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과 반려동물

기꺼이 자처한 '을'로 살아가는 일

by Jessie


요즘은 '을'이 되는 경험을 부쩍 자주 하고 있다. 물론 서른넷의 인생을 살면서 '갑'이 될 일도 그다지 없었지만. 아마 제 3자가 끼었더라면 '병'이나 '정' 정도에 머물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차라리 을이라도 된 것이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서울살이를 하며 짝꿍과 처음 시작을 했던 곳은 아주 작은 원룸이었다. 신대방역의 원룸에서 1년, 신림동 1.5룸에서 다시 1년을 보냈으니 신혼 전세대출을 받아 방 두 칸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살림을 시작했을 땐 그저 기쁘고 행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 반려동물이 식구로 들어왔을 때도 그 기쁨은 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을만한 행복이었다. 남들보다 가진 건 많지 않지만 하루의 행복을 놓고 보면 훨씬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을만한 시간들이었다. 우리는 신혼부부 전세대출을 받은 첫 신혼집에서 2년을 가득 채워 시간을 보냈다. 작은 강아지가 성견으로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중랑구 곳곳을 산책하며 서울과 익숙해져가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우리 부부에게는 또 다른 생명이 찾아왔다. 전세 연장을 앞두고 남편의 베트남 파견 소식과 함께 전셋집 보증금을 올리겠다는 소식도 들려왔기에 우리는 과감하게 서울의 신혼집을 정리하고 그리웠던 고향에서 출산 준비를 해나가기로 했다.



베트남 파견이 끝나고 남편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출산을 한 달 여 앞두고 있었다. 친정에서 신세를 오래 졌기에 남편, 아기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 집을 구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또 다른 숙제였다. 전세난을 겪고 있는 서울보다 지방에서 전셋집을 구하는 게 쉬울 거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작은 읍내에서도 전셋집을 구하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전세를 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반려견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신혼부부이고 이제 곧 태어날 아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강아지 한 마리도 있는데 혹시 지금 입주 가능한 전세 구할 수 있을까요?"


"그냥 개는 누구 주면 안돼요? 아니면 개 있다는 말 하지 말고 들어가던지...."


"말 안 하고 들어갔다가 나중에 주인 분과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에 대해서 책임지시는 건가요? 친구가 그 부분에 대해 확인 안 하고 들어갔다가 쫓겨난 걸 본 적이 있어서 저희는 주인분께 확실히 말씀드리고 들어가고 싶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주인 분께서 양해해주시는 집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읍내에 있는 부동산 중 우리와 조건이 맞는 매물을 가지고 있는 모든 부동산에 전화를 걸고 찾아갔지만 대부분은 반려견이 있다는 말을 듣곤 개가 있다는 말을 하지 말고 입주를 하라거나 다른 곳에 주면 안 되냐는 다소 황당한 질문만 할 뿐이었다. 반려견이 있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전셋집에서 거절당했다. 반려견으로 인해 문제가 되는 부분은 변상해드리겠노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집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백 번이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긴 했지만 부동산을 비롯해 주변 지인들까지도 '개'정도는 그냥 누구에게 주고 이사하면 되지라고 가볍게 던지는 말이 작지 않은 상처가 되었다.



함께 정 붙이고 살아온 가족을 버리고 이사하는 일은 우리의 사고로는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우리는 조건에 맞는 집이 나타날 때까지 반년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전셋집은 다행히도 주인분께서 반려견을 키우시는 터라 반려견과 함께 집을 구하는 어려움을 백번이고 이해해 우리를 받아주셨다. 강아지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자마자 견종이 뭐냐고 물어보시는 분은 처음이어서 그 평범한 물음에도 감동하고 말았다.



요즘 내가 가장 자주 들여다보는 것은 당근 마켓과 포인 핸드라는 어플이다. 강아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당근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이후 동네에서 주인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없는지,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 있을지를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강아지를 식구로 들인 이후로는 동물에 관련된 기사들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고 아기가 태어난 후로는 아이와 관련된 뉴스를 보며 함께 분노하곤 한다. ‘생명’이라는 단어와 함께 다니는 ‘책임’이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돈’이나 ‘소유(물건)’로 읽히곤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하고 제도적으로 가야 할 길이 한참이나 멀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혼자였다면 그저 뉴스 기사로 후루룩 읽고 지나칠 사건들에 공감 버튼을 누르게 된 건 아마도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지게 되면서부터 일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작고 소중한 생명들이 찾아온 이후 크고 작은 불편들이 셀 수도 없이 생겨났지만 그로 인해 무한히 넓어진 나의 세계는 지금껏 경험해왔던 것보다 훨씬 광활하고 아름다워서 나는 자주 감사한 마음이 되곤 한다. 나를 올려다보는 행복한 눈을 볼 때마다 피곤함을 무릅쓰고 기꺼이 운동화를 신고 산책을 나가고 더 많은 부동산을 두드리고 너덜너덜해진 손목으로 그들을 안아 올리게 된다. ‘을’이 되기를 자처한 이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관용구와 가까워졌다. 그 모든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기꺼이 그들을 책임지는 삶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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