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지 못한 호주의 생태계: 동물 편
오랫동안 섬으로 고립되어 있었던 지리적 특성은 호주를 하나의 독특한 서식지로 만들었다. 특히나 딩고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천적이 없는 호주에서는 젖을 물려 새끼를 키우는 포유류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발달했는데 그 결과 캥거루는 호주의 가장 대표적인 동물이 되었다. 그 외에도 유칼립투스를 주식으로 하는 코알라, 땅굴에서 생활하는 웜뱃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물이라 불리는 쿼카도 모두 호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이다. 이렇게 독특한 생태계를 품고 있는 호주이기에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 번쯤 호주에 다녀가기를 감히 권해보는 바이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도심에서 멀어지면서부터 다양한 동물이 그려진 표지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도심에서 가까운 곳이라면 새, 오리너구리, 캥거루와 같은 표지판을 주로 볼 수 있지만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악어, 소 그리고 낙타가 그려진 표지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표지판이 꽤나 상냥하게 무단횡단하는 야생 동물들을 조심하라고 알려주지만 로드트립을 하다 보면 길 가에 누워있는 동물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치게 된다. 로드트립 짬밥만 6년이나 먹은 지금은 멀리서 나는 냄새뿐만 아니라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모습으로도 로드킬을 당한 동물이 주변에 있음을 알아차리는 정도가 되었다. 불바(Bull-Bar: 차량 앞에 설치하는 크고 단단한 가드로 동물을 쳤을 때 차량에 직접적인 데미지를 입히지 않도록 범퍼 역할을 해준다)가 달려있는 커다란 트럭이 아니고서야 빠른 속도로 달리던 중 성인 남성 몸무게에 육박하는 캥거루를 치게 된다면 큰 사고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 질 녘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야생동물의 특성상 호주의 밤 운전은 웬만해서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호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점잖고 평화로운 곳이라 전쟁도 웬만해선 마다하는 분위기지만 정작 호주 내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전쟁을 쉼 없이 해나가는 중이다. 그 예로 '토끼'를 빼놓을 수 없는데 그 이야기는 빅토리아주의 지주 토머스 오스틴이라는 남자가 영국에서 들여온 토끼 스물네 마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뒷마당에 풀어놓은 토끼들은 토머스의 뒷마당으로는 부족했는지 울타리를 넘어 넓은 들판으로 탈출했다. 그들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호주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고 농부들이 어렵게 재배한 농작물을 비롯해 농장 동물들이 먹어야 할 먹이까지 모조리 먹어치웠다. 1세기라는 시간 동안 토끼로 인해 호주 전역이 점차 황폐화되어 가면서 정부는 비로소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철조망을 설치하고 토끼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트리거나 다이너마이트로 토끼굴을 폭발시키는 등의 노력이 그것이었는데 결과론적으로 이 방법도 그리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교외의 햇살 좋은 들판에서 출근하는 이들을 보며 질겅질겅 풀을 씹는 토끼들을 여전히 보게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더 우스운 것은 토끼뿐만 아니라 낙타와 고양이도 인간의 욕심에 의해 낯선 땅에 들어와 버려진 후 같은 방식으로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호주 중심부 사막을 여행할 때면 이틀에 한 번은 꼭 단봉낙타 무리를 만나곤 했다. 짐을 나르고 운송수단을 대신하기 위해 중동에서 들여온 낙타들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너무도 쉽게 버려졌다.
하지만 딩고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천적이 없는 나라에서 커다란 덩치의 단봉낙타를 제지할 동물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 수는 우후죽순 늘어나기 시작했다. 몇 해 전까지도 단봉낙타 개체수 조절을 위해 정부가 포수를 고용한 일은 여전히 웃픈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호주는 웬만해선 세계 뉴스에 거론될 일이 없는 무척이나 평화롭고 조용한 나라이다. 그들이 뉴스의 지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인데 몇 해 전 세계 뉴스 1면에 등장했던 호주 산불은 그 규모와 피해가 엄청났다. 건조한 기후로 인해 순식간에 퍼져나간 산불은 쉬지 않고 숲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동물들이 희생되었다. 특히나 움직임이 느린 코알라들은 산불을 채 피하지 못해 큰 피해를 입었는데 그 당시 뉴스 1면에는 화상을 입은 채 소방관에게 안기거나 사람들이 건네주는 물을 힘겹게 마시는 코알라의 모습이 실렸다. 고통스러워하는 코알라를 보며 많은 이들이 간절하게 산불이 진화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거대한 산불은 어떻게든 진화되었지만 호주 동부에 자생하는 대부분의 유칼립투스가 타버렸기에 살아남은 코알라와 숲을 서식지로 하던 야생동물들은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다. 해결되지 못한 숙제인 산불로 인해 앞으로의 호주는 또 다른 생태기록을 써 내려가게 되지 않을까.
크고 작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호주는 여전히 자연을 아끼고 동물을 사랑하는 나라임에 분명하다. 과반수가 넘는 가정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며 자녀 다음으로 반려동물에 대한 지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반려동물법 또한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도심 인근에 반려견을 위한 해변을 잊지 않고 지정해 둔 것을 보면 호주에서 반려동물로 사는 것은 꽤 괜찮은 조건인 듯 보인다. 호주에서는 반려견과 주인이 함께 기초 예절 교육을 받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이다. 몇 주씩 이어지는 이 교육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며 진정한 가족이 되는 과정을 거치며 주말에는 공원에서 반려견 예절교육을 해주는 기관들이 있어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나 좋은 반려인이 될 수 있다.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몇 해 전부터 나도 반려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저녁약속에 가기보다는 퇴근을 하면 집으로 돌아와 산책을 나가는 것이 평범한 저녁 일상으로 바뀌었고 말이다. 엄마가 된 지금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하루 두 번씩 운동화 끈을 동여 메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선다. 아무리 귀찮고 추운 날이라도 하루종일 산책 가는 시간을 기다리는 강아지를 생각하면 게으름과 타협할 여지가 없다. 반려견을 키운다는 것은 나의 시간을 할애하는 일. 즉, 산책을 가고 강아지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구비하고 배변훈련과 기본예절훈련까지 책임지는 일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에 대한 책임은 거론하지 않는다. 그저 동물도 돈으로 보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팽배해 있을 뿐이다. 펫샵들은 깨끗한 유리창 너머의 귀여움에 대한 충동구매를 부추긴다. 동물은 여전히 사고팔 수 있는(그리고 버려도 되는) 물건으로 취급되며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일이 생기면 유기해 버리는 일이 십상이다. 이따금 봉사활동을 가는 유기견보호소에는 늘 입양을 가는 강아지보다 새로 들어온 친구들이 많다. 당근마켓 게시판에는 강아지의 주인을 찾는다는 게시물이 종종 올라오고 포인핸드에는 새로이 유기된 강아지들이 매일 케이지를 채웠다가 주인을 찾지 못하면 이내 별이 된다. 누군가는 버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버려진 동물들을 위해 봉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들. 호주의 반려동물 정책을 떠올리다 짧은 목줄에 묶여 평생을 살아가는 시골개의 모습을 들여다보니 목이 메는 것만 같다. 동물과 사람이 좀 더 행복하게 공생하기 위한 나라가 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더디지만 지금의 상황들이 조금씩 나아지기를. 좁은 우리에 갇혀 햇볕 한 줌 못 보고 자라는 사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를.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더 많아져있기를 진심으로 또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