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두 달 가까이 글을 쓰지 않았다. 육아에 지쳤다는 핑계로 컴퓨터 앞에 앉는 습관을 잃어버린 지 두 달이나 되었다니 달력을 앞에 두고 얼굴이 뜨거워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계가 빠르게 흐른다는 문장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지난 4월은 제주에서 한 달을 보냈다. 힐링이 가장 주된 목적이었으니 시내에서 꽤 거리가 있는 한경면 판포리에 자리를 잡았다. 해가 지고 나면 고요가 찾아오는 에어비앤비 숙소는 부엌 쪽 창문으로는 푸릇한 청보리가 거실 쪽 창문으로는 여백을 두고 차곡차곡 어깨를 맞댄 돌담이 담겨 있었다. 창 밖으로 일렁이는 청보리를 보면서 늘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던 것은 분명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8개월 아가와 3살 배기 강아지와 함께 떠나는 장기 여행이었으니 동이 트면 매일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걸었고 보고 싶은 얼굴들이 끊임없이 판포리를 찾아왔다. 가만히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기에는 너무도 터무니없는 시간들이었다고 잠시 핑계를 덧붙여본다. 그래도 짬짬이 아기가 낮잠을 자는 시간이면 책을 꺼내 읽었다. 그곳에서 4권의 책을 읽었으니 짧은 자투리 시간들도 꽤 알차게 보낸 셈이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책은 제주 여행을 계획하고서 가장 먼저 가방에 챙겨 넣었던 책이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집에서 몇 번을 읽고 또 읽었지만 채 끝을 보지 못한 책이라 제주에서는 꼭 마침표를 찍겠다 마음먹었던. 신기하게도 제주에서는 이 책을 쉼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이 책을 펼친 계절이 4월이어서였는지 혹은 슬픔이 담긴 바다를 너울너울 건너 제주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는지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p 9.
대체로 내 삶을 이해하고 버텨내기 위해 쓰인 글들이어서 내 글의 시야는 넓지 않고, 살아낸 깊이만큼만 쓸 수 있는 것이 글이므로 나의 책이란 결국 나의 한계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나의 책에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가끔 무언가를 용서받는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단 한 문장을 아직 찾지 못했으므로, 나는 이제 또 한 권의 책을 만들 수밖에 없으리라.
p 42.
트라우마라는 말의 가장 오래된 뿌리는 '뚫다'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트라우마에 의해 인간은 꿰뚫린다. 정신분석 사전은 그 꿰뚫림의 순간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충격의 강렬함, 주체의 무능력, 효과의 지속성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는 실감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젠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었을 때에야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트라우마에 관한 한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에 불과하다"
p 43.
한 인간이 어떤 과거에 대해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어버리는 이런 고통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상상해야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대상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걸 잊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한다. 이제는 정신을 차릴 때가 되지 않았으냐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고. 이런 말은 지금 대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체가 될 것을, 심지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하는 말이다. 당신의 고통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우리가 그렇게 잔인하다.
'문학은 나태한 정신을 고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p 44.
계속 공부해야 한다. 누군가의 터널 속 어둠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
p 93.
문학이 귀한 것은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문학은 4.3과 5.18의 반복을 겨우 저지한다. 제주에서 광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그것은 나의 확신이라기보다는 다짐이었다.
p156.
영혼은 비행기처럼 빨리 날 수 없다는 것을 인디언에 관해 쓴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 영혼을 잃어버리고 영혼이 없는 채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심지어는 시베리아 열차도 영혼이 나는 것보다 빨리 간다. 나는 처음 유럽에 올 때 시베리아 기차를 타고 오면서 내 영혼을 잃어버렸다. (...) 그다음에 나는 몇 번 비행기를 타고 오고 가고 했는데 도무지 내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그것이 여행자들은 왜 모두 영혼이 없는지에 대한 이유가 된다. / 영혼 없는 작가 _ 다와다 요코
p162.
사전의 '아포리즘(Aphorism)' 항목에는 "간결하고 기억하기 쉬운 형태로 말해지거나 쓰인 어떤 독창적인 생각"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보통 '잠언'이라고 옮긴다.
p163.
"지나치게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신을 터무니없이 사랑하거나 미워하게 된다." / 절망의 끝에서
p175.
