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앓고 있는 '불안'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하는 중이다. 단지 5-10분 일찍 집에서 나서는 것만으로도 지하철의 붐빔을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집에 남아있는 마스크를 확인한 뒤 이를 까먹지 않기 위해 현관 옆에 마스크 박스를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출근길에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 마스크를 끼고 나갈 것을 다시 한번 당부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남편은 자주 잊어버리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혹시'라는 두려움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불과 며칠 만에 마스크 없이는 외출도 두려워지는 오늘이 온 것이다. 지하철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 중 마스크를 낀 사람이 1/3 정도밖에 안되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1/2의 비율로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출근길에 오르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들 중 아마 절반은 나처럼 연신 뉴스를 보며 당장 내일의 모습을 걱정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수많은 바이러스를 전 세계로 전파시킨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명적인 전파력에서 결코 우리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출근을 해서도 마스크를 끼고 근무를 한다는 남편의 회사와는 달리 자차로 출근하는 이가 많은 우리 회사는 마스크를 끼고 근무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콜록거리거나 훌쩍이는 것도 괜히 눈치를 보게 되는 풍경은 사람으로 빼곡히 들어찬 지하철만큼이나 숨 막히는 것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불안의 위력을 잘 알고 있기에 모두들 침묵 속에서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누군가와 만나는 약속은 최대한 만들지 않고 퇴근 후 바로 집으로 돌아오지만 운동을 가는 것도 조금 꺼려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일산에 살고 있는 친구는 임신한 몸과 3살 배기 아기를 걱정하며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기로 했단다. 당장 1월 마지막 날에 재롱잔치를 하기로 했던 조카의 유치원에서도 취소를 통보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불평을 하지 않았던 것은 사람이 모인 곳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정부의 안내와 공고문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띄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던 중 흘러나오는 역무원의 안내 방송 역시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개개인의 협조를 바란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지하철 역사 내에 비치된 손 소독제와 출근길 빌딩 입구에 붙어 있는 공지문, 나라에서 발송되어 온 알림까지도 모두 보이지 않는 불안을 이겨내려는 굳은 의지처럼 보였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아니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던 일들이 매일 쏟아지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불안'은 현대인이 가장 크게 앓고 있는 병이 아닐까를 생각한다.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불안'은 자신의 길을 찾아 가는데 가장 좋은 연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불안'은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 어른이 된 이후, 서울로 돌아온 후 하루도 개운하게 일어나 본 적이 없던 것은 아마도 매일 앓고 있는 이 정체모를 불안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빨리 오늘의 불안이 잦아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