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오해는 흔하고 이해는 희귀해서’ 우리는 글을 씁니다

by Jessie


학창 시절의 가장 큰 즐거움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한다. 10분의 짧은 쉬는 시간에 매점으로 달려가 초콜릿이 듬뿍 발린 다이제를 사 먹거나 소시지빵을 사 먹는 일 이외에도 나에게는 분명한 기쁨이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누군가가 두고 간 편지를 수업시간에 몰래 확인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편지를 읽는 일은 즐겁다. 그리고 그 행동 앞에 ‘몰래’라는 말이 덧붙여지면 더더욱 그러했다. 당연한 이치로 다른 이의 편지를 ‘몰래’ 훔쳐보는 일이라면 훨씬 즐거울 것이다. 아쉽게도 이 책은 몰래 훔쳐보는 일과는 무관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이의 편지를 당당하게 읽을 수 있어서 내내 행복했다.


이슬아 작가는 이미 애독하는 작가이기에 잘 알고 있었고 남궁인 의사는 페이스북 등에서 사회 이슈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을 했던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는 까닭에 알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주고받는 글이라니 분명 나 같은 이에게는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편지는 다정하고 따스한 문장들을 가득 담고 있을 테지만 이 책은 달랐다. 어쩌면 이슬아 작가의 거침없고 다소 당돌한 꾸짖음과 질문들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에 대한 넓은 이해로 꾸짖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남궁인 의사의 문장들은 읽을 때마다 웃음이 났다. 다소 소탈하고 인간적인 그의 모습을 따라 읽다 보니 사실 인간 남궁인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의사에 대한 딱딱하고 거만할 것 같은 틀을 깨버린 계기였다.


대한민국에서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문장들을 읽다 보면 하루가 훌쩍 흐른다. 지친 육아 중에도 계속 읽고 싶은 욕심이 드는 책이었다. 아기가 잠들고 나면 화장실 불빛으로 몰래 읽고 또 읽을 만큼 흥미로웠다. 가까운 미래에 누군가 책 추천을 요청한다면 나는 분명 몇 권의 책 중에서도 이 책을 잊지 않고 꼽을 것이다.






프롤로그

문득 우리가 시작하려는 글쓰기의 요소가 인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편지가 끝나면 제 인생도 조금 ‘이슬아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왠지, 두렵지 않은 기분입니다. 마지막 마침표가 찍히면 분명 저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으니까요.




29.

자신의 본질을 꿰뚫어 보다가 갑자기, 불현듯,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탄생합니다. 매번 끊임없이 느끼한 문장을 낳을지라도 탐구를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글쓰기라는 세계에서 우리는 기꺼이 속아버리는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35.

생이 길어질수록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의 가짓수가 늘어간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어요. 세상 누구라도 그 이해력은 세월과 함께 깊어지고 넓어지겠지만 의사가 직업인 사람이라면 특히 더 그럴 것 같습니다.




51.

계속 이겨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패배하고 가끔 승리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시 패배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삶은 눈물 나는 일입니다.




76.

과연 제 인생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저 또한 두렵습니다. 하지만 확신합니다. 적어도 자신의 세계에서 동어반복하며 배회하지 않으려면, 그러다가 불시에 악과 어둠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끝없이 갱신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불의에 둔감해질 때, 우리의 존재는 휘발될 것입니다.




77.

병원 밖 보통 사람들은 행복한 날이지요. 대신 응달에 남겨진 사람들은 얼마나 처절하게 불행에 떠는지 모릅니다. 모두가 들뜬 세상의 변방에서 벌어지는 파괴와 고독을 목격하는 일입니다.

그런 것들을 매년 자청해서 보고 있자면 적어도 그다지 행복하고 싶지 않아 집니다.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 일이 세상에는 너무 많습니다.




122.

