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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May 22. 2023

우리는 언제쯤 안정될 수 있을까.

부부상담, 세번째 이야기

 벌써 세 번째 상담이다. 매주 화요일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은 여전히 나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드러낸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내가 결코 괜찮은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선생님과 마주 앉아 박카스 한 병을 앞에 두고 일주일간 어땠는지에 대해 안부와 감정을 나눈다. 첫 상담이 있고 그 일주일은 남편과 페이스톡을 하며 거의 매일 밤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느라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다음 한 주는 아이와 나 모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찍 잠자리에 드느라 남편과 대화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자연히 남편과의 관계도 관성처럼 제자리를 향해 가는 듯한 기분이었고 말이다. 선생님은 다소 침울해하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지난번에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두 분은 서로 굉장히 닮은 듯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확연히 다른 성향의 사람이에요. 마치 톱니바퀴처럼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잘 돌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빗겨 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는 계속 어긋나고 있는 거죠. 기계처럼 톱니바퀴를 분해했다가 끼워서 조립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에 다소 어려움이 있는 거죠. 대화는 지난 일주일간 많이 나눠보셨나요?”



처음 일주일만큼 많이 나누지는 못했어요. 컨디션이 안 좋으니까 아이를 재우면서 같이 잠들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크게 싸운 이후로는 싸울만한 주제는 일부러 빼놓고 대화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때 남편이 ‘그만하자’고 말했던 일이 저에게는 꽤 큰 트라우마처럼 남기도 했고요..”



의견을 나눠야 하는 부분에 대해 빗겨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숙제를 뒤로 계속 미뤄두는 것과 같아요. 언젠가는 해야 할 숙제인데 처음에는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을 나중에는 급하게 시간에 쫓기며 해야 할 수도 있고요.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이번에는 제 이야기를 조금 해 드려 볼까 해요. 저는 아이가 셋이랍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제 스스로가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었어요. 아이를 낳기 전과 낳은 후의 삶은 정말 확연하게 다르잖아요. 집에서 머물고 아이를 돌보면서 불쑥 찾아오는 감정들에 대해 자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리고 그때 제가 무의식 중에 엄마가 저를 대했던 방식을 아이에게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요. 부모님 역시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좋은 것들만 우리에게 행하시진 않았겠죠. 물론 의도하시진 않았겠지만요. 그래도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렇게 ‘학습된 정서’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부분이에요. ‘아, 내가 부모님의 이런 부분을 나도 모르게 닮았구나. 아이에게 이런 모습을 물려줄 수는 없어’하고 말이에요. 인지를 한다는 것은 바뀌고자 하는 의지가 함께 동반되는 일이거든요. 그럼 우리는 더 좋은 것을 선택하고 나아질 수도 있는 거죠.”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변화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듣는데 마음이 뭉클했다. 이따금 몸이 지쳐 평소와 같은 아이의 투정을 유독 받아주기 힘든 날이 있는데 그럴 때면 나에게서 아빠의 모습을 불현듯 보게 된다. 내가 제일 싫어하던 아니 싫어함을 넘어 증오에 가까웠던 그런 행동들을 나도 모르게 학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워서 엄마 앞에서 푸념을 한 적도 꽤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늘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위로할 뿐이었다.



