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뜨거움이 필요한 이에게
책 속에서 만난 책을 찾아 읽는 일을 좋아한다. 박웅현 CD의 <책은 도끼다>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책 속의 책을 따라 읽는 일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현실에서는 나홀로 독서를 하는 편이라 좋은 책을 추천받는 일이 어렵기에 책 속에서 또 다른 책을 만나면 길을 가다 예쁜 단풍잎을 주운 것처럼 마음이 기쁘다. 얼마 전 이슬아 작가와 남궁인 작가가 함께 쓴 책을 읽으며 남궁인 작가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생겼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편히 잠 잘 틈도 없이 살아가면서 글을 쓰는 창작 활동까지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니. 현실에서는 굉장히 만나기 힘든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그는 응급의학과 의사이기에 늘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을 곁에 두고 살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마주하는 일 대신 누군가의 인생에서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한다. 삶에 대한 경이로움보다는 회의감을 더 자주 마주할 것만 같은 삶이다. 행복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역할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밖에 없다.
그가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에서 자주 언급했던 책을 빌려왔다. 의사이지만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된 책으로 응급실에서 경험했던 38편의 경험과 생각들을 담고 있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반면 한 편, 한 편을 읽어 내려가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뉴스에서 몇 줄로 가벼이 지나쳤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그의 눈과 손을 통해 자세히 내 머릿속으로 옮겨보는 일이었다. 잠들기 전이면 오늘 읽었던 챕터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곤 했는데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죽음의 현장이 그에게는 늘 있는 일이라는 게 자꾸만 입을 마르게 한다. 응급실이라는 곳은 급하게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기에 지금까지 서른다섯 해를 살아오면서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한 번도 그곳을 가본 일이 없지만 앞으로도 그곳을 갈 일은 없기를 바라본다.
p43 우리는 이 생명들이 얼기설기 위태롭게 얽힌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이해하고서도, 실은 어떤 죽음에 관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을 붙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생사를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간절히 살고자 했지만 결국 죽음의 문턱을 넘어버린 이와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지만 응급실에서 깨어난 이들을 보며 그는 늘 어려운 마음으로 생을 살아간다. 아무리 간절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울음을 쏟는 현장에서 마주하면서 말이다. 매일 그렇게 많은 땀과 노력을 쏟고 나면 그의 생도 조금씩 줄어들 것만 같다. 그에게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그는 아마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잊고 싶지 않은 사건들을 문장으로 옮겼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요즘, 나는 '생명'을 가진 존재들을 떠올리며 자주 애착을 가진다. 생명을 품고 세상 밖으로 꺼내놓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천진난만한 동물들을 비롯해 자기 몸보다 훨씬 큰 유치원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마음이 울렁거리곤 한다. 착하고 여린 것들이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도 차갑고 무서워서 겁이 나지만 사회 어딘가에 남궁인 의사 선생님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 괜찮아져 온다. 온갖 고통과 죽음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의료인이 있다는 사실이 요즘처럼 춥고 어려운 시기에는 작은 위안이 아닐 수 없다. 환자의 상처만큼이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의료인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하고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아무쪼록 모두에게 부디 내일은 어제보다 덜 아픈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