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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Feb 14. 2021

나는 아직 일을 할 수 있는 가장입니다

지난 35년에 대한 마침표 


 결혼을 앞두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35년 간 아빠가 다니던 회사가 구조조정을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그와 함께 회사의 기계들이 모두 멈춰버리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기계가 완전히 멈춰버린 것은 IMF 이후로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었기에 회사에 있는 모든 아버지들은 서초구에 위치한 본사와 대전에 있는 제 2 공장으로 흩어져 길거리 투쟁과 노숙을 시작하셨다. 서초구 길목에서, 대전역 앞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시민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것이 아버지들의 일과. 밤이 되면 회사 앞 길거리에서 어설픈 침낭을 덮고 잠이 들었다. 아버지들의 노력에도 끝내 회사 대표는 나타나지 않았고 접점을 찾는 것도 어려워져 노숙은 200일이 넘도록 이어졌다. 서울에 아는 이라고는 나밖에 없던 아빠가 난생처음 우리 집에 오고 싶다는 전화를 걸어왔을 때 지하철도 타본 적이 없는 아빠를 데리러 광화문으로 갔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담배냄새가 배인 아빠의 오랜 회사 작업복에는 안전제일이라는 글자가 빛을 바라 있었다.


 오랜 투쟁을 끝으로 아빠는 결국 회사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결혼을 할 때까지 아빠가 묵묵하게 35년이란 시간을 바친 곳에 말이다. 인건비가 싼 베트남으로 이전할 계획이라는 회사의 계획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마 빠른 시간 내에 이뤄질 것이라는 게 명백했기 때문이었고 아빠는 많이 지쳐있었다.






 나는 호주에서 돌아와 29살에 비로소 '회사'라고 불릴 수 있는 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호주에서 4년간 했던 일은 즐겁긴 했지만 꾸준히 돈을 벌 수 없는 직업이었기에 나는 오랜 고민 끝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했지만 가슴이 설레는 일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나는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이렇다 할 경력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30대라면 으레 정착을 하는 게 정석이지만 어떤 일이 나의 적성에 맞는 것인지 여전히 나침반을 들고 길을 헤매는 중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세대와 우리 세대가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분야에서 35년간 일을 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대단하고 또 존경받을 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아빠는 명예퇴직을 했고 환갑을 맞이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는 아빠가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가 결혼 생활 내내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빠 환갑 선물로 손주를 안겨주라는 기대에 부응한 것이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론이 그러하기에 집 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하고 계시지만 아빠만큼은 왠지 미묘한 표정이다. 아직 철부지 같은 딸이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으시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미안한 마음이 크신 듯해 보인다. 언젠가는 명예퇴직을 하고 또 언젠가는 할아버지가 될 거라 예상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이르게 찾아온 까닭이다.






 부모님은 나와 동생이 언제나 어딘가에 쓸모 있는 사람이길 원하셨다. 시장에서 파는 삼천 원, 오천 원짜리 바지를 사 입으며, 구멍 난 양말을 몇 번이고 꿰매 신으면서 우리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책 값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백수인 시절을 유난히 견디지 못하신 것은 본인들이 한 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주중이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면 할머니 댁으로 가 농사를 돕던 부모님의 일생은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어린 시절부터 당연하게 흘러가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되기까지 35년의 시간이 걸렸다. 결혼을 하고서야 비로소 부모를 이해하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요즘 자주 생각나는 까닭이다. 


 아빠는 요즘 뒤늦은 방황을 하고 있다. 20살에 우리가 처음 세상에 던져져 엄청난 자유 앞에서 숱하게 흔들리고 부딪히며 상처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20대의 자유와 60대의 자유 사이 가장 큰 간극은 가장의 무게와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무엇 하나 쉽게 선택할 수 없게 된 나이가 되었다는 것 아닐까. 누구도 본인을 찾아주지 않는 외로움과 부쩍 흘러버린 야속한 세월 앞에서 아빠는 자주 난처하고 또 곤란해하는 것만 같다. 아직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의지와 체력이 있는데 나는 왜 아침 9시에도 집에 머물고 있는지에 대해서,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선뜻 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듯 보인다. 아마 아빠 역시 이제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아빠를 조금 멀리서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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