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강아지 그리고 문장을 써내려 가는 일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일 새벽 5시 30분이면 울리던 알람에서 벗어나 요즘은 스스로에게 꽤나 느긋해진 편이다. 한동안은 그저 정해지지 않은 대로 하루를 보냈지만 오늘부터는 조금 계획적으로 살기로 했으니 아침 7시 30분으로 알람을 맞췄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일을 좋아한다. 이른 새벽부터 혹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 점심이 채 되기도 전에 To do list를 모두 지워내는 경험은 짜릿하다 못해 엄청난 성취감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출근을 하는 날이라면 비 오는 소리가 썩 반갑지 않았겠지만 오늘 창 밖의 비 오는 풍경은 집에서 글을 쓰기에 그만인 장면이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은 카페에 갈 수가 없으니 원두를 구매했었다. 캡슐을 넣고 버튼을 눌러 간편하게 마시는 커피도 좋지만 직접 원두를 갈아 마시는 커피에는 조금 더 애정이 간다. 그라인더에 원두를 우드드- 부은 후, 주전자에 물을 올려두고 마침내 그라인더를 갈아준다. 반복적이고 시간이 드는 일이지만 성격이 급한 내가 굳이 이렇게 커피를 마시는 것은 원두가 갈리면서 풍기는 커피의 향을 가득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라인더 통을 열어 막 갈린 원두의 향을 맡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해지는 일이다. (이것 하나는 장담할 수 있다!)
커피 필터에 잘 갈린 녀석들을 쏟아놓고 평평하게 몇 번 두드려주고 나면 드디어 커피 내릴 준비가 끝이 난다. 주전자 가득 끓여진 물을 작은 핸드드립 주전자에 옮겨 담고 서서히 물을 부어주면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온다. 원두가 얼마나 신선한 지를 확인하려면 바로 이 거품을 확인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인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따뜻한 물과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려진 커피를 50대 50의 비율로 머그컵에 붓고 나면 드디어 하루가 시작된다. 검고 어두운 것을 통해 나의 세계가 시작된다는 느낌은 꽤나 신선하기까지 하다.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강아지의 밥을 주는 일이다. 나 자신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내가 강아지를 키운다는 소식에 부모님을 비롯해 모두가 놀랐지만 이 모든 일들을 적극적으로 진행한 사람은 바로 남편이었다. 남편은 아기도, 지나가는 강아지에도 별로 흥미가 없던 사람이었지만 워낙 그런 작고 여린 것들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삶의 시선을 조금 바꾼 듯했다. 한국에 돌아와 거듭되는 실패와 낯선 도시의 삶이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많은 것들을 의존하게 했지만 강아지를 데리고 온 후 나는 책임감이라는 이유로 조금 강해진 것 같기도 하다. 태어나서 처음 그 존재의 모든 것이 되는 경험은 당신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 중 가장 으뜸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녀석은 아침부터 나를 따라 침대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는데 '빠빠 먹자'라는 말에 유독 반가워한다. 매일 보는 모습이지만 녀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반겨준다. 남편과 나의 관계는 가끔 다투기도 하고 모르는 척해버릴 때도 있지만 심바와 나의 관계는 한결같다. 언제나 같은 반가움의 농도로 나를 반겨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에 나는 이 기적을 위해 많은 불편을 감당하기로 했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경험이라 나는 매일 강아지 심바에게 기꺼운 마음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내 하루 중 많은 자투리 시간은 다음 글이나 그림을 어떻게 그릴 지를 상상하고 구상하는데 쓰이는데 그중 가능성이 있을 법한 글감 하나를 가지고 책상에 앉으면 초안을 완성시키기까지 커피 한잔이 유일한 친구가 된다. 누군가는 글을 쓰는 일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지만 남편은 몇 번이고 나에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했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의 응원을 떠올리면 나는 자꾸만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오랫동안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나를 자꾸만 다정하게 만든다.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 그리고 또 내가 그리워하는 풍경들에 대해서.
일상 계정 @fightingsz
그림일기 @jessie_evenfolio
아직 철들지 않은 30대. 걷고 마시고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
손으로 써 내려가는 것들은 모두 따뜻한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 그래서 여전히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