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지 못한 호주의 생태계: 식물편
호주는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다양한 기후를 품고 있는 나라이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남극에 가까워져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겨울을 경험할 수 있지만 북쪽으로 향할수록 적도와 가까워지며 엄청나게 뜨거운 여름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엄청나게 뜨거운’이라 할 수 있는데 보통 최고 온도가 40도를 웃돈다) 특히나 호주 중심부로 향할수록 건조해지는 기후는 내륙을 모두 사막화시켰는데 비를 거의 볼 수 없기에 그곳에서 만나는 식물들은 대부분은 누렇게 말라있다. 이따금 이런 사막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보며 어떻게 살아가는것인지에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인간이라는 천적을 제외한다면 동물의 생존 능력은 늘 인간을 앞서있으니 그건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호주에서 꽃이 피는 식물들은 대부분이 호주 대륙에서만 볼 수 있는 종이다.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던 지리적인 특성은 동물뿐만 아니라 식생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비교적 물을 구하기 쉬운 동쪽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이를 주식으로 하는 코알라도 동남쪽을 중심으로 서식하고 있다. 650여 종이나 되는 유칼립투스 나무 중에서도 코알라가 주식으로 하는 유칼립투스는 약 30종 정도인데 대형산불이 지나가고 순식간에 검은재가 된 숲을 바라보는 코알라의 삶은 무척이나 고달프다. 얼마 전까지도 많은 과학자들은 유칼립투스 잎에 알코올 성분이 있어 코알라를 오랜 시간 동안 수면상태로 유도하는 것이라 했었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유칼립투스 잎은 소화시키기가 어려워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하루 중 스무 시간 가까이 잠을 자는 것으로 밝혀졌다. 코알라는 이렇게 오랫동안 잠을 자는 이유라도 있지만 나의 반려인은 도대체 왜 소파에 매달려 오랜 수면상태에 있는 건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또 다른 신기한 식물은 바로 바오밥나무이다. 호주에서는 보아브라고 불리는데 이 친구들은 서호주의 북쪽 내륙인 킴벌리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총 8종의 바오밥나무 중 한 종류가 이 곳 킴벌리에서 자생하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바오밥 나무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지역에 각각 분포되어 있는 것을 통해 과학자들은 이 대륙들이 언젠가 하나로 이어져 있었을거라고 짐작한다. 다른 과학자는 바다를 통해 바오밥나무의 씨앗이 흘러왔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아프리카인들이 대륙을 탐험하는 과정을 통해 들여왔을 거라고 하지만 여전히 호주 바오밥 나무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설들에 둘러쌓여 있다.
이들은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풍성하게 만들지 않으며 우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꽃을 피우고 그 자리에 열매를 맺는다. 원주민들에게 이 나무는 무척이나 중요한 존재인데 식량이나 약재로 이용하거나 물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호주 아웃백을 여행하는 경우 주변의 식생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생존 확률을 어느 정도 높일 수 있다. 물을 구하기 쉬운 도심에서 벗어나면 푸릇푸릇하고 잎사귀가 넓은 식물 대신 끝이 뾰족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있는 식물들이 주를 이루기 시작한다. 이글거리는 태양에 건조되다 못해 누렇게 타버린 풀들을 끝없이 지나다가도 갑자기 키가 높은 식물 군락을 만나게 된다면 그곳은 물을 구할 수 있는 구역임에 분명하다. 또한 그 주변은 자그맣게라도 원주민 군락이 자리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 곳에서 비박을 하게 되면 키가 큰 나무 근처에 몸을 숨기기도 쉽거니와 무자비할 만큼 뜨거운 해가 떠오르면 잠시나마 그늘에서 열기를 식힐 수 있어서 무척이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물론 이런 곳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생존에도 유리한 장소이기에 저녁 짓는 냄새가 나면 딩고와 조우하는 기회를 가지게 될지도! (야생에 꽤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깊은 밤 옆 사람을 깨워 화장실을 해결한 걸 보면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주기적으로 큰 산불을 겪어온 호주에서는 다른 대륙과는 달리 인상적인 몇몇 식생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살아남는 나무 글라스트리Grass tree인데 이 나무는 검은 기둥에 초록 밤송이를 올려놓은 독특한 모양으로 이목을 끈다. 길쭉하고 뾰족한 잎은 산불이 나면 모두 타버리지만 줄기는 대게 검게 변하기는 하나 살아남는다. 성장점은 땅 아래에 묻혀 있는데 몇몇 종의 글라스트리는 산불이 지나간 후에 많은 꽃을 피워낸다.
일 년에 적게는 0.8cm, 많게는 6cm가 자랄뿐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고서는 대략 400년 정도를 살 수 있다. 공룡이 등장하는 만화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던 밤송이 같은 나무도 역시 글라스트리이다. 그들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환경의 변화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적응시켰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느리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끈기있게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다.
원하지 않는 환경이라 할지라도 한 번 뿌리를 내린 나무는 움직일 수 없다. 환경에 적응해 어떻게든 살아가느냐 혹은 말라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나무는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남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것은 호주라는 극한 환경에서 원주민을 포함한 많은 생명들에게 또 다른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발현되는 중이고 말이다. 살아가는동안에 아주 작게나마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분명 그 삶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 것이 설령 나무 한 그루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