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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May 25. 2023

내가 아끼는 다정함에 대하여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될 다정한 사람

 강아지 육아 4년 차, 아기 육아 2년 차. 누가 봐도 어설픔이 흘러나오는 나는 여전히 초보 엄마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른 이들에 비해 모자라지 않는 것은 바로 매일 산책을 나가는 ‘체력’과 간절히 산책을 기다리는 존재에 대한 ‘책임감’ 아닐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처럼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늘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늘 맡는 냄새지만 난생처음인 것처럼 자연을 탐색하는 강아지의 모습을 볼 때면 산책을 나가는 수고로움이 늘 값지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바삐 걸음을 옮기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발 밑의 풍경들을 이 작은 존재는 나에게 자주 상기시켜 준다. 당신이 열심히 살아가는 동안 우리도 이곳에서 부지런히 자라나고 있다고 말이다.



 지친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20개월의 아이와 아이만큼이나 활동량이 많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밖을 나서지만 주말은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주일 중에서 이틀은 꼭 그렇게 두 녀석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야만 한다. 독박육아를 하는 통에 늘 혼자서 두 몫의 삶을 돌봐야 하는 이유에서다. 아침 7시부터 창문 밖을 내다보며 도로 위를 달리는 온갖 종류의 자동차를 보며 “뭐지? 뭐지?”를 연신 외쳐대는 아이를 보면 서둘러 아침을 먹고 나갈 채비를 한다. 지난 주말도 역시 두 녀석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동네에는 꽤 오래된 벚꽃나무 산책로가 있어서 녀석들을 데리고 종종 산책을 가곤 하는데 아직 운전대를 잡는 게 서투른 나에게는 주차 걱정도 없어서 주말이면 단골처럼 그 길을 찾는다. 길의 끝에서 다시 끝까지 천천히 걸으면 대략 15분 정도가 걸리는데 부쩍 트럭이나 포크레인에 흥미가 생긴 아이의 성화로 몇 번씩 멈췄다 다시 출발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두 녀석과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분들이 워낙 많은 곳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오가는 강아지들을 지나쳤는데 어떤 분께서 물어오셨다.


“안녕하세요, 혹시 강아지 인사시켜 줘도 되나요?”


“안녕하세요! 네네 괜찮아요! 저희 강아지가 다른 개한테 몇 번 물린 경험이 있어서 조금 소심한 편이에요”


“엇, 저희 강아지도 그런데…”



동네에서는 그렇게 예의 있게 물어봐주시는 분이 많지 않아서 꽤 기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처음 만난 우리는 산책로에 쭈그려 앉아서 서로의 강아지와 인사를 나누고 또 그분께서는 아이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알고 보니 우리 아이보다 한 살 많은 네 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으시다는 말도 함께 전해주셨고 말이다. 남편이 외국에 있어서 혼자 아이와 강아지 둘을 독박육아하는 중이라는 나에게 그분도 역시 주말 부부를 하고 있노라며 나의 어려움을 백 번 공감해 주셨다. 강아지와 단 둘이 나오실 수 있었던 건 주말을 맞아 내려온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많이 힘드시죠? 저도 남편이 베트남에 있고 저희도 들어갈 계획이 있어서 고민이 참 많아요.”


“저도 여기가 친정이라 이번 2월에 이사 내려왔어요. 그래서 주말 부부를 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2-3년 후에는 말레이시아에 갈 계획이에요.”


“저도 여기가 친정이라 내려왔거든요. 신기하네요! 말레이시아면 그래도 베트남보다는 강아지와 함께 사는 게 좀 나으실 것 같아요. 베트남에선 지하 주차장으로 다녀야 하고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고 하는 곳이 많아서 서러움이 좀 있더라고요.”


그러자 그분께서는 갑자기 강아지 귀를 가리시더니 말씀하셨다.


“저희 강아지는 지금 15살이거든요. 이 친구가 떠나고 나면 갈 생각이에요”



누군가는 알아들을 수 없을 거라며 그냥 편하게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잠시 멈춰서 강아지의 귀를 가리고 이야기하던 그분의 세심한 배려가 무척이나 뭉클했다. 그 분과의 짧은 만남이 나의 뇌리에 오래 남아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강아지의 이름을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에서였다.


“강아지 이름은 ‘뿌리’ 예요. 오래오래 살라고 뿌리라고 지어줬어요.”



지금껏 만난 강아지들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이름이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이토록 마음을 쓰며 사는 사람이라니.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분의 다정함이 묻어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오래오래 그 다정함을 떠올리며 어떤 문장으로 남길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다정함을 물들이는 사람, 작은 배려가 곁에 있는 사람을 따뜻하게 물들이는 그런 사람.


이번 주말에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번 한 주는 작은 기대와 설렘으로 주말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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