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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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가게 될 때면 나는 늘 그 이의 책꽂이를 무의식 중에 찾는다. 빠르게 둘러본 책꽂이에서 내가 읽은 책들을 발견할 때면 반가운 마음에 대화가 책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누군가의 책꽂이를 구경하는 일은 늘 가슴이 설렌다. 어떤 책을 읽는가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그 사람이 가진 삶의 철학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누군가가 우리 집을 방문할 때면 나는 가장 먼저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둘러본다. 나에게 집의 어수선함만큼이나 신경 쓰이는 건 서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누군가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 중 한 권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쓰인 제목이 마음에 들어 언젠가 읽어보겠노라 메모장에 옮겨두었던 제목이었는데 요즘은 아이를 키우며 외부활동이 적어져서인지 도서관에 갈 때마다 빌려오는 책의 권 수가 많아졌다. 이렇게 읽고 난 책 속 구절들을 옮겨 적다 보면 나의 편협한 독서습관이 금방 들통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생각을 찾아 읽는 일이 나는 꽤 즐겁다. 서른 해 동안 내가 쌓아온 생각의 틀을 다른 이의 문장을 통해 바꿔보는 연습을 할 때마다 내가 아주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부쩍 도서관에 가는 일이 즐거워졌다.








p46. 경험이 누군가의 삶을 풍부하게 해 주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지 타인의 삶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 여야 할 것이다.



p71. 되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모든 자리는 무모하게라도 시도했을 때 한 걸음이나마 앞으로 나아갔다. 염려하고 망설이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이루고 성취한 일은 없었다.



p113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지기보다 더 나빠지기가 쉬울 것이다. 나는 이제 섣불리 낙관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꿈을 꾸었던, 최선을 다했던 순간의 어떤 기록은 버리지 않기로 한다. 나는 아직 나로서의 증명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p148. 순간의 경험이, 체험이 삶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 지나가는 자는 머무는 자의 고충을, 행복을 절대 알 수 없다는 것. 안다는 말은, 알겠다는 말은 매우 오만하고 경솔한 말이라는 것. (생략) 땅을 대한다는 건, 삶을 이해한다는 건, 폼으로 낭만으로 자랑삼아 될 일이 아니었다.



p150 자식 키우는 일이 농사와 아무리 비슷해도 다른 건 다르다. 밭이야 내가 들인 노고만큼 내 것이지만 아이는 내가 들인 노고가 얼마든 내 것이 아니다. 밭에서는 내가 심은 열매가 나지만, 아이는 저 홀로 심은 꿈으로 열매를 맺는다. 그런 마음으로 보면 안 자란 열매도 없고, 잘못 자란 열매도 없다. 우리가 들여야 할 정성은 밭을 향한 것이지 열매를 향해서는 안 될 일. 그러니 밭만 가꾸어주고 열매는 간섭하지 말자 수시로 다짐하는데, 사춘기 농사가 여름 농사라 그런지 마음속 천불 다스리기가 쉽지는 않다.



p159. 삶이란 게 참 묘하다. 눈을 뜨면 날마다 새로운 날이지만 실상 삶의 관성은 어제를 포함한 기억 속에 있다. 살아봤던 시간의 습관으로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더듬어가는 것, 현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과거인 그런 게 삶이라는 생각도 든다.



p182 사람의 삶이라는 게 제멋대로 움직이는 동물의 삶 같지만, 실은 한자리에 꽂혀 한자리에서 늙어가는 식물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수명 다한 식물을 뽑아내다 보면 흙 위에서 어떤 꽃을 피웠고 어떻게 시들었든 한결같이 넓고 깊은 흙을 움켜쥐고 있다. 바닥을 치고 딛는 힘이 강할수록 꽃도 열매도 실하다. 사는 게 어려울 때, 마음이 정체될 때, 옴짝달싹할 수 없게 이것이 내 삶의 바닥이다 싶을 때, 섣불리 솟구치지 않고 그 바닥까지도 기어이 내 것으로 움켜쥐는 힘, 낮고 낮은 삶 사는 우리에게 부디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p274 행복은 되풀이되지 않는데, 불행은 반복되는 습성이 있다.



에필로그

나는 시간의 힘을 믿는다. 생존이란, 삶이란 순간이 아니라 영속성을 가진 시간을 가리키는 거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당신들, 살아갈 당신들이 저마다의 힘으로 끝내 버티기를. 나는 가늘고 길게 쥔 펜으로 앞으로도 계속 당신들을 쓰고, 나를 쓰고, 이 삶을 기록해볼 작정이다.






어려움을 쉽게 쓰지 않기로 다짐한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의 언어습관을 돌아봤다. 어설픈 위로보다 침묵이 낫다는 문장처럼 나 역시 누군가를 위로한답시고 '이해'라는 말을 자주 입에 담았던 것은 아닐까 해서였다. 아이가 생긴 후론 누군가를 위로할 만한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운 남편의 표정이 어두운 날에는 서툰 위로나 알은 채 보다는 따뜻한 밥을 짓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인위적이지 않은 위로가 바로 그것일 것만 같아서였다.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각자의 사정으로 가벼운 통장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을 챙겨드리지 않아도 되는 나의 사정과는 달리 그는 나보다도 더 어려운 사정이었지만 그 시절 우리는 조금 무모하게 결혼을 했다. '내일은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이 있어서였다. 그와 함께한 지 6년째, 요즘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을까'를 이야기하기보다는 '가진 것에서 만족하며 사는 삶'을 자주 이야기한다. 낙관을 꿈꾸기엔 사회가 너무 혼란스럽거니와 앞이 보이지 않는 오늘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하루하루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일만큼은 허투루 하지 않기로 했다. 잘 버티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테니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나에게도 자주 찾아올 마음의 변화를 미리 상상했다. 그리고 친정이 있는 고향에 내려와 살고 있는 지금의 시간들이 무척이나 소중해졌다. 아이가 흙을 밟고 작물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늘 따뜻하다. 훗날 마음이 지칠 때 떠올릴 풍경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넉넉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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