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ie Oct 20. 2023

축복받은 땅에서 사는 일

금수저 나라에서 태어나는 기분 




 호주는 광활한 면적만큼이나 풍부한 자원으로 안정적인 경제 기반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대한민국의 약 77배 크기이지만 전체 인구는 우리의 절반 밖에 되지 않으며 1인당 GDP는 세계 10위권 내에 자리하고 있다. 그들이 경제적 기반을 잘 닦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넓은 땅을 활용해 농업과 축산업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로는 오랜 시간 동안 큰 변화 없이 고립되어 있던 덕분에 엄청난 천연자원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금수저라는 말이 이토록 어울리는 대륙이라니! 



 호주가 얼마나 풍요로운 나라인지를 떠올리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오늘 저녁 준비를 위해 동네 마트에 가는 것만으로도 호주산 소고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호주의 농업이 대한민국 소도시 마트까지 진출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들의 수출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한다. 두 돌을 갓 넘긴 아기의 철분 섭취를 위해 지난 1년 동안 살면서 가장 많은 소고기를 구매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호주산이었던 기억이 난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끝도 없는 평야가 무한대로 이어지는데 자세히 보면 평야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울타리가 도로와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울타리의 의미는 바로 그 고요한 들판이 곧 누군가의 소유라는 뜻이 될 테고 말이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나 양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들이 나중에는 머나먼 한국의 식탁까지 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식탁에 오게 된 고기들 중 일부는 한국인 워킹홀리데이 학생이 도축한 것 일 수도 있음을 늘 생각하며 밥상을 차렸다. 다른 지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친구는 운이 좋게도(!) 도축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부지런히 일한 결과 꽤 큰돈을 벌어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전해 들었다. 



 양의 경우에는 고기로도 많이 소비되지만 양털, 양 태반을 이용해 만든 기념품이 유명하다. 양 태반 크림을 비롯해 어그 부츠는 호주의 대표적인 아이템인데 보온성이 굉장히 좋아서 한 겨울에 신으면 발이 시리지 않은 장점이 있다. 아기 어그부츠는 그 모양이 귀여워서 호주에 출장 오시는 어른들이 이따금 손주손녀에게 줄 선물로 사가시기도 했다. 어그 부츠의 조금 재미있는 유래를 살펴보면 이 신발은 원래 호주 서퍼들이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고 해변에 나와 쉬는 동안 보온을 위해 신던 것이 시초이다. 처음에는 밑창도 없이 털 양말 같은 괴상한 모양이어서 어글리 부츠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점차 어그 부츠라는 이름으로 대중화가 되었다. 그다지 춥지도 않은 나라에서 이토록 따뜻한 신발이 개발되었다는 사실은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좌) 자원 채굴 프로젝트 지도 / 우) 마블바에서 만난 골드헌터의 금 조각들


 농업 외에도 그들을 부유하게 만든 것은 바로 천연자원이다. 언젠가 과학 탐사팀의 인솔을 위해 서호주 광물박물관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받아온 호주 광물지도를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호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늘 했던 것 같다) 거대한 면적의 땅덩어리가 전혀 크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웃백과 바다를 넘나들며 무심히 박혀있는 천연자원들은 그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해서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었다. 석유, 천연가스, 철광석, 석탄, 구리까지 5대 자원을 모두 보유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금싸라기 땅이 아닐 수 없다. 1850년대 골드러시로 많은 이들이 황량한 아웃백을 파헤쳤지만 여전히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금덩이가 이따금 발견되기도 하는 진정한 기회의 땅이 바로 호주였던 것이다. 



 호주 골드러시의 역사는 시드니에서 캘리포니아 금광지로 꿈을 찾아간 한 남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머나먼 미국까지 캘리포니아 드림을 안고 찾아갔지만 2년 동안 흙바닥만 바라봐야 했다. 이렇다 할 소득 없이 터덜터덜 고향에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문득 캘리포니아 금광지대와 블루마운틴 너머의 지형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서는 믿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인근 강바닥을 뒤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인근에서 상당한 양의 황금이 발견되었고 이 소식은 순식간에 인근 마을과 다른 도시 심지어는 다른 나라까지 퍼져 진정한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다. 그가 금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호주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골드러시가 시작된 이후 인구가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영국의 범법자들도 기회의 땅인 호주에 보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골드러시가 시작된 것은 호주가 더 이상 영국 범법자의 수용소 역할을 하는 나라가 아니게 된 것을 의미했다. 



 또 하나의 놀라운 발견은 1950년대 핸콕이라는 서호주 북부 외딴곳에 있는 목장 주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경비행기를 타고 가던 그는 돌풍을 만나 어떤 암석 지대에 불시착했는데 이 것은 엄청난 크기의 순수한 철광석 덩어리였다. 그가 이 철광석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호주는 철광석 부족으로 수출이 불법인 나라였는데 이 획기적인 발견으로 인해 미국과 캐나다의 철광석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철광석 보유국이 되었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어떤 불행은 불행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바이다. 그러니 우리 불행이 찾아오더라도 마냥 앉아 슬퍼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나아갈 방법을 찾는 지혜를 마음에 담기로 하자. 물론 불시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목숨을 건졌고 또 그곳이 엄청난 크기의 철광석 지대였다는 사실은 지울 수가 없지만.  



 언젠가 서호주 북부의 자전거 대회에 참여하고 퍼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층을 보기 위해 호주에서 가장 뜨겁기로 소문난 마블바 Marble Bar에서 하룻밤 쉬어가기로 했다. 마블바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쉬던 중 옆 텐트에 있던 아저씨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골드헌터라 소개하며 아웃백에서 발견한 금조각 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어떻게 금을 찾는지 궁금해하는 나를 위해 그들은 금속 탐지기를 가져와 몸소 보여주었는데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벌초하는 도구처럼 생긴 금속 탐지기를 좌우로 흔들며 금이 있을만한 곳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그야말로 중노동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쏟아부은 노력과 땀방울을 고려한다면 과연 저 일이 합리적인가를 의심하며 침낭에 몸을 구겨 넣은 기억이 난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아웃백은 그 혜택을 받아들이기엔 여전히 머나먼 행성인 것만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그들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인간의 눈에 띄지 않은 자원이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이 놀라운 사실이 호주를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곳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나는 늘 황량한 땅을 보며 금을 줍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이 상상은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전 02화 캥거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거대한 대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