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보다 괜찮은 '내'가 되기 위해서
많지는 않지만 가끔 영감에 목이 마를 때면 찾는 유튜버이자 크리에이터가 있다. 부담 없이 잔잔한 목소리로 조용한 영감을 전하는 '이연'작가가 바로 그이다. 누구나 슬럼프나 깊은 침잠의 시간을 겪지만 그 시간을 오랜 공백으로 만들 것인지 혹은 다음 스텝을 위한 자양분으로 만들 것인지는 오롯이 본인의 역할이기에 많은 어른이들이 그에 대한 무게를 버거워하곤 한다. 이연 작가는 그런 어른이들에게 본인의 경험과 생각들을 덤덤하게 하지만 아낌없이 나눠주는 사람이다. 가끔 센티해지는 밤, 그녀의 유튜브를 켜고 책상에 앉으면 나 역시도 그녀가 무심히 그리는 그림들을 보며 메모를 하고 싶어 진다. 그 메모들 속에 오늘의 매너리즘을 이겨낼 수 있는 영감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는 것은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 이연
p24.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멋진 일은 대개 두려움을 동반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만큼 그 여정은 험난하다. 그럴 때는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내가 지금 굉장히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 이 사실을 계속 떠올려야 한다. 우리는 싸워보지도 않고 많은 일들을 포기한다.
p50. 가끔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재능과 영감이 아니라 감정을 견딜 비위라는 생각이 든다.
p65.
항상 기억해야 한다. 배움의 길을 스스로 고찰하고 더듬어가며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싶은 그림을 항상 선명하게 품고, 고독을 참으며 몰래 피워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p82. 습관적으로 관찰하면 볼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진다. 이는 곧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 작은 것 하나도 남들보다 깊이 느낄 수 있다.
p83. 사실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별로 관심 없다. 언제나 가장 궁금한 것도, 제일 재미있는 것도 나였다. 이제는 사람의 마음이 엄청나게 어렵지 않다. 결국 스스로를 아는 일은 인간을 아는 일에 가깝다. 타인의 마음이 궁금하다면 우선 자신을 먼저 살필 것을 권하고 싶다.
p88. 각자의 누추함은 스스로만 아는 것이겠지요.
p113. 하지만 이런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좇다 보면 대가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고, 나를 둘러싼 세상도 아주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간지러워진다. 뭐든 표현하고 싶어 진다. 그런 기록을 아주 많이 남기는 것이다.
p131. 그림을 그릴 때 자로 잰 것처럼 똑바르고 긴 선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까 긴 선을 긋는다는 것은 단순히 선을 길고 똑바르게 긋기 위함이 아니라 4절지를 한눈에 담는 연습을 하는 것에 가깝다. 나는 이것을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축을 하루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한 달로, 혹은 계절, 아니면 인생에 두는 것이다.
p170. 우선 자기 자신부터 의심해 봐야 한다. 나조차도 내가 모르는 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지고, 다른 현상에서도 이면을 볼 수 있게 된다. 당신을 알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은 평생 스스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대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p196.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 빈센트 반 고프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에는 교보문고에 들러 새로 나온 신간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은 무엇인지 둘러보는 일을 즐기곤 했다. 이 책은 출산을 앞두고 교보문고에 들렀을 때 베스트셀러 코너에 선 채로 1/3을 읽었던 책이다. 멈춤 없이 단번에 읽히는 책이라 다른 일을 하는 중에도 내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실로 오랜만이었다. 오래간만에 책을 읽으며 영감과 탄력을 받았고 그 덕분에 지금처럼 책을 읽고 문장을 남기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늘 걱정을 늘어놓는 나에게, 꾸준하게 무언가를 하길 어려워하는 나에게 작가는 인생을 그림 그리는 일에 빗대어 조용한 응원을 보내주었다. 멋진 일들은 대게 두려움을 동반한다는 말, 실체가 없는 두려움이 삶을 잠식할 때면 노트 어딘가에 적어둔 이 문장이 그 누구도 해주지 못하는 위로를 건네 온다. 인스타그램 속 행복해 보이는 타인의 삶과 나의 것을 저울질하며 열등감에 시달릴 때에도 작가는 그것이야말로 내가 진짜 들여다보아야 하는 에너지원이라는 격려를 건넨다. 두루뭉술한 희망고문이나 격려 대신 작가는 본인의 경험에 비루어 현실적이고도 인간적인 온도의 문장들로 움츠러든 자존감을 두드려준다. 삶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비척거리며 걷는 누구에게라도 그녀가 그림에 빗대어 써내려간 문장들은 분명 무엇이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용기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