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늘 미안해하는 마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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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이름


엄마와 아빠는 선을 본 뒤 3번째 만남에 결혼을 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80년대를 살아가는 부모님 세대에서는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또 거짓말처럼 결혼한 지 10개월 후에 내가 태어났으니 그야말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라곤 없는 신혼을 보낸 것이다. 돌아보면 그렇게 급할 것 없는 결혼이었을 텐데 그 시절에는 서른 살 언저리에만 가도 노처녀, 노총각 취급을 받곤 했으니 다들 나이가 차기 전에 결혼을 했던 모양이었다. 알지 못하는 무뚝뚝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아 시장통 방 두 칸의 월세방에서 첫 신혼살림을 꾸린 그녀는 오일장이 열릴 때면 시장에 나물을 팔러 오시는 할머니의 도시락을 싸고 작은 삼촌과 함께 살며 뒤치다꺼리를 했다. 마음 둘 곳도 없는 작은 읍내에서 혈혈단신 나를 키운 그녀는 가르쳐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 홀로 책을 보며 임신과 육아 생활을 공부했다. 그리고 그 시절 그녀의 정성 덕분에 나는 3.2킬로의 건장한 아이로 태어났다.


그녀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나이 23살 때의 일. 내 나이 23살에는 한창 미국을 누비며 세상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이나 꿈이라곤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일선으로 그리고 또 엄마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것이 그녀의 첫 번째 직업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승진할 일도 없고 연차도 내기 어려운 세상에서 가장 고된 일이었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온 모든 엄마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모든 선택에 있어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 그 일이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이들의 마음이 나는 자꾸만 궁금했다. 만원의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지를 단 가방을 들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엄마가 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몽글거렸다. 길거리에서 조금씩 걸음을 옮기는 작은 아이들에게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어쩌면 그게 엄마가 되어가는 준비였던 모양이다.


남편이 베트남으로 가고 친정으로 돌아와 아이가 커가는 시간들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고 있다. 입덧이 없어 유난히 자주 냉장고를 여는 나를 보고 그녀는 냉장고 가득 과일을 채워 두었다. 서울 전셋집에 혼자 있었더라면 냉장고 속에서 홀로 썩고 말았을 과일들이었는데 장소 하나 바뀌었다고 입맛이 이렇게나 빨리 돌 줄이야. 나를 가지고 살구가 먹고 싶어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던 1988년의 그녀는 그 시절이 아직 생경하게 떠오르는지 자주 내가 먹고 싶은 게 있는지를 묻곤 한다. 그 시절의 서러움은 평생을 간다는 어른들의 말씀은 빈 말이 아닌 모양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녀가 채워준 과일들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생명을 품은 임산부로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서서히 불러오는 배를 보고 있으니 아주 조금은 그녀의 청춘이 읽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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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늘 미안해하는 마음


나는 부엌에서 머물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자주 바라보곤 한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을 일들이 살림살이를 소박하게나마 장만해보고 나니 어느 것 하나도 당연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울로 향하는 내 손은 하루도 비어있는 날이 없었다. 내가 떠나기 전 날이면 부엌에서 몇 시간 동안 멸치나 미역줄기를 볶고 있던 엄마가 있었던 이유에서다. 다 먹지 못하고 버려지는 걸 알면서도 엄마는 몇 번이고 그렇게 반찬을 싸서 보내야 마음이 비로소 편해지는 듯 보였다. 나는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금방 찾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뭐든 해주고 싶어 하는 엄마를 생각하며 된장찌개 끓이는 법이나 시금치나물 무치는 법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무심하게 물어본다. 다 알아듣지 못해 전화를 끊으면 금세 인터넷에 검색해 볼 거면서 그래도 나에게 무언가 알려줄 때만큼은 무엇보다 활기 넘치는 그녀를 만나고 싶은 욕심에서다.


적어도 그녀는 내가 성장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일을 쉬어본 기억이 없다. 작은 부업거리부터 집 근처 크고 작은 공장으로의 출근까지 일을 하면서도 이따금 그녀는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곤 했다. 작은 반찬통부터 내가 신는 양말의 바느질 흔적까지 무엇 하나 그녀의 흔적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데 엄마는 늘 미안한 것부터 생각나는 습관이 있나 보다. 늘 미안해하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그녀보다 한참이나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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