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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Oct 19. 2023

아름답고 외로운 길 위의 친구, 로드하우스

아웃백 여행의 반가운 오아시스

왼)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일이 일상인 로드하우스 / 오) 원주민 구역의 삼엄한(?) 로드하우스


  로드하우스는 호주를 여행하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관문이자 여행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지도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개념을 찾아보자면 고속도로 휴게소 정도인데 한국의 휴게소에 비해 호주 로드하우스의 규모는 훨씬 작고 단출하다. 하지만 그 크기와 허름한 외모만 가지고 이곳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꽤 어리석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모두 구비하고 있는 도라에몽의 주머니 같은 곳이니까. 간단하게는 허기를 채울 음식을 사먹을 수 있고, 안전한 (울타리와 화장실이 있는) 캠핑시설을 제공하며, 화장실을 쓸 수 있고 또 먼 길을 가기 위해 연료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곳이 바로 로드하우스라 할 수 있다.



 로드하우스가 반가운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몇 시간째 같은 같은 풍경을 지나다가 로드하우스에 인접했다는 표지판이 등장하는 시점부터 갑자기 밀려있던 연락들이 '깨톡깨톡' 반가운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쌓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도심을 떠나오면서부터 가장 먼저 감내해야 하는 것이 통신의 단절인데 아무리 훌륭한 기계라 할지라도 인터넷이 되지 않는 아웃백에서라면 그저 하나의 고철 덩어리가 되어버리고 만다. 도시에서 멀어지면서부터 통신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수신자가 나로 되어 있는 메시지들은 그렇게 다음 로드하우스에 닿을 때까지 황량한 사막 어딘가에 쌓이게 된다. 처음엔 모든 경우마다 핸드폰을 집어드는 습관에 아웃백으로의 여행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꽤나 합리적인 이유를 찾았음에 희열을 느꼈다. 물론 연애를 하는 중이라면 그와 연락을 하지 못하는 그 몇 시간 혹은 며칠이 답답하게 느껴지겠지만 이건 어떻게 보면 고의적이지 않은 밀당의 기술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이 방법이 먹힌 것인지 나는 그 당시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다. 결과적으론 잘한 일이었는가 매번 다시 생각해 보게 되지만 말이다.


 여하튼, 늘 핸드폰을 손에 쥐고 누군가의 메시지라도 온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분명 디지털 디톡스의 시간이 필요하다. 의미없는 연락을 주고 받느라 허비하는 시간을 빌어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무를 한번 더 바라보고 스스로의 마음까지도 들여다보는 일. 당신이 가장 의존했던 것과 멀어지는 불편에 익숙해지면 이윽고 더 커다란 깨달음이 찾아올 거라고 나는 감히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로드하우스는 대게가 황량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도로 인근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붉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그래도 그 볼품없는 외모에 실망해서는 안 되는 것이 허름해보이는 로드하우스들도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한 로드하우스'라던지 '공작새가 자유로이 살아가고 있는 로드하우스'라던지, '햄버거가 정말이지 맛있는 로드하우스'같은 곳들은 단순히 로드하우스라는 존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훗날 여행을 떠올렸을 때 로드하우스의 특징으로 인해 순간의 장면들이 선명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아날로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작은 것들에 기쁨을 느끼는 단순한 인간으로 회귀하게 되는데 사실 이것은 철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굉장히 바람직한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헤멀린풀(Hamelin Pool)의 살아있는 화석 '스트로마톨라이트'


 여행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로드 하우스 두 곳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꺼내보려 한다. 하나는 서호주 북쪽 샤크만지역에 있는 '헤멀린 로드하우스(Hamelin RoadHouse)'로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s)'라 불리는 화석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부디 길고 어려운 이름으로 인해 이 글을 덮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면 이 무심하게 생긴 녀석 덕분에 당신이 지구상에 존재하게 된 것일 테니 말이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명은 산소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했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몹시 희박했던 대기 중의 산소를 약 20% 정도까지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즉, 대기 중에 산소를 채워줌으로써 생명이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이 버섯더미처럼 생긴 화석의 훌륭한 역할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사람들은 헤멀린풀(Hamelin Pool)의 나무 데크에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을 내려다볼 수 있다. 더 신기한 것은 이 정도로 가치가 있는 화석이라면 기를 써서라도 보호를 하는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모습일텐데 그 가치에 비해 너무도 자연스럽게(?) 샤크만 해안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호주 사람들은 굉장히 너그럽거나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강하거나 혹은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보러 올 만큼의 사람이 없다고 가정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해안은 가장 가까운 서호주의 대도시 퍼스에서도 약 700km를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무 데크 앞 표지판에는 '해안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던지 '스트로마톨라이트 생성과정' 등이 나름 자세하게 담겨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읽지도 않고 지나친다. 이 곳에 처음 방문하는 누구라도 저 재미없는 외모에 실망부터 하게 될테니까.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성가신 파리떼의 공격으로 너그럽게 표지판의 글자들을 읽을 겨를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스트로마톨라이트 옆에 자리하고 있는 헤멀린 로드하우스를 운영하는 아주머니와 그녀의 아들은 이곳을 아주 살뜰히(많이 낡았지만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을 만큼 적당히)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아주 작고 오래된 박물관이 있는데 (주인에게 보여달라고 요청해야 볼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살아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 수조가 있어서 정말 가까이서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볼 수 있다. 수조는 이끼가 꽤나 껴있어서 흐릿한 유리창을 통해 그들을 봐야 하지만 말이다. 이 작은 건물 한켠에는 로드 하우스가 이뤄낸 역사적인 순간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 작고 낡은 로드하우스에서 했을 거라고 도저히 예상조차 되지 않는 일인데 그것은 바로 우주선의 탐사를 도운 일이다. 1964년 NASA의 우주선이 인도양 상공을 지나는 중 애들레이드와 서호주 북쪽 카나본 안테나 간의 추적 통신이 두절된 일이 있었다. 우주선 탐사가 난항을 겪고 있을 때 이 소박한 로드하우스에서 릴리언 오더너휴라는 여성이 위성 수신 안테나로 메시지 교류를 대신해 주었다. 우주과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그녀의 역사는 이곳에 있는 사진과 자료들이 이따금 알려줄 뿐이었다. 아무쪼록 이 작고 낡은 로드하우스는 우주탐험 역사서에 아주 작은 지면을 할애해서라도 등장해야하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츄카예라 로드하우스 Tjukayirla RoadHouse


