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을 혼자 해나가는 연습
부지런한 척하며 살았던 게으름뱅이
부지런한 줄 알았던 나 자신이 껍질을 벗겨 보면 생각보다 꽤 게으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년 평생 아니 대학 기숙사 생활까지 하면 23년이란 시간을 아침 한 번 거른 적이 없었는데 호주에서 살던 시절부터 특히 서울 살이를 시작한 이후로는 지옥철을 타지 않기 위해 끼니를 거르고 다니는 일이 잦았다. 밥 한 숟가락을 안 먹어도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는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호주에서는 병원비가 금값이라 조금만 아프면 꾸역꾸역 밥을 챙겨 먹고 약을 먹으며 스스로 이겨냈지만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는 그간의 서러움을 치유라도 받으려는 듯 유독 병원 신세를 자주 졌다. 지금에서야 이토록 병원을 자주 가게 되는 건 어쩌면 부지런하지 않아서, 먹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리고 나 스스로가 건강할 거라는 자만이 오랫동안 깊게 배어 있어서였을 것이다. 크고 작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고 대게는 길어도 2주면 눈 녹은 듯 나았지만 이번 기침은 꽤 오래 지속되는 중이었다. 기관지염이라 들었는데 난생처음 듣는 이름에 의아해졌다. 심해지면 폐렴까지 갈 수 있다는 말보다 바깥 생활을 할 때마다 눈치를 봐야 하는 점이 더 힘들었다. 나아졌다 심해졌다를 반복하는 기침으로 잠에서도 이따금 깨어나는 일이 반복되며 나는 결국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 이 사실을 들키고 말았다.
"아직도 기침하는 거야? 생강차라도 보내줄 걸 그랬네.."
엄마는 서울로 올라가는 내 두 손에 언제나 그 계절에 수확되는 채소들을 가득 안겨주곤 했다. 봄이면 돌나물과 두릅, 여름이면 옥수수와 감자, 가을이면 토종밤과 감 그리고 겨울이면 추수를 끝내고 찧어온 햅쌀까지 말이다.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냉장고에 밀어 넣어둔 것들을 얼마 전 몇 가지나 발견했다. 월세에 살 땐 이사를 할 때마다 할머니와 부모님이 보내주신 각종 채소들과 곡물들을 버리며 가슴을 몇 번이고 쥐어뜯었는데 다시는 이렇게 죄책감 가질 일을 하지 말자 다짐하고선 엄마가 몇 번이고 가슴팍에 밀어 넣어 준 것들을 꾸역꾸역 가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고 있었다. 일을 쉬면서 엄마가 보내준 깻잎 장아찌, 양파절임, 비트 깍두기 등을 하나 둘 꺼내어 먹고 있다. 이상하게도 엄마의 정성이 담긴 것들은 400km를 달려 서울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다. 시간이 꽤 오랜 지금에도 말이다.
400km나 떨어진 이 곳에서 받은 엄마의 레시피
엄마가 생강청 만들어 놓은 것들 보내준다고 말하기 전에 나는 이번엔 직접 해 먹어 볼 테니 레시피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엄마는 고민하는 기색 없이 엄마가 해왔던 레시피를 아낌없이 풀어냈다.
"배 두어 개 사 오고, 생강이랑 그리고 도라지 있으면 같이 사 와서 깨끗하게 씻은 다음 작게 자르고 물 붓고 팔팔 끓여. 오래 끓이면 더 진해지니까 약한 불로 오래 끓였다가 꿀 넣어서 마셔. 목에는 손수건 두르고..."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엄마는 언제나 넘치도록 답을 준다. 면역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조금 한 뒤 엄마와의 통화를 떠올리며 주섬주섬 신발을 신고 이마트로 향했다. 평소였다면 그냥 누워서 미지근한 물이나 마시며 낮잠을 잤겠지만 이미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이유가 첫 번째였고, 오늘 밤에도 역시나 걱정 어린 마음으로 전화를 할 엄마를 너무도 잘 알아서였다. 태풍이 몇 차례나 지나고 과일이나 채소값이 모두 금값이 되어버렸기에 나는 배 2개, 생강 한 줌, 도라지 한 팩, 꿀 한 병을 안고 집으로 털레털레 돌아왔다. 냉장고에 모두 밀어 넣고 누워있을까를 생각해보았지만 더 이상 엄마에게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진 않았다. 정성스레 배를 깎고 생강을 씻어 껍질을 벗기고, 도라지 손질까지 하고 나니 어느새 구색이 맞춰졌다. 냄비에 정성스레 넣고 샤워를 하는 동안, 청소를 하는 동안, 강아지에게 빗질을 해주는 동안 오래 그리고 천천히 끓였다. 국자로 세 스푼을 가득 떠 아끼는 머그컵에 옮기고 꿀을 두 바퀴 돌리고 나니 어느새 집에서 먹던 배숙이 완성되었다. 서른셋의 나이에 여전히 잔소리를 들으며 사는 내가 짝꿍과 부모님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열 손가락이 채 접히지 않는다. 결혼을 해서도 여전히 아이 같은 나는 하루도 게으르지 않은 채 배숙을 끓이고 멸치 볶음을 하고, 아침 먹을 쌀을 씻고, 네 가족이 마실 보리차를 끓인 엄마의 세월을 떠올려 본다. 나는 고작 배숙 하나 만들어 먹는 것도 힘들었는데 엄마는 엄마가 되기까지 얼마나 오래 스스로를 단련시켜왔는가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