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있는 생각들과 마주하고 싶은 날
도서관에 가는 날은 늘 설렌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어떤 문장이 나에게 찾아올지를 상상하는 일은 5년 전 짝꿍과 연애를 하던 풋풋함과 많이 닮아있다. (이제 짝꿍에게서 그런 설렘을 찾을 수 없기에 도서관에 가는 일을 기다리게 되는 것일지도.... 긁적;) 동네 도서관에 가기 전이면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지 고민하며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작가들의 피드를 둘러보곤 한다. <무정 에세이>라는 책 역시도 꽤 좋아하는 작가님의 추천 리스트에서 발견하곤 주저 없이 빌려온 책이다. 인터넷 베스트셀러나 서점 인기 서적 코너에서 둘러본 에세이들은 사실 너무 쉽게 증발되어 버리는 내용들이어서 읽은 뒤에도 기억에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무정 에세이는 깊이 있는 문장들을 담고 있는 에세이이다.
<무정 에세이>는 6개의 챕터별로 각기 다른 삶의 장면들을 담고 있다. 그녀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마음이 먹먹하기도 또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녀가 덤덤하게 써 내려간 삶의 그림자들이 내가 구태여 외면했던 현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삶의 무거운 이면들을 덤덤하고 무정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삶을 껴안을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p91
만약 그가 누군가에게 해로웠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였을 것이다
p120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들은 화가 나면 마을 밖 저 멀리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을 향해 하염없이 걷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막대기 하나를 박아 놓고 돌아온단다. 이따금 사람들 관계에 부대끼고 사소한 욕망끼리 충돌하여 노여움이 치솟을 때면 얼음으로 뒤덮인 순백의 세상을 상상한다.
p165.
나를 품은 채 버려진 물건들이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될 것인지 생각해 본다면, 함부로 소유하거나 버리는 일이 두려워진다.
278.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세상을 더 잘 설명하고 이해하려면 단어에서 문장으로 문장에서 글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구체적이고 섬세한 문장을 쓰는 일은 분리시켰던 세상과 나를 다시 연결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것
311.
사는 동안 굴곡과 역경을 겪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삶은 없고, 삶이란 다만 자신에게 특별할 뿐, 그 누구의 삶보다 낫거나 못하지 않다는 깨달음과 함께 평범함은 빛나기 시작한다.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연미 하는 힘도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추천사.
부희령의 글을 가끔 읽었다. 그럴 때마다 촉수 낮은 등이 하나씩 마음 한편에 켜졌다. 그렇게 모은 등이 어느덧 마음을 데우고 길을 밝혔다. 그이가 한 글자씩 타자기를 두드렸던 공력이었다. 그렇게 희미한 등을 의식하면서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작가란 본디 그런 의무를 지고 있기도 하지만, 남의 길에 빛을 비추는 일의 공덕을 잊을 수 있겠는가. 다만 그가 짚단처럼 성긴 속을 허물어 태운 빛이 늘 아슬아슬해 보였을 뿐. 나는 염치 있는 마음은 언제나 위태로운 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작가의 염치를 생각한다. 여기 실린 글들은 어쩌면 늘 실패하고 곤란에 처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내는 작가의 따뜻한 작은 불빛일 것이다. 그 불이 설령 꺼질지라도, 다시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 박찬일 (요리사, 칼럼니스트)
나는 부희령 작가의 밀도 깊고 덤덤한 문장들에서 많은 사색을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박찬일 씨의 추천사를 읽으면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근래에 읽었던 문장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아 있던 터라 몇 번을 다시 읽고 또 읽었는지 모른다. 작가가 본디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글을 쓰는 모두가 '작가'라고 불리지만 '남의 길에 빛을 비추는 작가'가 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부디 나도 삶의 편린들을 무정한 마음으로 건너갈 수 있는 내공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