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사이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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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빠는 20대 언저리부터 담배를 피웠다. 어쩌면 그보다 먼저 담배를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진실은 아빠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담배를 피기 위해 밖으로 향하는 아빠는 얼마 전까지도 금연에 실패했으니 이제 남은 인생은 몸이 크게 아프지 않은 이상 담배와 함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삶에 쉼표가 더 많이 생겼으니 아빠는 그 공백을 담배 연기로라도 채우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다고 고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임신 사실을 처음 알렸을 때 부모님은 꽤나 덤덤했다. 되려 병원에 다녀오고 확실해지면 알려달라는 이야기를 하셨을 뿐이었다. 병원에 다녀오고 첫 초음파 사진을 보내 드렸을 때도 엄마는 털털하게 '축하한다'라는 이야기를 건넸지만 아빠는 예전과 같았을 뿐이었다. 내가 신혼집을 정리하고 내려왔을 때에도, 이따금 들고 오는 초음파 사진을 볼 때도 아빠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단지 아빠는 내가 데리고 온 강아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녀석의 산책이나 간식을 무뚝뚝하게 챙겨주실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사이




사실 나와 아빠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하나 존재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 같은 성격의 아빠는 5살의 나를 그리고 20살을 훌쩍 넘기고 호주로 향하겠다는 내 뺨을 때렸다. 물론 그 처음이야 내가 삐뚤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겠지만 그 일로 인해 나는 아빠와 조금씩 멀어졌을 뿐이었다. 삐뚤어진 마음을 배낭에 구겨 넣고 나는 부모님께 말없이 호주로 출국했고 3년이란 시간 동안 아빠와 완전한 단절 속에 지냈다. 아빠는 호적에서 나를 파버리겠다며 노여워하셨고 엄마는 그 시간을 울음으로 채웠다. 그것이 살아오면서 나의 가장 큰 불효였다.



3년의 공백 사이에 비로소 온기가 돈 것은 결혼을 하겠다고 데리고 온 남자가 아빠의 마음에 조금씩 들면서부터였다. 서초구 한복판, 길거리 노숙과 파업을 이어가던 아빠와 동료분들 사이에서 발견한 그는 양손 가득 족발과 음료를 사들고 길거리에 앉아 아빠와 등을 나란히 하고 있었다. 그 따뜻한 장면이 오래 잊히지 않아 나는 그와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아빠가 서울에서 오래 마음고생했던 일을 계기로 우리 사이의 추운 계곡에는 비로소 봄이 찾아왔다. 코 끝까지 맵고 서럽던 지독한 겨울이었다.



아빠는 오늘도 여전히 일을 찾고 있다. 지난밤 아는 사람의 전화를 받고 내일부터 나올 수 있냐는 부탁에 흔쾌히 그러겠노라 했는데 창 밖으로 매섭게 부는 바람 소리가 아직 겨울이 채 지나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한다. 아빠는 내가 집으로 돌아와 부담이 된다며 푸념했지만 사실은 우리가 이렇게 함께 소소한 마음을 나누며 살 날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두 귀를 꼭 닫고 모르는 척 아빠를 배웅한다. 아마 아빠가 온전히 할아버지가 되는 그 날이 오면 우리 사이의 깊은 계곡은 평지가 되어 꽃이 피기도 하고 봄이 오기도 할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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