠의 길거리 투쟁 그 후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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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겨울,

아빠는 난생처음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시골에 사는 아빠를 서울에서 만나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임에 분명했지만 나는 자꾸만 마음이 시렸다. 그것은 바로 아빠의 투쟁 때문이었다. 200일이 넘는 최장의 투쟁 기간 동안 대전과 서울 서초에 각각 위치한 회사 앞에서 찬 바람을 맞아가며 사람들의 동정 어린 혹은 냉담한 시선을 받을 아빠를 생각하면 자꾸만 어딘가가 시려워 나는 책상에 앉아있는 일조차 괴롭게 느껴지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깥 날씨를 확인하러 편의점에 가는 척 밖으로 나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서울의 인심이 얼마나 퍽퍽한지를 이야기했다. 음식도 비싸고 주차비도 상상을 초월하는 그 서울에서 꾸역꾸역 버티는 내가 떠올라서인지 아빠는 그 겨울 이후 자주 나에게 연락을 하곤 했다. 줄 수 있는 게 멀리서 보내는 온기 담긴 메시지뿐이지만 그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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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여 일의 길거리 투쟁과 노숙이 끝이 나던 지난겨울, 아빠는 많이 지쳐 있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몸 담았던 회사를 자랑스러워하던 아빠, 회사의 CEO가 쓴 책을 건네며 읽어보라던 아빠는 더 이상 한 회사에서 오래 몸 담고 있던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 겨울 이후 어렵사리 모두 회사에 복직했지만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 적은 시간을 나눠서 교대 근무를 하던 회사는 마침내 절반 이상의 직원을 줄이는 구조조정 벽보를 내붙였다.



35년 간 아빠가 모든 청춘을 다 바친 회사는 초등학생 시절 나와 내 팀원들의 현장 견학 장소였고, IMF 시절의 어려움을 가족과 함께 견뎌낸 공간이었으며, 3교대를 하는 아빠가 아침과 낮 그리고 밤을 보낸 장소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밤을 새우고 아침에 돌아오는 야간조가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한 철없던 나는 아빠가 챙겨 오는 빵을 기다리며 아침 8시가 되면 복도 끝에서부터 들리는 발자국 소리를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아빠가 주머니에서 꺼내는 빵이 롤케이크 빵이길 간절히 바라며 아침 7시 반부터 아빠를 기다리던 내 모습은 그 빵들이 아빠가 채 먹지 않고 챙겨 오는 것임을 알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전히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빛바랜 남색의 작업복 안 주머니에서 흰 우유 두 개와 빵 두어 개를 부스럭 거리며 꺼내던 아빠가 있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자주 미워했다. 혼자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것처럼 술을 마시고 비틀대며 들어오는 아빠가 미웠고 마음속에 있던 서러움을 술만 마시면 엄마에게 쏟아내는 아빠가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기다리는 엄마는 생각도 하지 않고 당장 딸과 아들의 수능이 내일인데도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빠가 이기적이라고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는 아빠가 왜 술을 마시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술을 마셔야만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어서 그러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취해가는 자신을 스스로도 미워했다는 것을 남편을 보면서 얼마 전에야 겨우 깨닫게 된 것이었다.








제목 없음.png 아빠와의 카톡



2019년을 며칠 남기지 않고 아빠는 나에게 긴 통화를 하고 싶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아빠는 이미 세 달 전부터 굳은 결심을 한 것인지 삭발을 감행했고 그 후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한 번도 무언가가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던 아빠였는데 며칠 전 문득 모자가 가지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2만 원 언저리라고 하던데 사주면 고맙지"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아빠는 오늘에서야 퇴직선물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여의치 않은 형편인 우리를 잘 알고 있던 아빠였기에 시집간 딸이 돈 쓰는 것이 아까워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돈 아껴 쓰라는 말을 습관처럼 건네던 아빠였다. 이미 엄마를 통해 아빠가 회사의 구조조정을 더는 견디지 못해 사표를 냈다는 사실을 들은 채였지만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갔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빠의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미안함은 가장으로써 빛을 잃은 어깨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길을 잃은 발걸음의 무게로 인해 더욱 낮게 맴돌았다. 조금의 위로금은 챙겨줄 테니 괜찮을 거라는 아빠의 이야기는 다른 이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멀리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아빠의 말 뒤로는 현장에서 투쟁을 하는 또 다른 아버지들의 고함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더는 길 위에서 찬바람을 견딜 수도, 밥그릇 하나 지키자고 다른 이의 자리를 빼앗는 일도 할 수가 없다는 아빠의 목소리엔 생기가 증발한 지 오래였다. 아빠는 마지막까지도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에게는 내색하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둔 남동생이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다는 계획도 함께 말이다. 갑자기 집 안의 백수가 둘이 되어 한숨이 깊어진 엄마였지만 남동생과 아빠의 여행 계획은 모두 엄마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아마 아빠는 알지 못할 것이다.


사람 냄새나는 풍경을 그리워하던 아빠와 남동생의 여행이 얼마나 오래일지 또 여행의 시작이 언제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이토록 추운 겨울에도 목련은 봉오리를 머금은 채 봄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빠와 동생이 발견할 수 있길 나는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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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반드시 봄을 데리고 온다.

분명, 인생도 그러하다. /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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