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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Feb 13. 2021

결혼한 딸이 집에 돌아왔다

은퇴한 가장의 무게


 독립한 지 올해 15년 차. 고등학교 3학년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 집 밖을 전전하며 살았으니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보다 함께하지 않은 시간이 앞으로 더 길어지기 시작할 예정이었다. 내 오랜 부재에도 불구하고 15년 동안 내가 쓰던 물건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제자리에 지치지도 않고 놓여있다. 단지 내가 떠난 자리에 가족들의 물건들이 하나 둘 차곡차곡 쌓였고 내가 눕던 침대에 술 취한 아빠가 이따금 몸을 눕히곤 할 뿐이다.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남편의 갑작스러운 베트남 파견과 나의 임신을 계기로 나는 오랜 독립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목적지는 서울에서 400킬로미터 떨어진 울산의 작은 시골 마을. 그곳에는 환갑을 앞두고 퇴직을 한 아빠와 1년 넘도록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동생 그리고 얼떨결에 집안의 가장이 된 엄마가 있다. 엄마는 오래 떨어져 지낸 내가 돌아와 무척 기쁜 얼굴이었지만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 집으로 돌아온 내가 썩 반갑지 않으셨는지 아빠는 얼마 전 잔뜩 취한 모습으로 들어와 윽박을 지르셨다. 


"결혼하기 전까지 널 책임졌으면 된 거 아니냐? 왜 다시 집에 들어와서 사람 힘들게 만들고 그래?"


 맏딸이던 나에게만 유독 살가웠던 아빠이기에 흘러가는 술주정이라며 웃어넘길 수도 있었지만 임신으로 잔뜩 예민해진 나는 되려 가시 같은 말대답을 쏟아내고 결국 짐을 챙겨 집을 나오고 말았다. 임신한 딸이 무거운 몸으로 집을 나간 일을 두고 엄마는 우셨고 아빠는 침묵을 지켰다.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할머니 댁과 시댁을 전전하며 보냈고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고 잔뜩 속상해진 할머니의 설득으로 나는 가출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빠는 내심 미안하셨는지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말도 없이 식사만 하고 자리를 뜨시곤 했다. 그리고 어색함을 메우기 위해 습관처럼 베란다 한편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빠의 일과가 되었다. 




 나는 결혼하기 전과는 달리 강아지 한 마리와 14주에 접어든 생명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전세 계약을 연장해서 서울에 더 머물러도 괜찮았지만 굳이 전셋집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것은 오랜 시간 동안 가족과 시골을 그리워하던 마음이 깊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남편을 따라 베트남으로 가게 된다면 가족 곁으로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던 이유에서였다. 엄마는 내가 서울에서 잘 못 먹고 잘 못 쉬었을 거라는 생각이 있으셔서였는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끼니를 걱정하셨고, 먹고 싶은 과일이 없는지를 자주 확인했다. 덕분에 냉장고에는 사과와 귤, 망고, 파인애플까지 과일이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무엇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냉장고에 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면 나는 습관처럼 저녁상을 차린다. 하루 종일 일터에서 시달린 엄마를 위로하는 나의 가장 소박한 애정표현이었다. 엄마는 매일 혼자 혹은 아빠와 대화도 없는 저녁을 먹는 것이 적적했는데 내가 돌아온 이후로는 시끌벅적한 저녁 시간이 좋다며 웃었다. 입덧이 없어 무엇이든 잘 먹는 내가 엄마는 내심 기쁜 얼굴이다. 함께 저녁 드라마를 보고 뉴스를 보며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에 대한 비평을 하고 과일을 두어 개 집어 먹다 보면 밤이 온다. 엄마와 내가 쉴 새 없이 떠들고 무언가를 집어 먹는 동안 아빠는 내가 데리고 온 강아지를 쓰다듬거나 티브이를 보는 일이 전부다. 예전에도 엄마와 내가 대화를 할 때면 과묵하게 자리만 지키던 아빠였는데 요즘은 그런 사이에서 부쩍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 소파에 누워 시간을 보내거나 동네 드라이브를 하고 들어오는 일이 아빠의 몇 달째 일과. 불과 1-2년 전만 해도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추운 겨울에 서초동 본사 앞에서 길거리 집회와 노숙을 하고 이젠 제발 쉬고 싶다고 술에 취해 이야기하던 아빠였는데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무척이나 크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늦은 사춘기를 겪고 계신 중이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 줄어든 건 아빠의 말수만이 아니었는데 막상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빠의 등은 유독 더 작아 보인다. 





 우리 집 네 식구 중 유일하게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오는 사람이 엄마뿐이기에 아빠는 요즘 자주 가족들의 눈치를 본다. 아무도 아빠를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이 느끼는 온도와 무게는 우리가 느끼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인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따금 일용직을 나가는 아빠. 영하 10도, 13도를 웃도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귀가 밝아져 아빠가 신발 신는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뛰어나가 배웅을 한다. 마음까지 춥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술을 먹고 나에게 모진 소리를 한 아빠를 이해하기 위해 매일 집으로 들어오며 먼지가 잔뜩 묻은 아빠의 신발을 본다. 삶의 무게만큼이나 낡아버린 신발은 오늘따라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아빠를 닮아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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