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월드 인턴십 (플로리다에서 보낸 반년)
일을 그만두겠노라 남편에게 선언했다. 남편은 이미 예전부터 그만두라는 말을 했었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건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어마 무시한 대출 이자와 카드 값 때문이었다. 10평도 채 안 되는 투룸과 네 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 이자만도 100만 원에 육박했으니 그만두는 것이 두려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격려에 어렵게 사직서를 냈다. 몸보다는 마음이 더 아픈 이유에서였다. 성장이나 좋은 동료 혹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2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겨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앞서 말한 가치들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먹고살기 위해 하고 있는 일, 일말의 책임감 외에 내가 일을 이어갈 이유는 없었다. 남편은 한국에 돌아와 한 직장에서 벌써 4년을 일하며 여전히 성장하는 것이 보람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이 자꾸만 초라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일에 치여 점점 내가 좋아하는 일들과 멀어지는 모습을 돌아보면서 그제야 멈춰 설 용기를 냈다.
그만두고 제일 처음 한 것은 '정리정돈' 그리고 '나 스스로를 찾는 일'이었다. 모든 것들에 크고 작은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나였기에 버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어려웠지만 일을 그만두고 제일 먼저 결심한 것은 나에게 필요 없는 것들을 당장 정리하는 습관이었다. 사실 나는 점점 쌓여가는 물건들로 어지럽혀지는 책상을 핑계 대며 글을 쓰지 않은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핑계가 될 만한 것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내가 당장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을 정리한 후 온갖 에러로 느려 터진 컴퓨터도 포맷을 해버렸다. 처음부터 완벽한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기에 나는 컴퓨터 앞에 앉는 연습을 제일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한참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것은 나의 10년 간 기억들이 담겨 있는 외장 하드였다. 미국, 호주, 산티아고 순례길, 뉴질랜드, 필리핀, 방콕까지 나는 먼지가 뿌옇게 쌓인 추억 상자 속으로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소중한 장면은 바로 나의 오래된 추억이자 보물, 디즈니랜드에서 일했던 기억들이었다.
10년 전부터 우리 세대는 대학 성적보다는 스펙을 쌓으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이 바로 07학번 전후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둔했던 나는 스펙을 쌓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학교에서 좋은 사람들과 생활하는 것에 집중하며 지냈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진로 탐색 프로그램이나 동료 상담자 훈련, 학생회 활동, 봉사활동, 선후배 관계도 모두 열심히였던 시절이었다. 다들 그렇게까지 해서 남는 게 없다고 말했지만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나만의 철학이었기에 조금은 고집스럽게 살아온 게 아니었을까.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해외 연수를 떠났을 때 엄마의 수술을 비롯해 그 당시의 집안 형편으로 많은 것들을 내려놓은 시기가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엄마를 간호하며 지내고 있던 그 시절, 디즈니 인턴십이 있으니 지원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나에게 문자로, 전화로 소식을 알려온 친구와 선배들의 응원 속에서 나는 아주 작은 한줄기 빛을 보았다. 학교 공지문 게시판에 올라온 그 공지문은 조회수가 다른 어떤 게시물보다 몇 배나 높았지만 수많은 경쟁자들에 으레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친다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날, 간절하고도 소중한 꿈을 꿨다.
평소 학교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과 학과 생활을 열심히 한 결과 교수님의 추천을 받을 수 있었고 서류 전형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이미 절 반의 꿈을 이룬 듯한 기분이었다. 기쁜 마음을 억지로 다독거리며 당장 눈 앞에 있는 1차와 2차 인터뷰를 준비해야 했다. 인턴십에 참가하기 위해 필요한 비행기 값과 한 달의 연수 비용을 해결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였다. 나는 A4용지 두 장 반에 가득 적혀있는 자기소개와 지원동기를 열심히 읊어 외우기 시작했다. 수능 영어 5등급의 내가 그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빼곡한 영어 문장들을 외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당시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던 남자 친구에게 영어 문법 첨삭을 받았고 나는 화장실, 길거리, 버스 안 그 어디서든 꼬깃꼬깃한 하얀 종이를 펼쳐가며 영어 문장들을 외웠다. 문장들을 얼추 외운 후에는 적절한 제스처 연습을 위해 매일 셀프로 영상을 찍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부탁했다. 자기소개를 준비하며 문득 든 생각은 어학연수를 다녀오거나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친구들과 나의 또렷한 차별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강점을 떠올렸다.
“밝은 성격과 적극적인 태도 그리고 열정”
이 모든 것들을 단 몇 분의 시간 안에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지를 가장 먼저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지만 나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를 만들기로 했다. 내 키만 한 전지를 사서 다양한 활동을 했던 내 사진들을 붙이고 간단한 제목을 붙였다. 대외활동을 하는 나, 도전을 즐기는 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나. 어색한 영어보다 내 열정과 적극성을 높이 사주신 교수님과 디즈니 월드 인사 담당자 덕분에 1차, 2차 면접을 통과하고 나는 어렵사리 인턴십의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어렵게 통과한 디즈니 인턴십의 기회였기에 나는 그곳에서 보낸 반년의 시간 동안 영어를 못해서 듣게 된 꾸중이나 어렵고 지저분한 일들도 이겨낼 수 있었다. 매일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고 새로움의 연속이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간절하게 원했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디즈니랜드의 경험을 위해 날아온 자유분방한 친구들, 서로 다른 삶과 경험을 공유하며 배운 삶의 깨달음은 아마 내 간절함의 대가였으리라.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날의 기억이 또렷한 건 내 생에 가장 열정적이고 간절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간절함이 누군가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달았고 그 간절함 덕분에 훗날 호주로 가는 인턴십의 기회도 또 산티아고 순례길도 오를 수가 있었다는 것을 요즘의 나는 잊어버린 채 살고 있었다. 멈춘 덕분에 깨닫게 된 소중한 감정이었다.
나는 책상 위에 그 날의 기억들을 붙여 두었다. 다시 간절해지고 싶은 내 다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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