 또 다른 한 곳은 '츄카예라 로드하우스 Tjukayirla RoadHouse'라는 굉장히 외진 곳에 있는 로드하우스이다. 서호주 주요도시인 퍼스에서 지구의 배꼽 울루루까지 가기 위한 비포장도로에 자리하고 있는 이 로드하우스는 원주민들의 구역에 있어서 그들의 언어를 빌려 로드하우스 이름을 지었다. 퍼스에서부터 약 1,300km나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고 상당히 험한 오프도로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일반 차량으로는 건널 수 없어 인적이 더 드문 것인지도 모르겠다. 로드하우스를 보면 반갑고 즐거워야 하지만 내가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주유기를 보호하고 있는 울타리와 어마어마한 크기의 자물쇠, 로드하우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원주민들로 인해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다.(공교롭게도 이 날은 원주민들의 지원금이 나오는 날이었는데 그들은 지원금을 받자마자 이곳에 몰려와 소시지와 음료수, 생필품을 구매하고 있었다) 로드하우스 역시도 붉은 흙먼지에 뒤덮여 정말 들어오고 싶은 사람만 들어오라는 아우라를 뿜고 있었기에 문을 열기가 다소 망설여졌는데 서너 번 더 그곳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지금은 무엇보다 이 로드하우스에서 햄버거 먹는 일을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몇일만에 먹는 패스트푸드(하지만 그 스케일과 오픈 키친 너머로 보이는 모습을 보면 패스트푸드라는 표현이 조금 실례인 것만 같다)이기에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긴 여행 중에 먹는 별미라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당최 알 수가 없지만 그곳의 햄버거는 내가 살아가면서 먹었던 햄버거 중 가장 손꼽히는 맛이었다. 햄버거 패티가 근방에서 구한 캥거루나 낙타의 것일 확률도 없지는 않겠지만. 통통한 패티와 적절하게 카라멜라이징 된 양파, 바삭하게 잘 튀겨진 감자튀김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낮부터 화이트 와인을 살짝 곁들이기도 했는데 최고급 레스토랑도 부럽지 않은 식사였다고 나는 감히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펜스 파인드 로드하우스엔 미니언즈가 있다.

 호주에서는 로드하우스를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꽤 즐거운 여정이 될 수 있다. 호주 사투리를 잔뜩 구사하는 로드하우스 주인들은 거칠어 보이지만 속은 굉장히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로드하우스가 캠핑장과 함께 운영되기에 적어도 1박 2일은 그들과 함께 하게 되는데 오가면서 안부를 묻고 필요한 것들을 요청할 때면 "No worries"라며 흔쾌히 도움을 준다. 굳이 무언가를 챙겨주진 않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면 흔쾌히, 정말 흔쾌히 도와주는 성격의 사람들이랄까. 로드하우스는 도시에서 먼 곳에 위치하고 있어 도심에서 사는 물건보다 그 값이 훨씬 비싸지만 시원한 콜라 한 캔(혹은 레드불)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웃백에 가게 된다면 분명 내 말이 무슨 말인지를 이해할 것이다. 문명이 가득한 이곳에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겠지만.



 우스운 것은 아무리 투박하고 외딴곳에 동떨어진 로드하우스라 할지라도 대다수가 자체 제작한 기념엽서를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굉장히 대충 찍은 사진에 기울기가 있는 필체로 로드하우스 이름을 집어넣어 파는는데 나에게는 그곳에서 산 엽서들이 호주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함께 동행했던 어른이 언젠가 츄카예라 로드하우스에서 엽서를 사주셨는데 그 분은 계산을 하며 주인장에게 사인 하나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샘 해밍턴도 아니고 생전 처음 보는 호주인의 사인이 담긴 엽서라니 뭔가 인상적이지 않은가. 물론 로드하우스 주인도 '굳이 내 사인을?'이라는 표정으로 두 번이나 되묻더니 아리송한 표정으로 사인을 해주긴 했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로드하우스를 떠올리면 나는 여전히 따뜻한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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