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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Oct 17. 2023

캥거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거대한 대륙

당신이 알지 못한 호주 이야기

이 글의 주요 무대가 될 호주 그리고 서호주의 주요도시 '퍼스Perth'




오지란 기이하고 불가해한 곳이라는 점.

그 공허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 사람들을 이상야릇하게 지배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곳은 여러분의 죽음을 원하는 장소다. 그러나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고난에 연거푸 직면하고 그 보상이 가장 보잘것없음에도 탐험가들은 모험을 떠난다.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 빌 브라이슨




 당신에게 호주라는 나라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사람들은 남반구에 위치한 이 나라에 대해 꽤나 무지하다. 11시간이 걸리는 친절하지 않은 비행시간도 그렇거니와 캥거루와 코알라정도면 호주라는 나라는 충분히 인지했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오세아니아의 대표적인 나라 호주. 러시아, 캐나다, 중국, 미국, 브라질 다음으로 세계에서 6번째로 면적이 넓은 남반구의 대표적인 나라인 호주는 지구에서 가장 작은 대륙이다. 이 넓은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인구는 대한민국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인구밀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1인당 GDP는 6번째로 높아 선진국 반열에 올라있다. 임금이 높고 도시의 인프라와 복지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으며 도로가 깨끗하고 도심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공원을 볼 수 있다. 연금제도 또한 잘 설계되어 있어서 도심에서 벗어나면 장거리 여행 중인 노인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호주는 도시인 곳과 도시가 아닌 곳의 괴리가 정말이지 엄청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올림픽 개최지로 알려진 시드니의 세련된 도심과 하버브리지, 오페라하우스를 떠올리면 아웃백의 황량함은 먼 나라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시드니를 비롯해 멜버른, 브리즈번, 케언즈, 퍼스 등의 대도시는 공통적으로 해안가를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물을 구하기 쉽고 외부와의 교류가 쉬운 해안가가 아무래도 생존에는 유리했던 까닭이다. 도심을 등지고 내륙을 들여다보면 호주 면적의 2/3 가량을 차지하는 아웃백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는 전체의 2%밖에 되지 않는다. 아웃백에서 만난 이들은 대부분 백인의 핍박을 피해 사막 깊숙한 곳에서 새롭게 마을을 꾸린 호주 원주민들이거나 그 외에는 '로드하우스(고속도로 휴게소)'를 운영하고 있는 소수의 호주인들이었다.


 로드하우스 카운터에서 일하는 그들은 어떤 날엔 고립된 삶에 지친 듯 보였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해가 뜨는 순간부터 급속도로 달궈지는 지열을 견디며 붉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쉴 새 없이 얼굴에 달라붙는 파리를 쫓으며 캠핑장을 돌보는 일은 큰 특별함이 없었을테니까. 해가 지면 로드하우스와 연료를 안전하게 걸어 잠그고 내일을 준비하는 삶. 외부와 교신하는 통로라고는 사막을 오가는 여행자들 뿐인 그곳에서는 아무리 사람에 지쳐 속세를 떠나왔다 하더라도 금세 도시를 그리워하며 앓아누울 것이 분명했다.






@칼바리 국립공원에서 만난 여행자들 


 웬만한 준비가 아니고서는 일반적인 호주사람들조차도  거대한 대륙을 여행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흙먼지가 날리고 자갈이 여기저기 튀는 비포장도로는 일반 자동차로 건너다가는 얼마 못가 고장이 나고 마는데 언젠가 용감한 유럽 워홀러들이 아웃백의 흙먼지  위에서 고장  자동차와 함께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너   적이 있다. 그들이 그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도심에서 멀리 벗어날수록 견인차를 부르는 비용이 엄청날뿐더러 (호주에 잠시 머무는 여행자들이 저렴하게 구매한 중고차  이상의 견적이 나오곤 한다) 해가 떠오르면 감당할  없는 더위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차가 고장  상태에서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피할 곳이라고는 실오라기 같은 나무  그루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면 누구나 그런 표정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호주 사람들은  친절해서 어려움에 처한 여행자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차를 뒤져서라도 차가운 콜라  , 비스킷  봉지를 건네는 이들이 바로 호주인들이라   있다. 심지어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멈춰  나를 보며 굳이 가던 길을 멈춰 괜찮냐고 물어오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라   있다. 물론 그것은 내가 (비교적) 젊고 몸매가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고 있었으며  여자라는 성별이기에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 


 우리는  끝의 소실점을 향해 달리며  정도의 삭막함이라면 살인사건이 난다고 하더라도 시체는커녕 흔적조차 찾기 힘들지도 모르겠노라며 종종 살벌한 농담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정말 놀라운 것은 1년에   없는  아웃백 여행에서  해도 거르지 않고 홀로 고행하는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장담컨대 호주 사막을 자전거로   이상 건너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전거에 바퀴 하나를  연결해 침낭과 , 간단한 조리도구, 식량을 짊어지고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 자동차로도 일주일을 꼬박 달려야 건널  있는 사막을 최소한의 것만 짊어지고 떠난다는 것은 웬만큼의 용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캠핑장에서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면 나는 철없는 질문을 하곤 했다. "밤에 찾아오는 야생동물들이 무섭지 않으세요?"라고 말이다.  길을 떠나는 여행자에게 딩고  마리가 무서울리는 없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리고 순박했던 질문이었는가.



 드넓은 아웃백을 여행하며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에 대한 깨달음은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다.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충분히 받아들이면서도 자연에 기꺼이 녹아들어 고행을 감내하는 여행자들을 보면서도 많은 영감을 얻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꾸며진 삶이 아니라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외로움마저도 이겨내는 . 오롯이 혼자 감내하는 선택과 책임에 대해서. 내가 남들보다 훨씬 투박한 모습으로 살게  것도 어쩌면 사막을 건너던 여행들이 빚어놓은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빅토리아 사막 위 와라쿠르나 로드하우스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 토마스 할아버지에게 로드하우스에서 산 비스킷과 응원이 담긴 쪽지를 건내드린 적이 있다. 쉽지 않은 도전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그렇게나마 진심을 전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그때 우리는 얼룩덜룩 그을린 얼굴로 사진을 찍었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구불구불 글씨로 이메일을 적어주시며 나중에 짐정리가 끝나고 나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 하셨다. 그러나 퍼스에 돌아오고 아무리 가방을 뒤져도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의 메모리카드는 보이지 않았고 그 약속은 영영 지키지 못했다. 사진을 보내면서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어떤 마음이 당신을 사막으로 이끌었느냐고 그리고 사막을 건너는 동안 깨닫게 된 것들이 있으시냐고 말이다. 결국 할아버지가 사막으로 떠나온 이유는 알지 못했다. 먼 훗날 다시 사막에 가게 된다면, 또 그 길 위에서 홀로 페달을 밟고 있는 이를 만나게 된다면 그땐 그들이 사막에 오게 된 이유를 한 번 즘은 물어보고 싶다. 그 이유가 투박하고 단순하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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