'쓰기'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
'읽기'에 대해
"우리가 지금 좋아서 읽는 이 책들은 현재의 책들이 아니라 미래의 책이다. 우리가 읽는 문장들은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까 지금 읽는 이 문장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p176.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간접 체험으로서의 문학은 다만 나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피 흘릴 필요가 없는 배움은, 이 배움 덕분에 내가 달라졌다고 믿게 할 뿐, 나를 실제로 바꾸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아무리 읽고 써도 피는 흐르지 않는다.
피 흘려 깨달아도 또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반복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러나 믿을 수밖에.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나보다 좀 더 좋은 사람이다. 10년 후의 나는 더 좋아질 것이다.
p265.
'삶이란 의미를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그 순간에만 겨우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것이니까'
p291.
우리는 '고독이 밀려왔다'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하지만, 고독은 어쩌다가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독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 아니고, 고독하지 않다는 착각의 시간들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텅 빈 푸른 방에 제아무리 살림살이를 들여놔도 그 방의 빈틈을 완전히 채울 수는 없으리라. 사랑에는 증오라는 반대말이 있지만 고독에는 그 정도로 명확한 반대말이 없다. 공기처럼 늘 확실히 존재하는 어떤 것에는 반대말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일까.
p327.
세상의 어떤 이는 정확하게 말하고 싶고, 세상의 어떤 이는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싶다. 그런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는 일이 먼 훗날 우리를 정확히 죽게 할 것이다.
p332.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정확한 사랑의 실험
p333.
흔히 다시 태어난다고들 하는데, 새로 태어난 나는 이전의 나와 어떻게 다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완전함'과 '온전함'을 분별할 필요가 있다. 사랑의 관계를 형성한다고 해서 내 결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여가 없다는 의미에서의 '완전한'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방을 통해서 내 결여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는 있다. 내 결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 결여가 더는 고통이 아닌 생, 그런 생을 살 수 있게 된 사람을 '온전한'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사랑은 나를 '완전하게'만들지는 못해도 '온전하게'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사랑 속에 있는 것이다. '홀로 있을 때가 아니라 그와 함께 있을 때, 나는 더 온전해진다.'
p398.
"선생님, 시간의 가차 없는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 두려워서 한 질문이라 생각하셨는지 이런 답을 주셨다.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까 인생의 모든 나이에는 각각의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는 것이더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p399.
수많은 별은 그가 죽을 운명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406.
시간은 가차 없이 흐르는데 삶의 의미는 드물게만 찾아진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인생 그 자체와 싸우며 보낸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노란색 리본을 찾던 습관이 희미해져 갈 즈음이면 거짓말처럼 노란 리본을 만나게 된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누군가의 가방에 매달려 명랑하게 흔들리고 있는 노란색 리본. 몇 년 전, 촛불집회를 위해 광화문을 찾았을 때 나 역시도 유가족분들의 서명란에 내 이름을 적고 받았더랬다. 자주 들고 다니는 노트북 파우치에 달아두었지만 요즘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에 조금 거리를 두고 있어서인지 나 역시도 노란색 리본을 잊고 사는 일이 많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매일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그날의 슬픔을 잊고 사는 나를 깨달을 때면 문득 미안한 마음이 된다. 그래도 제주 한 달 살이를 떠나기 전 이 책을 챙겨 들고 간 것은 꽤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내가 제주에서 보낸 4월은 제주 4.3 사건을 떠올리기에도, 세월호가 가라앉던 4.16을 기억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계절이었으니 말이다.
엄마가 되고 나의 세상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고 깊어졌다.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삶의 일부를 경험하고서 나는 4월이 되면 조금 더 아파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으로 품고 키운 자식을 떠나보내고 아직 채 밝혀지지 않은 그날의 진실들 앞에서 나 역시도 시간이 오래 지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못했을 거라고. 제주 토박이로 자란 친구와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자꾸만 헛것을 보셨다고 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한 소녀의 마음에 남은 트라우마는 몇십 년 동안 그녀에게 남아 삶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채 치유해주지 못하는 상처도 분명히 존재했다. 언젠가 세월호 가족들에게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냐며 비아냥거리던 악플러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타인의 슬픔을 공감할 능력도, 여유도 없는 그의 삶이 얼마나 텅 비어있을지를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던 기억을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떠올렸다.
인간에게는 정해진만큼의 슬픔과 기쁨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슬픔이 찾아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곁에 있는 이의 버팀목이 되어주기 위해 또 스스로를 위해 우리는 슬픔을 공부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슬픔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