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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Oct 20. 2023

인간의 '처음'을 찾아가는 여행

지구과학 여행을 돕는 '탐사 오퍼레이터'로서의 기록

좌) 울룰루 밤하늘 / 우) 20억년의 나이테를 지니고 있는 서호주 카리지니 국립공원


 호주 오퍼레이터로 일하던 시간들 중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잡혀 있던 일정이 있었다. 지구의 역사를 찾아가는 탐사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한국에선 꽤 생소한 이 여정은 NASA과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주기적으로 떠나는 여정이었다. 일 년 365일 중에서도 탐사를 떠날 수 있는 건 자연이 허락하는 건기뿐이라 7월 즈음이 되면 어느덧 바빠지기 시작한다. 두 명의 인원이 스무 명 남짓의 탐사대를 인솔하며 매 해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이를 해결하며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근육을 조금씩 키워나갈 수 있었다.






샤크베이에서 만날 수 있는 살아있는 화석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s'


 지구에서 본격적으로 생명이 시작된 시기는 약 35억 년 전이라고 알려져있다.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화석이 서호주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이름은 일반인들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스트로마톨라이트 Stromatolites'라는 존재다.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필수 요소인 산소는 지구가 생겨날 무렵에는 대기 중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35억 년 전 즈음에 산소를 만들어내는 시아노박테리아 Cyanobacteria가 지구상에 등장했는데 바위 표면에 붙어 조금씩 몸집을 불렸고 둥글둥글하고 투박한 모습의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되었다. 지구 과학에 대해 정말 첨예한 지식을 가지지 않는 이상은 이 하찮은 모양의 돌멩이를 보고 누구나 다 고개를 갸웃거릴 거라고 나는 감히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지구과학 선생님들이 데리고 온 그 자녀들은 이 돌멩이보다는 조개로 만들어진 조개해안 Shell Beach에 더 큰 감흥을 느끼는 듯 보였다. 이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그러했고 말이다.



  시아노박테리아는 1제곱킬로미터 면적에 약 30억 개체가 존재하는데 바위 표면에 살면서 이산화탄소 분자를 태양 에너지와 결합해 그 부산물로 산소 거품을 만든다.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이 활동이 20억 년이라는 엄청난 시간 동안 지속되면서 대기 중의 산소는 20퍼센트까지 증가했고 비로소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샤크베이라는 장소가 그들이 살아가기에 꽤 적합한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다른 생물군이 생존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이 연안은 바닷물의 순환이 크게 활발하지 않고 염도가 높아서 물고기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먹어치울 생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단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을 보기 위해 퍼스에서 헤멀린 풀 Hamelin Pool까지 700킬로미터를 운전해서 갈 가치가 있느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나는 그렇다고 흔쾌히 대답을 해줄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샤크베이 근방을 지나게 된다면 분명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살아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을 볼 수 있는 곳은 지구상에서 두 곳뿐인데 바하마의 산호섬에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접근이 어려워서 실제로 실물을 볼 수 있는 곳은 서호주의 헤멀린 풀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언젠가 그 근방을 여행할 기회가 되면 꼭 들려보겠노라"할 것이다. (물론 이 근방을 여행할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조) 탐사 중에 만나는 흔한 풍경 / 우) 마블바의 입구


 지구의 생물 역사를 살펴보기 위한 또 다른 탐사 장소로는 서호주 북부 필바라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마블바 Marble Bar가 있다. 이곳에는 대략 35억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있는데 앞서 언급한 헤멀린 풀의 살아있는 화석과 달리 이곳에서 발견되는 화석은 아주 단단하고 오래된 암석에 자리하고 있다. 1890년대만 하더라도 금광의 발견으로 한 때 5,000명에 달하는 인구가 마블바 지역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뜨거움에 다소 내성이 생긴 몇몇 주민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사실 이곳은 어마어마하게 뜨거운 도시로 호주 내에서도 알려져 있는데 1923년 10월 31일부터 1924년 4월 7일까지 장장 160일 동안 인간의 체온인 37.8도 이상을 유지하며 세계 기록을 세웠다. 내가 마블바를 방문했던 몇 번의 경험에서도 그곳은 늘 뜨겁고 건조했는데 자기 관리에는 관심도 없는 내가 립밤을 꺼내도록 만들 정도였으니 그 건조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낮 동안에는 37도 이상의 온도를 기록하는 터에 도로를 걸어 다니는 이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인데 이따금 아이폰이 "너무 뜨겁다"며 백기를 들고 작동을 멈추는 정도의 불볕더위였다. (아이폰은 너무 뜨거운 온도에 달하면 작동을 멈추고 경고를 보낸다)






좌) 아웃백을 달리고 난 차의 모습 (세차는 나의 몫..) / 우) 이름조차 마블바 로드


 나의 첫 탐사 여정은 이 마블바로 인해 아주 뜨겁게 남아있다. 당시 우리 팀은 스무 명에 가까운 과학선생님 그리고 그 가족 일행과 함께 10여 일의 서호주 탐사를 하는 중이었다. 마블바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있는 암석 지대를 둘러보기 위해 하루 동안 캠핑을 하고 퍼스로 떠나려는 찰나, 버스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도시와 가까운 곳이었다면 차량을 고치는 기술자를 부르거나 대체 차량으로 이동을 하면 되었을 텐데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도 200킬로미터나 떨어진 그곳에서는 기존의 버스를 고치는 일이 어려워 보였다. 당장 대체할 수 있는 버스도 없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가 내린 결정은 스무 명의 인원을 비행 편으로 퍼스까지 이동시키는 일이었다. 출국이 당장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당장의 비행 편과 200km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시켜 줄 교통수단을 단 몇 시간 만에 확보하긴 쉽지 않았기에 마블바에서 하루 더 머물며 탐사팀의 이동을 지원했다. 남아있는 짐들을 두고 갈 수는 없었기에 단 두 명의 인원(나를 포함해서)으로 탐사팀이 두고 간 몇 십 개의 캐리어와 물품들을 챙겨 1,500킬로미터의 거리를 밤새 운전해서 내려온 일은 첫 탐사 경험으로는 아주 짜릿한 기억이다. 



 점심 즈음에 출발해 땅거미가 지는 저녁, 은하수가 가득 내려앉은 밤, 다시 동이 터오는 새벽까지 잠시의 화장실을 해결하는 것 외에는 정말 쉬지 않고 달렸다. 1,500킬로미터의 거리를 밤잠도 자지 않고 운전한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보조석에 타고 있는 나도 가만히 앉아서 수발을 드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운전을 하는 사람은 무사히 도착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더 힘들었을 거라고 글을 쓰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새벽 다섯 시 언저리에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갓길에 정차해 토막잠을 자고선 무사히 아침 무렵 퍼스 도심에 도착했다. 퍼스의 높은 빌딩 숲이 멀리서 보였을 때 내질렀던 그 환호성이란! (그날 하루동안에는 레드불 두 캔이 그렇게 훌륭한 아군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선생님들의 도심 투어 가이드를 끝내고 캐리어를 성공적으로 건넨 후 공항까지 배웅하고 돌아와 살면서 가장 맛있는 잠을 잤다. 아마 이 마라맛 기억으로 인해 나는 쉽지 않은 아웃백 탐사를 몇 년간 더 지속할 수 있었노라고 지금에서야 고백해 보는 바이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일들로 인해 나라는 인간도 조금은 유연해진 듯하다. 또 감성적이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100% 문과인인 내가 지구과학에 조금의 뜻을 두며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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