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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Oct 18. 2023

끈기로는 올림픽을 능가하는 녀석들

당신이 알지 못한 호주의 생태계: 벌레편

좌) 카타츄타 트래킹을 위해 파리망을 챙겼다 / 우) 파리떼라면 이 정도는 되야지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늘 한 장의 종이인형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대자연에 속해있는 것들은 대부분이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라 어떤 이들은 처음엔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렸지만 여정의 마지막 즈음에는 모두가 체념하는 방법을 택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고작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가르마를 모두 태워버릴 듯이 이글거리며 타는 태양이라던지, 쉴 새 없이 흐르는 땀, 몇 일째 씻지 못해 누군가 혹은 나에게서 나는 정수리 냄새 거기다 정말 한 톨의 수분이라도 남아있는 곳이라면 앉을 틈을 노리는 집요한 파리떼의 공격 같은 것들은 아마 살면서 겪어본 적도 없고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대자연으로 기꺼이 걸어가겠다고 결정한 이상 이 유쾌하지 않은 것들은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된다.



 도심에서는 크게 파리떼의 공격을 받을 일이 없다. 호주에서 만날 수 있는 파리들은 보통 덤불파리 Bush Fly라 불리며 그늘진 곳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글거리는 태양이 작렬하는 여정을 나서는 순간부터 파리는 나라는 존재가 차에서 내렸다는 사실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는 얼굴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한다. 눈가와 콧구멍은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인데 축축한 수분감이 있는 곳에서 단백질 섭취를 할 수 있기에 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파리의 끈기는 거의 올림픽 금메달 감이어서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떼어내는 것에 백기를 든다. 그들이 성가신 것은 호주 사람들도 마찬가지라서 호주 아웃백을 여행하는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챙이 넓고 그물망이 달려있는 모자를 잊지 않고 챙긴다. 행여 여행을 시작하기 에 앞서 그물 모자를 챙기지 못했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긴 고속도로 위 외롭게 자리하고 있는 로드하우스에서도 파리망(Fly net)을 필수품처럼 구비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원주민들은 이런 파리를 쫓기 위해 유칼립투스 나뭇가지를 들고 다니며 파리채처럼 흔들기도 한다.



 파리에 대한 나의 아주 찐하고도 진득한 기억을 잠시 풀어보자면 그것은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울룰루에서였다. 손님으로 오셨던 사진작가님과 나는 달리기라는 취미가 같았다. 저녁을 먹으며 달리기에 대한 예찬을 이리저리 읊다가 울룰루를 두 다리로 달려보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달릴 준비를 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운이 따라주었는지 몇 없는 구름이 간혹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도로는 자동차의 그림자도 품지 않은 채 고요했다.



 울룰루를 둘레를 따라 한창 달리고 있던 중 파리 한 마리가 얼굴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내 속도보다 파리의 비행속도가 더 빨라서 나는 이내 체념하고 그들이 달라붙든 말든 쉬지 않고 달렸다. 하지만 녀석은 나를 더 깊이 알고 싶었던 모양인지 기어코 콧구멍을 파고들었다. 혼자였다면 멈춰 서서 파리를 꺼낸 후 다시 걸음을 옮겼을 테지만 5km 이상을 달려 속도가 붙기 시작한 상태에서 멈춰서는 것은 같이 달리는 분께도 실례인 것 같았거니와 웬만한 콧바람으론 녀석이 좀처럼 나오지 않아서 결국 남아있는 울룰루 반바퀴는 콧 속에 파리를 넣은 채 달렸더랬다. 달리기를 마쳤을 땐 울룰루 한 바퀴를 달렸다는 사실보다 콧 속에서 파리를 꺼냈음에 더 큰 쾌감이 솟아올랐다. 물론 콧속에서 제 때 빠져나오지 못한 파리는 콧물에 의해 이미 질식한 후였고 말이다. 아멘.


 

좌) 파리망을 껴야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아웃백의 현실  / 우) 비박을 할 땐 조리가 필수

 

 서늘한 걸 싫어하는 파리의 특성상 그들은 해 질 녘이 되면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드디어 마음 놓고 무언가를 먹거나 수다를 떨 수 있겠노라며 안심하지만 밤이 되면 파리떼 대신 갖가지 곤충들이 불빛을 보고 몰려들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녀석이 바로 모기인데 긴 바지와 긴 팔 옷으로 무장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인간의 빈틈을 찾아 어김없이 채혈을 해간다. 쉼 없이 달려드는 파리에 비하면 이따금 설쳐대는 모기가 더 낫겠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오롯이 개인의 취향에 맡겨볼 일이다.



 파리와 모기는 대표적인 아웃백의 동반자이지만 사실 이곳에는 엄청나게 위험한 생물들도 함께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생명이 살아가기에 그리 우호적인 환경이 아닌 만큼 호주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독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호주에는 뱀 140종이 사는데 그중 90종이 독사이고 상어, 악어, 해파리, 가오리, 푸른 고리문어도 종종 등장한다. (실제로 나도 홀로 바다수영을 하다 가오리를 보고 혼비백산해서 도망친 기억이 있다.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해파리에 쏘인 적도 두 번이나 있어서 해변가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캠핑장에서 만나는 호주 사람들은 이따금 내가 신고 있는 운동화를 보며 양말로 입구를 덮어두라는 조언을 건넸다. 단순히 양말을 우겨넣어두라는 것이 아니라 양말의 입구를 신발의 입구 부분에 뒤집어 씌우라는 이야기였는데 축축한 신발 안쪽을 곤충들이 굉장히 선호한다나. 실제로 아웃백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워커에 거미가 들어가있는 사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으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다. 호주는 독거미의 대규모 서식지이니 말이다. 나의 경우, 부시 캠핑을 해오는 동안 신발을 급습하는 곤충은 없었지만 대신 팔뚝만 한 지네가 텐트를 정리하는 중에 튀어나온 경험이 있긴 하다. 텐트 바닥의 시원한 그늘에 머물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만약 맨발로 녀석을 밟았더라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아주 선명한 검붉은 색 지네였는데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줌이 마려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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