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에 대해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들
호주의 동쪽에 살 땐 미처 몰랐지만 서쪽의 퍼스라는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부터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호주의 오랜 주인인 '원주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급을 받아 생활하는 워홀러의 삶은 대체로 비슷한 모습이다. 뚜벅이처럼 걷고 또 걷고, 집 값을 내고 나면 주머니에 남는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마트의 세일 상품을 쓸어 담거나 매주 화요일 KFC의 치킨데이를 기다리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의 서쪽 도시는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도심을 무료로 순회하는 캣(CAT) 버스가 있기 때문이다. 퍼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탔을 이 버스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이방인 외에도 즐겨 타는 이들이 있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을 지닌 다소 투박한 외모의 무리들은 버스 뒷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큰 소리로 떠들고 심상치 않은 냄새를 풍기며 노란 피부의 학생들을 조롱하곤 했다. 한국인 커뮤니티에는 그들로부터 구타를 당했다거나 돈이나 핸드폰을 빼앗겼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왔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그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첫인상부터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던 그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은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역을 여행하면서부터였다.
그들이 호주에 도착한 시기는 약 4만 5천 년 전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원주민들은 뗏목을 타고 호주 북쪽에 도착했을 것이며 조금씩 군락을 키워간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나 동굴 벽면 등에 남겨진 흔적들을 보며 조금씩 그 삶을 유추해 볼 뿐이다. 오랜 시간 동안 호주 대륙의 주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를 지속해 왔지만 그들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부족하거니와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없어 보인다. 잃어버린 세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처음으로 호주를 발견한 것은 네덜란드인이었다. (그전에 이곳을 발견한 이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기록으로 확인되는 바에 의하면) 하지만 호주를 개척한 사람으로 제임스 쿡 선장이 거론되는 이유는 그가 비교적 비옥하고 산림이 우거진 호주 동부를 발견함으로써 비로소 바깥 세계에 호주를 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호주에 대영제국의 깃발을 꽂고 본격적으로 정착한 것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영국에서 736명의 죄수와 관리들을 태운 배가 도착하면서부터였다. 그들은 굴러온 돌의 입장이었지만 원주민들이 여전히 원시적인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음을 깨닫고 그들을 무참히 억압하고 살해했다.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던 천연두, 늑막염, 수두 같은 전염병이 원주민 군락에 돌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면역이 없던 원주민들은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물론 전염병에서 끝내지 않고 백인들은 원주민 개화정책이라는 명목하에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강제로 분리해 입양을 보내거나 노동력 착취를 위해 끌고 갔고 이는 약 70년 동안 지속되었다. 아이는 평생 부모를 보지 못한 채 영국인들의 식모나 일꾼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 이를 두고 도둑맞은 세대 혹은 빼앗긴 세대 Stolen Generation라 일컬으며 2008년이 되어서야 호주 총리가 공식적으로 이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공식적인 사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호주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다. 사막이 깊어질수록 백인들을 피해 숨어 들어간 원주민 군락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는데 길 입구에서부터 호의적이지 않은 문구‘No Entry 출입하지 마세요’가 외부인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반대로 원주민 구역에 있는 로드하우스에서는 원주민들의 절도 행위 때문에 주유기뿐만 아니라 로드하우스 인근에 철조망을 단단히 설치해 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여행을 하기에 앞서 안내센터의 주의사항을 들을 때면 자동차 주유구를 열어 연료를 훔쳐가거나 차량에 싣고 다니는 여분의 연료통을 훔쳐가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조언을 듣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여전히 배타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호주의 많은 원주민들은 다른 인종과 비교했을 때 소득이 낮다. 실업률과 범죄율이 높고 인프라와 공공시설 부족 등으로 인해 평균 수명은 60세 남짓정도로 평균 수명보다 짧다. 사회 전반에 여전히 만연해있는 인종차별로 인해 기본 교육을 마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불과 며칠 전 호주에서 원주민들의 권리 인정에 대한 국민 투표를 진행했다. 6개의 주 중 4개 주에서 찬성이 나와야 개헌안이 가결되는데 결과적으로는 수도 캔버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반대표가 50%를 넘었고(심지어는 원주민들이 많이 살아가는 노던 테리토리 주에서도!) 결국 원주민의 권리 인정은 부결되었다. 가장 오랜 시간 호주 대륙에서 주인으로 살아왔지만 주권을 찾기 위한 노력이 다시금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글을 다듬는 요 며칠 동안 투표 결과가 나옴에 따라 다소 긍정적으로 흘러가던 글을 한참 동안 지우고 다시 써야만 했고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물론 도심을 배회하는 원주민들의 삶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히 배척할 수 없는 이상 그들도 호주의 구성원임을 인정하고 더 나아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일임을 그들도 곧 알게 될 것이라 믿는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모금활동을 위해 자전거로 호주를 횡단하던 친구들을 서포트할 때의 일이다. 아이들은 길에서 만난 호주 사람들에게 본인들이 하고 있는 일을 부지런히 홍보했고 남은 시간 동안은 열심히 호주 1번 국도를 타고 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의 전단지를 유심히 본 몇몇 호주인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무슨 일인고 하니 '울룰루'에 갔을 때 등반을 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울룰루는 호주 원주민들에게 오랫동안 신성시 된 공간으로 주술사만 오를 수 있는 곳이었으나 호주인들이 이곳을 관리하면서부터 울룰루 외벽에 쇠줄(안전장치라고는 붙잡고 올라가는 쇠 줄 정도만 있을 뿐이다)이 설치되었고 많은 관광객들이 울룰루 등반을 시작했다. 광활한 평야 한가운데 솟아올라 있어서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추락사고가 종종 일어나는데 2019년까지 최소 35명이 사망한 것을 보면 그들이 등반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곳에서 누군가가 희생되는 것은 무척이나 마음 아픈 일일테니 말이다.
원주민들의 언어에는 '어제'나 '내일'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다. 눈앞의 아름다운 자연과 공생하며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그들이 가진 삶의 방식이다. 큰 욕심 없이 자연이 내어주는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사는 그들을 떠올리며 호주 원주민과 미국 백인 의사의 아웃백 여행기를 담은 무탄트 메시지의 한 구절을 남겨볼 뿐이다.
그들은 내게 설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재능을 갖고 있으며 누구나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설령 자신은 노래를 못 부른다고 생각해 자신이 가진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기 안에
그 '노래 부르는 사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무탄트 메시지 / 말로 모건