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야속한 엄마의 오늘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해야 해.
그것이 삶을 이루는 버팀목이니까.
<심슨네 가족들>
얼마 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자주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의 말마따나 나는 외장하드 속 지난 기억들을 자주 꺼내어 보고 그리운 사람들에게 그 시절 우리의 모습을 이따금 전해주는데서 작은 기쁨을 느끼곤 한다. 그땐 그랬지 라며 추억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잠시라도 웃을 수 있으니 남은 하루는 그 소박한 즐거움으로 다시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있어서다.
집으로 돌아와 3평도 안 되는 방 정리를 하는데 일주일 넘게 시간이 늘어진 것도 정리를 하다 보면 구석구석에서 끝없이 나오는 크고 작은 추억들 때문이었다. 잊고 있던 추억들을 꺼내어 들여다보다 보면 반나절이 가고 또 다음 날도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나온 지난 연애편지를 보다 지난 과거로 몇 번이고 돌아가곤 했으니 시간이 늘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일주일 내내 정리가 끝나지 않는 내 방이 의아해 들어왔던 엄마는 오래되어 끝이 노랗게 바랜 어린 시절 앨범을 발견하고선 내 옆에 앉아 어느새 과거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아빠는 까맣고 우락부락한 생김새와는 달리 꽤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나와 남동생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할 때까지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모두 카메라에 담고 사진마다 어디서 또 누구와 갔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사진 옆에 작게 남겨 두었다. 마치 먼 훗날의 내가 이 앨범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게 될 거라는 걸 미리 알고 계셨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뱃속에 아이가 생겼을 때도 남편이 가장 먼저 나에게 권유했던 것은 아빠처럼 아이의 앨범을 이야기와 함께 담아주자는 것이었다. 남편은 초음파 사진부터 성장 과정을 차곡차곡 정리할 수 있도록 사진 앨범을 집으로 보내왔는데 나는 아빠와는 달리 꼼꼼한 재주가 없어서 여간 어설퍼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무튼 나는 섬세하고 자상한 부모님 덕분에 누구보다 많은 앨범을 가지고 있어서 자주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하지만 엄마는 먹고사는 일에 치이다 보니 나와는 달리 오랫동안 앨범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잔소리를 하러 들어온 엄마는 빛바랜 앨범을 앞에 두고 마치 오래된 보물을 찾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내 곁에 앉아한 장 한 장 앨범을 넘기다 어느새 말이 없어졌다. 엄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는데 티슈를 뽑아 엄마에게 쥐어주는 게 나의 작은 위로였다. 평생 아이로 남아있을 것만 같았던 우리가 너무 눈 깜짝할 사이에 자라 버렸고 그새 엄마는 부쩍 흰머리와 눈물이 늘었다.
엄마는 전라북도 무주에서 자랐다. 그 시절엔 으레 그랬던 것처럼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와 외삼촌을 두고 다른 집 살림을 차리셨고 엄마에게는 그것이 자라면서 가장 큰 아픔이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쉽게 잊히는 게 아니어서였는지 엄마는 외갓집에 갈 때면 항상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엄마가 시집 온 울산에서 무주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멀어서 반나절이 꼬박 걸리곤 했다. 울산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다시 무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무주에서 안성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잡아타야 비로소 외할머니 댁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외갓집에 가는 일은 기껏해야 4-5년에 한 번 정도였는데 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외할머니의 작은 집엔 늘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외삼촌들이 아무리 집으로 모시려 해도 외할머니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던 모양이다. 지난 세월에 대한 미안함에 외할머니는 엄마를 보면 그저 안타까웠던지 자꾸만 먹을 것을 건넸다. 따뜻한 아랫목으로 엄마를 이끄는 것이 할머니의 소박한 사랑이었고 그것이 나의 외갓집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다.
엄마는 그런 환경 속에서 성장하면서도 구김이나 흐트러짐 없었다. 불공평한 삶을 원망하기보다는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사는데 쓰는 엄마는 안쓰러운 사람을 위해 종종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지내는 딸과 일주일에 서너 번은 통화를 하고, 고향에 내려온 내게도 매일 먹고 싶은 것이 없냐며 퇴근길에 물어오는 일도 모두 다 그 시절의 엄마가 받지 못한 것들을 나에게 내리사랑처럼 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우리뿐만 아니라 주변까지도 아낌없이 베푸느라 늘 바빴다. 밖에선 돈을 벌고 집에선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주말이면 할머니 댁에 농사를 지으러 다니느라 엄마의 청춘이 쏜살같이 흘러버린 것을 본인도 채 깨닫지 못했었나 보다. 엄마의 기억은 여전히 빛바랜 앨범 속에 머물러 있는데 시간은 바람처럼 흘러 어느새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가는 길목에 있다.
얼마 전, KTX를 탈 일이 있었는데 표를 예매하지 못해 입석으로 서서 와야 했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엄마에겐 시간이 흐르는 일이 나보다 더 두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은 바삐 흘러가고 모든 것들이 날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발전해 가는데 그 속도에 맞춰 가기엔 살아가는 일이 너무도 고되었던 사람. 그 날 이후 엄마는 우리에게 늘 기차표를 예매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곁에서 엄마를 더 자주 바라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내 맘을 아는지 엄마는 늘 내가 데려온 강아지와 함께 잠을 잔다. 녀석이 마치 나인 것처럼 따뜻한 사랑을 주는 엄마를 떠올리며 오늘은 얼마 전 엄마가 예쁘다며 만지작 거리던 찻잔을 떠올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