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의 어설픈 육아그림일기
일주일 만에 남편에게 온 연락을 받고선 마음 한편에선 안도감이 또 다른 한편에선 서러움이 조금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싸우는 일이 너무나 소모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 하고 싶은 말은 모두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모든 감정들을 추스르고 제일 먼저 저는 다시는 그런 극단적인 말을 하지 않기를 당부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각자의 삶 외에도 책임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들이 되었으니 말이죠. 그리고 남편에게는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떠났던 베트남에서 우리는 각자 너무 많이 지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던 이유에서였죠. 물론 심바가 무척이나 걱정되긴 했지만 이제 심바의 산책과 돌봄은 모두 남편의 몫이 되었습니다. 산책도 자주 나가지 않던 남편에게 맡겨진 심바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육아 우울증이 뒤늦게 온 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부쩍 예민하게 지냈습니다. 남편은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지만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왜일까요. 얼굴을 마주하는 그 몇 시간도 서로에게 관심을 둘 여유 없이 각자 강아지와 아기를 돌보느라 바쁘기만 합니다. 아이를 재우고 어둑어둑한 거실 한가운데 가만히 앉아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를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늘 같은 이유로 싸우고 있더군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죠. 결혼 전에 부탁했던 일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개선되지 않고 지속되었다면 저 역시도 포기할 만도 한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7년 동안이나 같은 걸로 싸우는 걸 보면 그도, 저도 결코 유연한 성격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치민에서 몇몇 육아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깨닫게 된 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부라고는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주기에는 각자의 삶이 너무도 고단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먼 타국에서 육아를 한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격려를 전하며 지냈던 시간들이 호찌민에서 육아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남편에게서 받지 못하는 위로를 서로에게서 받고 지내는 걸 보니 이건 어쩌면 홀로 육아를 하는 엄마의 숙명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아마 한동안은 그와 떨어져 지내며 그는 회사에서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저는 충실한 육아맘으로 살아가게 되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다시 ‘함께’하는 좋은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심바는 4월 말에 남편이 한국에 데려다주러 잠시 다녀 갈 예정입니다. 베트남에서 하루종일 집을 지키는 것보다는 시끌벅적하지만 한국에서 저와 함께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거든요. 애개육아로 몹시 바빠질 5월을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