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싶은 날에 읽어요
아가와 함께 지낸 지 170일째. 나만 부지런해지면 글을 쓰고 스스로를 검열할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지나친 자신감이었던 모양이다. 아기를 돌보고 재택근무 중인 짝꿍과의 끼니를 준비하고 집안일과 심바의 산책을 다녀오고 나면 하루가 훌쩍 지나 있다. 새해에는 다시 글을 열심히 써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감기몸살에 앓아눕고 나니 1월이 절반이나 흘렀다. (새해 계획도 못 세웠는데...) 그래도 가장 빠른 때는 '지금'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기를 재우고 겨우 책상에 앉았다. 브런치 서랍에는 그간 발행하지 못한 글들이 쌓여있는데 아무리 키보드를 두드려봐도 글은 완성될 생각이 없어 보였고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동안 읽었던 책 속의 문장들을 옮겨보기로 했다.
오늘은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싶은 날 읽으면 좋을 고수리 작가의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라는 책이다. 내가 고수리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상경 후 첫 직장 동료가 선물해준 책을 통해서였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는 그녀의 첫 작품이었는데 제목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선물 받은 책을 읽으며 마음에 온기가 채워졌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음을 알고 있던 동료는 꼭 고수리 작가처럼 책을 내는 그날을 기다리겠다며 아기자기한 엽서에 편지를 써서 나에게 건네주었더랬다.
p21
순간을 단숨에 지나치려 하지 않고, 모든 순간을 잡으려 애쓰지 않고, 순간이 나를 붙잡을 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가는 것은 꽤 괜찮은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순간에 붙잡힌다 해도 좋을 일이다. 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삶이 나를 살아가게 하기도 하니까. 어떤 순간에는,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우리를 살게 하기도 했다.
p38
"누구의 인생이건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주었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가는 순간이다"
p139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매 순간 세상은 당신을 초대하고 있다 / 메리 올리버 <기러기>
p158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길이 된 것이다"
p160
프랭키 코스모스는 한 인터뷰에서 "각각의 노래와 앨범은 모두 중요하지만, 그것들을 모으면 내 인생이 됩니다"하고 말한 적이 있다. 경험하고 느낀 것을 곡으로 만드는 일이 결국 삶의 기록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The individual songs and albums are all important to me, but together that is a huge chuck of my life)
작가의 말
우리 모두에게는 고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나의 이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제 삶에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고 나면 바깥세상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름 없는 존재들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힘이 생긴다. 내가 글을 쓰며 배운 것들이다.
왜 글을 쓰냐는 질문에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세수를 하고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돈을 벌고 먹고 자고 숨 쉬며 살아가는 동안에도 나는 살고 싶어서. 가치 있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글귀는 포스트잇으로 붙여 두었다가 컴퓨터 메모장에 옮겨두는 오랜 습관이 있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힘들 때면 그간 쌓아두었던 문장들을 꺼내어 읽어보곤 다시 걸음을 옮길 용기를 내곤 한다.
이 책 역시 고수리 작가의 첫 책만큼이나 어렵지 않게 읽힌다. 마음이 소란스러운 날이나 가족과 다툰 날 혹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 따뜻한 유자차 한 잔과 함께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몇몇 구절들을 읽으면서 당신 역시도 언젠가 키다리 아저씨처럼 온기를 전해준 이가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놓치고 마는 따뜻한 순간들을 작가는 예리하게 문장에 담아 이 책을 만들었다. 어쩌면 내 삶에서 그런 순간들을 조금 더 예민하게 알아차리기 위해 우리는 책을 읽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