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엄마가 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백 일이 조금 넘은 아이는 하루 서너 번 낮잠을 잔다. 그리고 그 시간은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고요히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은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과 냉장고에서 며칠간 묵혀두었던 반찬과 콩비지를 꺼내어 점심을 해 먹고 가스레인지 위의 크고 작은 얼룩들을 닦았다. 보통은 이 정도면 아이가 낮잠에서 깨어나 집안일을 할 틈을 주지 않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꽤 길고 깊은 낮잠을 자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얼마 전 서랍에서 꺼내 신었던 구멍 난 양말을 떠올렸다. 이젠 방향을 바꿔 신어도 발가락 끝에 바람이 들어와 어딘가에 구멍이 나있음을 알아차리게 만들었던 양말을 세 달이 훌쩍 지나서야 마주하고 있다. 만삭일 때는 하루하루 귀찮아서 양말 꿰매는 것을 미뤄두었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하루하루 엄마가 되는 일에 벅차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양말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그 양말들이 생각난 것은 꽤 뜬금없는 일이었다.
걷는 걸 유난히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엄지발가락이 길어서 양말은 늘 엄지발가락 언저리에서 가장 빨리 닳곤 했다. 학창 시절에는 교실에서 구멍 난 양말을 발견할 때면 급하게 오른쪽 왼쪽을 갈아 신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은 다음에 꺼내어 신을 때면 늘 가지런한 모습으로 구멍 하나 없이 말끔하게 꿰매져 있었다. 천 원 한 장이면 쉽게 살 수 있었던 양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늘 구멍 나고 낡은 것들을 깨끗하게 빨아 헤진 부분을 말끔하게 돌려놓곤 했다. 평일이면 늘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출근 준비를 하던, 저녁 일곱 시면 집에 돌아와 네 식구의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가 언제 구멍 난 양말을 발견하고 꿰맨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엄마는 늘 그렇게 본인의 시간을 가장 작은 조각들로 나눠 알뜰하게 쓰곤 했다.
딸이 엄마가 되는 일은 기존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엄마의 모습들을 발견해내는 능력이 생기는 일이었다. 아이를 낳고 친정집에서 100일 가까이 지내며 비로소 엄마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기회가 생겼다. 엄마는 쉴 틈 하나 없이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본인의 출근 준비로도 바쁠 엄마였지만 새벽부터 울음을 터뜨린 신생아의 기저귀를 갈고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낼 나의 식탁을 떠올리며 미역국을 끓였다. 퇴근 후 돌아오면 가장 먼저 목욕물을 받아 손이 서툰 딸과 함께 아기 목욕을 시키고 저녁 준비를 했고,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색깔이 있는 옷과 아닌 옷을 나눠 세탁기를 돌렸다. 빨래를 널고 널브러진 것들을 정리하고 나면 그제야 엄마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잠들기 전 뉴스를 보며 과일을 깎았다. 어쩌면 엄마의 그런 부지런함이 구멍 난 틈을 메워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와 동생이 손 때 묻은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도 늘 아끼고 몇 번이고 다시 쓰던 엄마의 모습을 오래 지켜봐 온 이유였을 것이다.
전세를 구하는 일이 어려워 친정집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고 얼마 전 비로소 출가를 했다. 엄마는 여전히 주말이면 멸치볶음이나 파김치 같은 반찬을 가지런히 담아 동생을 통해 우리 집으로 보낸다. 아기를 보느라 채 살림을 돌보지 못할 나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 늘 반찬과 함께 담겨 나에게 온다. 서울에서는 점심마다 밥을 한 그릇 가득 먹고나도 늘 배가 고파 퇴근길엔 자주 예민해지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엄마가 보내준 반찬들을 먹고 나면 배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사랑이 담긴 음식을 알아차리는 건 머리가 아니라 마음인 모양이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매며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소파에 기대어 쉬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구멍 난 우리의 양말을 꿰매는 엄마의 부지런함을 떠올리며 엄마만큼 나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설픈 바느질을 끝낸 양말을 뒤집어 살펴보며 아직은 삐뚤빼뚤 엉성한 바느질 실력이지만 언젠가는 엄마처럼 낡고 빛바랜 것들을 따뜻한 모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정성껏 꿰맨 양말을 신고 아이와 겨울맞이 산책을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