잠을 오래 자지 않은 사람은 기능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하지요. 저는 평생 졸음을 참으며 무엇인가를 해오려던 덕분에 제 일부분을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그것에 명민함 또한 포함되겠지요. 그래서 제가 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언제나 얻음에는 잃어버림이 동반합니다. 삶 또한 죽음이 동반하듯이요. 모든 것은 명멸합니다.




137.

봄이 오고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계절이에요. 글을 다시 쓰기도 좋은 계절이고요. 어쩌면 우리는 변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계속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에 썼던 표현을 쓰지 않음으로써, 혹은 과거에 없던 표현을 새로 만듦으로써 작가들은 새로워지잖아요.




180.

그 무렵엔 글쓰기로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글쓰기가 저의 중요한 부분을 수호해줬던 것만은 분명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그날의 독자님들 앞에서 회상하면서 고난을 고난으로만 두지 않게 하는 속성이 글쓰기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경험은 글로 쓰면 견딜 만해지니까요.




217.

우리 사이엔 늘 오해가 있고 앞으로도 그럴 테죠.

서로를 모르니까요.

오해는 흔하고 이해는 희귀하니까요.

우리의 우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236.

그럼에도 울면서 글을 쓰는 사람은 징그럽다는 사실을 압니다. 하지만 제가 옛날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었다면 글을 쓰기 위해 많이 울었기 때문일 겁니다. 우는 행위에는 슬픔의 본성뿐만 아니라 달라지고 나아가는 본성 또한 있다고 생각합니다.




267.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 유희경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중에서




268.

어제도 저는 수많은 우주와 조우했으나 그들을 알지 못한 채 작별하고 말았습니다. 무수한 우주와 마지막은 영원히 반복되고 우리는 마지막까지 홀로 외롭게 항해할 것입니다. 그 쓸쓸한 싸움에서 1년의 시간 동안 작가님이라는 우주를 헐어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아마도 우주와 우주 사이의 간극 또한 새로운 우주일 것입니다. 빛나는 한 우주가 제게 조금 가까워져서 그동안 외롭지 않았습니다. 가장 친절하고 진솔한 우주를 알게 되어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것이 아련해질지라도, 아득한 거리에서 빛을 뿜으며 서로에게.




273.

그럼에도 사람의 본성은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 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편이 더 쉬운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야말로 자신의 본성을 비추는 노동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이슬아 작가의 편지를 읽다 남궁인 작가에게 자료를 첨부하여 꾸짖는 구절에서 가슴이 뜨끔했다. 얼마 전 친한 친구에게 비슷한 맥락의 꾸짖음을 들었던 이유에서다. 그러고 보면 내 글과 나의 말들에도 주어의 비중은 ‘타인’보다 ‘나’ 일 때가 많다. 여전히 나를 알지 못하는 이유에서 나는 자주 나에 대한 글을 쓴다. 그런 노력들을 통해서야 비로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뒤늦게 깨닫곤 한다. 그렇게라도 스스로가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는 까닭에서다. 한 가지 확언할 수 있는 건 글을 쓰기 전의 나보다는 글을 쓴 뒤의 나 자신이 조금 더 낫다는 점이다. 요즘은 그 시간이 꽤나 빈번하지 못하지만.



생이 길어질수록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의 가짓수가 늘어간다는 말은 한 편으로는 아프다. 어른이 될수록 사는 게 어려워지는 일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는지. 엄마가 되고, 반려동물을 키우고, 사회생활을 하고, 뉴스를 보면서 나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져가고 있다. 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나는 자주 어지러워지곤 한다.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아무렇게나 희생된 생명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거나 밤 잠을 설친다. 그래도 계속 쓰는 일을 놓지 않는 것은 나의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작가의 말처럼 쓰다 보면 고난이 단지 고난에서만 머물지 않게 되기도 하니까.



삶은 끝없이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눈물 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계속 살아내야 하는 이유는 아직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일 테다. 남아있는 자의 몫을 위해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일은 어른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부디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모두가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불의들에 무심해지지 않길 바라며 늦지 않게 모두에게 봄이 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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