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딸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by Jessie


나는 매일 아침 7시면 집을 나선다. 조금 더 여유롭게 회사에 갈 수도 있지만 3년 차인 서울 생활에서 아직 만원 지하철만은 적응하지 못한 이유에서였다. 7시에 집을 나서기 위해 매일 새벽 5시 30분부터 6시 사이 알람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 입고 집을 나서면 골목은 여전히 지난밤의 흔적들을 머금고 있었다.



회사에 가기 위해 7호선을 타고 건대입구에 내려 다시 2호선으로 갈아탄다. 벌써 1년 반 동안 반복되는 출근길이지만 매일 마지막이 될 출근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내 일과 중 하나이다. 지금의 생활은 다음의 스텝을 위한 시간이라고 언제나 믿고 있기 때문이다. 2호선 삼성역에 내려 3분쯤 빠르게 걸음을 옮기면 회사에 도착하는데 대게는 제일 먼저 회사에 도착해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아침 출근길,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바로 회사의 청소를 담당하고 계시는 여사님이다. (나는 왠지 모르겠지만 이모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모님은 매일 아침 첫차를 타고 이 곳으로 가장 먼저 출근을 해 회사의 청소를 맡아서 해주고 계신다. 사무실의 쓰레기통들을 치워주실 뿐만 아니라 화장실 청소, 복도 청소까지 우리가 쓰고 있는 층 전체의 청결까지 도맡아 주시는 고마운 분이 아닐 수 없다. 몇 해전 올림픽 의전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 동도 트기 전 첫 차를 타본 경험이 있는 나였기에 첫 차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알고 있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의 어머니 또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그런 첫 차를 운행하는 버스 기사님조차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걸 두 눈에 담는 귀한 시간이었다.



회사에 출근을 하면 제일 먼저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이모님과 아침 인사를 나눈다. 나는 그 이모님과 인사를 나눌 때마다 멀리 고향에 있는 엄마를 떠올리곤 한다. 엄마 역시도 우리 남매를 키우기 위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회사 탕비실에 들어가 음료 한 잔을 만들어 이모님께 가져다 드리고 나면 왠지 하루의 보람이 40%는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직업이 다를 뿐인데 청소를 하신다는 이유만으로 화장실 옆 의자에서 하루를 보내셔야 하는 이모님들을 볼 때면, 정수기 한번 마음 놓고 사용하시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면 언제나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고 이모님들께 밝게 인사를 건네고 여유가 있을 때면 음료 한 잔을 나눠 마시는 일뿐이지만 이 작은 행동으로 이모님들이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나 역시 감사한 마음이 된다. 하지만 나의 모든 행동들은 누구에게나 친절하시던 부모님에게서 배운 것들이었고 나 역시도 지난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진 빚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아빠는 200일이 넘는 날 동안 길거리 투쟁을 했다.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멈춰버린 기계를 뒤로하고 400km 떨어진 서초구 본사와 대전의 공장을 번갈아 다니며 길거리 노숙을 해왔던 것이었다. 회사의 불합리함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회사 대표에게 정당한 해결 방법을 요구하는 당연한 일이 서울에서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는 걸 아빠를 통해 깨달았다. 살을 에는 추위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아픈 날도 있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밝은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추운 날씨 속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빠에게 한 학생이 따뜻한 음료를 건네고 갔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딸랑구, 오늘 대전역에서 사람들한테 우리가 만든 안내문 나눠주고 있는데 딸랑구 닮은 학생이 와서 따뜻한 음료수 주고 가더라. 보니까 딸랑구 생각도 많이 나고 고맙더라고. 힘내라고 하고 갔는데 고마웠어 정말"



아빠는 결국 회사를 나오시고 말았지만 그 날 아빠에게 음료를 건네준 누군가의 마음 덕분에 아빠는 지난겨울을 잘 이겨내실 수 있었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부모님께 작은 보탬과 위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뜻도 의미도 찾지 못한 일을 꾸역꾸역 해나가는 나에게 오늘날 가장 큰 원동력은 돈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기계처럼 회사에 다니고 점심을 때우는 것이 사실은 1년 반 동안 내가 지내오던 모습이었다. 며칠 전 역시도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과 컵라면을 사서 화장실 선반에 올려둔 채 미리 다녀오지 못한 화장실을 해결하고 나오던 중이었다. 화장실 옆 의자에서 무언가를 가만히 바라보시던 이모님의 시선 끝에는 내가 대충 끼니를 때우기 위해 사온 컵라면과 김밥 한 줄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유, 왜 저런 걸 먹어요. 점심시간 1시간이면 나가서 따뜻한 국물을 먹어야지. 따뜻하게 속도 덥혀야 일을 하지...., "



조금은 속상하고 슬퍼 보이는 또 안쓰러움이 담긴 이모님의 눈을 보는 순간 나는 깨닫고 말았다. 이모님은 나를 보며 본인의 가족을 생각하고 있으셨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사는 게 바쁘고 힘들어도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잊고 살았던 나의 지난날들을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더 자주 생각하곤 한다. 오늘 내가 탄 버스의 기사님이, 음식을 건네주시는 식당의 아주머님이 또 커피를 내려주는 아르바이트생이 내 가족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언젠가 아빠의 부르튼 손에 따뜻한 음료를 건네준 이를 떠올리며, 군 생활로 잔뜩 그을린 동생에게 초콜릿을 쥐어주신 어느 신사분을 생각하며 나도 누군가의 가족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자꾸만 인색해지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따뜻한 사람들은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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