아이에게 부모는 온 우주예요. 그래서 보호받아야 할 시기에 폭력과 폭언을 겪어야 하다는 것은 나의 우주가 나를 공격하는 것만큼이나 위협적이고 두려운 일이죠. 도망갈 수 있는 곳도 없으니 그 시기에 받은 상처가 얼마나 아프게 남아있을까요. 그런데 그런 부모님도 미성숙했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건강하지 않은 정서를 물려받은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 딱하게 바라볼 수도 있게 되지요. 아마 아빠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예요. 대화 방식에서부터 말이에요. 아빠도 분명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신 분인데 그 부분이 아킬레스건이라 대화를 할 때면 늘 화를 내셨을 테고 따님께서도 그 부분에 트라우마가 있다 보니 언성이 높아지셨을 거고 자주 싸우셨겠죠. 이젠 대화법을 조금 바꿔서 아빠에 대한 인정을 먼저 대화에 깔아보는 거예요. 그리고 사실을 살짝 얹고 감정이 어땠는지를 간결하게 전달해 보세요. 부모와의 관계는 계속 부딪혀야만 하는 부분이라 노력이 필요하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엄마가 할아버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명 아이도 ‘관계’에 대한 것들을 배우게 될 거예요.”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선생님. 저에게는 분명 너무 힘든 일이거든요.. ‘노력’에 대한 부분이 나와서 그런데 저는 이 노력에 대한 부분이 섭섭함이 쌓이기 시작한 계기였던 것 같아요. 호주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매일 데이트를 하고 함께 달리기를 하고, 트레킹을 가고, 낚시를 가고 했었는데 한국에 오고 나니 남편은 주말이면 늘 잠만 잡니다. 산책을 나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이 문제로 하도 싸우다 보니 주말이면 저는 그냥 강아지를 데리고 혼자 나갔다가 오게 되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스킨십도 늘 섭섭해지는 이유였던 것 같아요. 저는 먼저 늘 요구를 하고 남편은 그 부분에 대해 그리 중요하게 생각을 하지 않다 보니 온도차가 너무 크더라고요. 남편이 짊어지고 있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 커서 부부관계까지 영향을 미치니까 저는 지난 6년 동안 부탁하기도 하고, 회유했다가, 울기도 하고, 화를 내고 결국은 포기하는 상황까지 온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강아지를 키우다 보니 손을 잡는 스킨십도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부분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남편의 태도에 굉장히 화가 났었어요.”



“제 지인 중에서도 부부관계에 엄청나게 중점을 많이 두는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분이 심리학을 공부하시면서 저에게 문득 하시는 말씀이 본인 감정의 어떤 부분에 결핍이 있어서 그렇게 먼저 늘 요구를 하셨었던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걸 알아차리신 이후부터는 각방을 쓰시고 각자의 생활에 집중하시면서 그렇게 지내시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혹시 본인의 감정에 어떤 결핍이 있는 것은 아닌지도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두 분은 상담을 통해 지난 삶을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다른 어느 부부와는 다르게 살아오셨어요. 굉장히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계시는 거죠. 안정감이 부재한 삶을 살아오셨으니 그런 부분도 조금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안정감이 부재된 삶. 경제적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으니 안정감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작이었다. 그 와중에 남편은 나를 ‘힘든 상황에서 구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책임감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라는 생각이 강했을 테고 말이다. (여기서 우리 부부의 갑을관계가 정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먹고사니즘에 대한 열정으로 스타트업에서 살과 뼈를 갈아서 일을 했으니 집에 돌아오면 늘 가족이었던 나에게 쏟을 에너지와 시간은 고갈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남편 역시도 집 안의 가장 그리고 결혼 이후 새로운 가정에서의 가장, 스타트업에서의 작은 리더들을 맡아 쉼 없이 지내다 보니 번아웃이 언제고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호주에서 시작된 우리의 프레임에 너무 오래 갇혀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호주에서 하던 일에 제대로 된 마침표 없이 돌아와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안고 ‘안정’을 찾아 유랑하던 시간들이 어쩌면 나에게도 관계에 집착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남편은 “나에게 헤어질래 아니면 그 일을 계속할래”라고 물었고 나는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일을 그만두는 게 좀 기이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나 스스로 그만둘 용기가 없어서 몇 년째 그만두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호주에서의 일에 어설픈 마침표를 찍었다) 다시 돌아갈 수도,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일을 마음에 두고 사느라 내 사진첩은 늘 정리되지 않은 풍경들로 어지럽다. 어쩌면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열정이 비어버린 곳에 그의 마음을 자꾸만 채워 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나에게 이따금 묵직한 질문들을 던지신다. 외면하고 싶은 질문, 대답할 때마다 입술을 몇 번씩 잘근거리게 만드는 질문들은 늘 내가 잊고 살고 싶었던 마음을 두드린다. 그것은 내가 제대로 살기 위해 꼭 한 번은 스스로에게 던져야만 했던 물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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