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찾아오는 직원

마무리를 잘하는 사람이 될 것

by Jessie
IMG_9136.jpg @카페 네이처 캔버스, 제주도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시작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끝내는가 이다 / 앤드류 매튜스


8월 중순, 1년 10개월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금이 11월이니 회사를 다시 찾은 건 두 달 하고도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뒤. 회사를 그만두고 코로나 2.5단계가 시행되었고 나는 최소 반경으로 움직이며 그동안 미뤄두었던 치과 치료를, 이사를 떠날 준비를, 복싱을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1단계로 하향 조정이 된 이후로는 강아지와 단 둘이 제주도로 쉼표를 찍으러 다녀왔다. 퇴사를 할 때면 으레 제주행 티켓을 끊어 작은 시골 마을 민박에 들어가 하염없이 동네를 걷고 사진을 찍으며 지내던 습관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들만 하면서 살던 어느 날 전화기가 울렸다. 회사 사장님께 걸려온 안부 전화였다.

돌아보면 퇴사를 하기 전 사장실에 들어가 오랜 면담을 했었고 사장님은 아쉽다는 말씀과 함께 내가 퇴사를 하는 날에는 여름휴가를 떠나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인사를 남기셨었는데 전화의 용건은 다름이 아니라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나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하셨다고 회사에 들렀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그간 내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익히 들어온 터라 회사에 다녀오겠다는 나에게 집에서 가장 깔끔하고 좋은 옷을 입고 가길 청했다. 그것은 어른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거니와 함께 회사를 다녔던 사람들에게 결코 나 스스로가 초라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나는 남편이 선물해준 코트를 입고 강남에 있는 회사로 향했다. 두 달이 흘렀지만 그새 길 위는 초록빛에서 짙은 갈색으로 무대가 바뀐 뒤였다. 목요일 오후 세시의 테헤란로는 여전히 바빴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IMG_9039.jpg @비 온 뒤 제주


모든 행동에는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다.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들고 회사로 향했다. 몇 개월 전 만해도 회사로 향하는 일이 꽤 숨 막히는 때가 있었지만 이젠 그 시간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괴로웠던 순간들이 모두 증발해 버린 뒤였다. 거센 구조조정의 폭풍이 지난 뒤라 직원들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얼굴들이 문을 열어 반겨주었다. 나는 사장님 방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노크를 했다. 사장님은 무척이나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셨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반가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또 행복하기도 했다. 사장님은 그동안의 근황을 물으셨고 나는 연말이면 시골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건강이 회복된 소식을 전해드렸고 사장님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정말 잘 되었다고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다.



몇십 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퇴사 후 찾아오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는 말씀을 하시던 사장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왜 떠나간 직원들이 찾아올 수 없었는 지를 생각했다. 설령 찾아오지 못하더라도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말이다. 퇴사를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하던 일들을 채 마무리 짓지 않고 떠나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좋지 않은 감정으로 회사를 떠나게 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원치 않았지만 구조조정으로 결론이 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구조조정이야 별개의 문제이지만 그 외의 이유라면 아주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주변에서도 역시 회사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싫다는 이유로 퇴사를 하는 날까지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해주지 않고 인터넷만 하며 떠나간 직원들을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었고 그들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썩 좋지 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아마 동료였던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나 역시도 원치 않는 역할들을 몇 개씩이나 맡으며 결국 포기 선언을 하게 되었지만 적어도, 퇴사를 결심한 이후로는 이전보다 훨씬 열심히 일했다. 다음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거니와 마지막은 아름답진 못하더라도 노력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사장님이 손수 포장하셨다는 선물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적어도 마무리에 최선을 다했던 나에게 무척이나 고마워졌다. 언제든 다시 찾아갔을 때 웃으며 지난 시간들을 감사했다고 또 고마웠다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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