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재능

애매한 재능을 가진 세상의 모든 이를 응원하며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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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는 내 이력을 들을 때면 늘 평범하진 않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굉장히 애매한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마땅한 곳에 취업도 떡하니 하지도 못했거니와 모아둔 돈도 없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모님을 포함해 주변인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다. 결혼을 하기 전에 다닌 회사가 1년 10개월 재직으로 호주 회사 4년 이후로 가장 오래 다닌 회사였으니 일에서 흥미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단지 나에게 흥미가 있는 것이라곤 몸을 쓰는 달리기와 복싱 그리고 혼자인 시간이면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을 알기 위해 써 내려간 글이 전부였다. 글을 쓰고 있다곤 하지만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낸 적이 없으니 나는 이를테면 '작가 지망생'으로 스스로를 부르곤 했다.


책을 읽으면서는 나와 꽤 많은 부분에서 교집합을 가진 수미 작가의 문장들을 끄덕거리며 읽었다. 그 문장들에는 엄마의 치열함이 묻어있었고 반짝이는 꿈 대신 현실에서 만족하며 사는 보통사람으로의 삶이 묻어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작가로서 쭉 살아가고 싶은 열정이 엿보였다. 시니컬하면서도 감정의 지나친 개입 없이 불행을 서술할 수 있는 것은 수미 작가의 내공이 아닐까. 그녀는 계속 써도 될지를 책을 통해 물어왔지만 분명 그 답은 스스로도 충분히 알고 있을 테다. 그 물음은 그녀뿐만 아니라 엄마가 되고 꿈을 잊고 사는 모든 이에게 건네는 질문이기도 하다.







203 ”신춘문예에 계속 도전할 때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서 뭘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내 개성을 찾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죠. 어쨌든 글의 형식으로 세상에 접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면, 단련된 글쓰기 재능으로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는 작가로 살면서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203 그 언니는 나를 ‘범재'라고 표현했다.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찾아서 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그 말을 듣고는 ‘맞아, 난 천재는 아니지’ 씁쓸했다. 그 말이 내게 별 재능이 없다는 말처럼 느껴져 서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범재'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어왔다.


범재. 평범한 재주를 가진 사람.

뛰어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보통의 재주를 가진 사람.




204. 나는 새삼 ‘작가의 쓰임'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단한 글을 쓰진 못해도 주변에 도움을 주고,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작가로 살아가는 일. 마치 범재인 나의 그릇을 확인한 것 같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개운해졌다.




205.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가진 그릇이 작고 겸손해 보일지 모른다. 더 큰 그릇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더 좋은 것을 담아야 한다고 성화를 부릴 수도 있다. 지금 나는 세상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가진 그릇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연습 중이다. 비로소 ‘무언가 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시선을 스스로에게서 거둘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것은 얼마나 분명한 경지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평범한 사람의 일을 평가 절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15. 1931년 경기 개풍에서 태어난 박완서 작가는 마흔이 되던 해 소설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마흔에 등단. 나는 그 부분에 밑줄을 쳤다. 프로필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니.



그 후 오늘날까지 꾸준히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쓰지 않고 보통으로 평범하게 산 동안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 먹은 마음, 초심은 나도 모르는 나의 깊은 곳에서 우러난 운명 같은 것이었

다고 생각한다. / 박완서 <세상에 예쁜 것>에서




271.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가기만 한다면, 분명 길이 보일 거라고 믿어요.


내일이 오늘보다 좀 더 지독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가능성이 있든 없든, 애매하든 모호하든, 내가 원하는 풍경으로 계속 걸어가는 것.





서른다섯,


서른다섯이 된 지금, 나는 어디쯤 있는 것인지 가끔 생각한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면서도 빨래를 개거나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찰나의 순간에 불현듯 그런 생각들이 든다. 그렇다고 그것이 우울감으로 나를 몰고 가진 않지만 분명 '엄마'나 '아내' 이전에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리라. 여전히 나는 긴 머리를 자르지도 못했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아이를 올려놓지도 않았다. 아직 엄마이기 이전에 '나'로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은 까닭에서다. 호주를 종횡하며 돌아온 이래로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지 못한 것도 분명 큰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님의 불행을 읽어 내려가면서, 카페에서 자신의 연극을 선보이는 실행력을 훑으며 그녀는 어쩌면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중이라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든다. 이 책은 아마 그녀가 피운 첫 번째 꽃봉오리일지도. 글에 대한 열정과 무언가를 행동으로 집요하게 옮길 수 있는 실행력은 언제가 되었든 더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어낼 테니 나도 그녀의 문장들을 자양분 삼아 지치지 말고 책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 박완서 작가님이 처음으로 등단했던 나이까지 아직 5년이란 시간이 남아있으니 꾸준히 걸어간다면 언젠간 나도 내가 지나온 흔적들을 길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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