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과 삶을 나누는 시간
아이가 꿈나라에 가고 나면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린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오늘의 온도는 영하 7도였지만 나와 산책 가는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는 반려견을 생각하면 그 수고로움이 늘 기꺼워진다. 요 며칠은 날씨가 따뜻해져서 곧 추위가 수그러드는 줄 알았는데 그간의 따스함이 증발해버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운 바람이 분다. 그래서인지 부쩍 따뜻한 글들이 읽고 싶었던 요즘이었다.
얼마 전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박완서 작가님의 따님이 등장하신 편을 봤다. 인자하신 얼굴로 묘사하셨던 엄마로 불리던 박완서 작가님의 일상들이 어찌나 따뜻하게 들리는지 도서관에 당장이고 가고 싶을 정도였다. 도서관에서 마주한 박완서 작가님의 책들은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쳤는지 꽤나 닳아 있었지만 그래서 더 정겹고 마음이 가는 것만 같다. 엄마이자 작가로 활동하셨던 작가님의 자취를 천천히 따라가 보기로 마음먹어본다.
p128 한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말의 토씨 하나만 바꿔도 세상이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손바닥의 앞과 뒤는 한 몸이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뒤집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가장 먼 사이이기도 하다. 사고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뒤집고 보면 이렇게 쉬운 걸 싶지만, 뒤집기 전엔 구하는 게 멀기만 하다.
p136 옛 성현의 말씀 중에도 이런 게 있습니다. ‘이 세상 만물 중에 쓸모없는 물건은 없다. 하물며 인간에 있어서 어찌 취할 게 없는 인간이 있겠는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아무도 그의 쓸모를 발견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발견처럼 보람 있고 즐거운 일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알아주는 장미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들꽃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소박하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은 더 큰 행복감이 될 것입니다.
p138 인생도 등산이나 마찬가지로 오르막길은 길고, 절정의 입지는 좁고 누리는 시간도 순간적이니까요. 이왕이면 과정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생은 결국 과정의 연속일 뿐 결말이 있는 게 아닙니다.
p141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안녕.
p236 작가의 눈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한테 미움받은 악인한테서도 연민할 만한 인간성을 발굴해낼 수 있고, 만인이 추앙하여 마지않는 성인한테서도 인간적인 약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작가의 눈이다. 그리하여 악인과 성인, 빈자와 부자를 층하하지 않고 동시에 얼싸안을 수 있는 게 문학의 특권이자 자부심이다. 작가의 이런 보는 눈은 인간 개개인에게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나 제도를 보는 데도 결코 달라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p252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 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그렇게 책상에 앉으면 늘 열 시를 조금 넘는 시간이 된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과가 조금씩 몸에 익어가는 중이다. 예전에는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늘 넘쳐흐르던 시간이었는데 요즘은 육아를 끝내고 컴퓨터 앞에 앉은 두세 시간의 짧은 여유가 꿀처럼 달디달다. 오히려 시간이 넉넉하던 예전보다 지금이 더 부지런해진 것만 같다.
본인을 돌아보기 위한 일들은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일은 바로 글쓰기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문장으로 옮겨 조금은 멀리서 바라보는 일,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늘 스스로를 반성하고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또 내일을 사는 힘을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게 무슨 소용이람 하고 생각이 들 때면 책을 읽곤 하는데 40대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 작가님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지금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되려 고마워진다. 어려운 일들을 숱하게 겪으면서도 그 경험들을 덤덤하게 글감으로 승화시킨 작가님의 내공을 닮아가려면 아직 먼 길을 가야 할 테니 말이다.
살면서 나에게는 멘토라고 부를만한 이가 없었다. 내가 만났던 어른들이라 봐야 돈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거니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 폭력적인 사람, 도망치기 바쁜 사람이 주였다.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는 군더더기 없이 성실하게 글을 쓰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문득 이런 어른이라면 닮고 싶다고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하게 본인의 부끄러움을 꺼내 보일 줄 아는 어른이라면 분명 타인의 잘못 또한 기꺼이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일 테니까. 너무도 인간적인 글들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그녀에서는 나의 철부지 시절을 만나 함께 얼굴을 붉히기도 했고, 아들과 남편을 잃은 그녀를 보면서는 마음이 아려 이유 없이 차만 홀짝이곤 했다. 감정을 털어내고 가볍게 써 내려간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인고의 세월을 겪어내고 덤덤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다정함이 엿보인다. 누구나 읽기 쉬운 문장이지만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을 나지막하게 풀어내는 내공은 아마 나에게는 더 오래 갈고닦아야만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졌다는 건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떤 마음이든지 일단 쓰다 보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엄마를 닮은 작가님이 응원을 해주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